8.18 그날 나는 전쟁터에 다녀왔다.
8.18을 기억하십니까?
오늘이 8.18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올해도 8.18이 어떤 날인지, 그해 8월 18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8.18은 참혹한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던 날입니다.
1976년 8월 18일 오후. 판문점에서 미루나무를 베고 있던 미군 장교 두 사람을 북한군 병사들이 무자비하게 도끼로 찍어 죽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어마어마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미국은 그 사건을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 사상 최대의 군사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군에도 6.25 전쟁 이래 최고 수준의 비상이 걸립니다. 그야말로 전쟁 일보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발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내가 살아온 스물두 살 짧은 인생 중 가장 긴 하루가 시작됩니다. 당시 나는 최전방 전차대대에서 전차병으로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평소와는 전혀 다른 심상치 않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모든 병사들이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터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 부대원에게 실탄이 지급되고 장병 모두에게 유서를 쓰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그리고 손톱 발톱을 깎아 유서와 함께 봉투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왜 손톱 발톱을 깎아 유서가 든 봉투 속에 집어넣으라고 하는 걸까?
만약 야전에서 전사하여 시체마저 찾지 못하게 된다면 몸뚱이 대신 유서 속에 들어있는 손톱 발톱이라도 고향 계신 부모님께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병사들이 묵묵히 내무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유서를 쓰고 똑딱똑딱 손톱 발톱을 깎았습니다. 그리고 전차에 올라타고 최전방 진지를 향해 출동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우리 군의 주력전차는 2차 세계대전 때 미군들이 사용하던 M47 전차였습니다. 워낙 낡고 노후화된 전차라 툭하면 훈련 중에 고장이 나서 멈춰 서곤 했습니다.
전차를 몰고 가며 간절한 마음으로 전차에게 빌었습니다. 전차야. 오늘은 전쟁하러 가는 날이니 제발 오늘 하루만은 속 썩이지 말고 진지까지 무사히 도착해다오.
전선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가 완전군장 한 보병부대 포병부대 전차부대 미사일부대의 행렬로 가득히 채워졌습니다. 꼭 꿈을 꾸는 것 같고 전쟁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길가의 상점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이 콜라 사이다를 박스째 들고나와서 행진하는 병사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갓 결혼한 소대장의 부인이 전쟁터로 향하는 남편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최전방 진지에 투입되어 북한군과 대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부대의 임무는 후방병력이 전투준비를 마칠 때까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수가 우리 부대의 임무였고 그것은 곧 전 부대원의 죽음을 뜻했습니다. 내 나이 겨우 스물둘. 이렇게 빨리 죽음이 찾아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팽팽한 긴장 속에 북한군과 대치하는 사이 어느덧 밤이 찾아왔습니다. 전선의 밤은 그야말로 칠흑같이 어둡습니다.
발포 명령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북한군 진지를 응시하던 내 눈에 믿어지지 않는 광경 하나가 포착되었습니다.
바로 코앞에 있는 적 진지에서 불빛 하나가 깜박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놀랍게도 담배 불빛이었습니다. 어느 북한군 병사 하나가 몰래 숨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전쟁을 앞둔 이 상황에서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군기 문란행위였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군기가 셀 것 같은 북한군대의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는 자체가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숨죽이며 내 곁에서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던 동기 하나가 내 귓전에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저놈들도 우리처럼 무서운 모양이지?”
그 말이 차라리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만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저놈들도 무서워하고 있구나.
두렵고 긴 밤이었습니다. 그 두렵고 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무심한 별빛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별빛을 바라보며 엄마를 생각했고, 학창시절 명동 빵집에서 우연히 만났던 하얀 얼굴의 소녀를 생각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죽음을 앞둔 순간에 그 소녀의 환한 미소가 떠올랐던 것일까? 그때는 과연 그 소녀가 나를 기억이나 하고 있는 지조차 확신할 수 없던 때였는 데도…
이런 걸 운명이라 하는 모양입니다. 그 무서운 순간에 불현듯 생각난 하얀 얼굴의 소녀가 훗날 정말 내 아내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자정이 되었습니다. 문득 시계를 보며 아. 벌써 밤 열두 시로구나 하고 있을 때 꿈결처럼 누군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비상 해제! 전원 부대 복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군의 가공할 핵 전략자산들이 한반도로 속속 총출동하는 상황에 공포를 느낀 김일성이 황급히 꼬리를 내리고 미국에 처음으로 사과 성명을 발표한 것입니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는 유명한 말이 그때 나왔습니다.
비상 해제와 부대 복귀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모든 소대원들이 서로 얼싸안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이런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살았다. 살았어.
1976년 8월 18일 밤 12시. 스물 두살 내 평생 가장 길었던 하루가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47년 전의 그날 하루를 나라도 기억해주어야 하겠다.
아무도 관심 없을 짧은 글 하나를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