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명절날의 특별한 선물
“어머나. 정말 올해 설날에 큰 선물 받았네?”
큰아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쫓아왔습니다.
“…뭐가 큰 선물이야?”
“어머. 당신 그럼 이게 큰 선물 아니고 뭐야? 세상에 이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어?”
“…큰 선물이라기보다는 그냥 조금 특별한 선물일 뿐이지.”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우리 큰아이에게 받는 최고의 명절선물이야.”
“…하여튼 당신도 못 말리네.”
몇 해 전 조금 특별한 명절선물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큰아이가 무슨 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
모든 부모에게 아이들은 다 애틋한 존재일 것입니다. 나에게도 그렇습니다.
특히 나는 우리 큰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아비로서 빚진 심정이 있습니다.
우리 큰아이는 대학교 2학년 때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갔습니다. 그때 나는 오십도 훌쩍 넘은 나이에 목사가 되겠다고 장로회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늙은(?) 신학생이었습니다.
다 늙어빠진 나이에 헬라어니 히브리어니, 골치 아픈 공부 하느라 바빠서 큰아들 녀석이 학교에 다니는지 군대에 가는지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까 이 녀석이 어느덧 마지막 휴가를 나와 있었습니다. 벌써 전역할 때가 가까워진 것입니다.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는 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 나 전역해도 바로 복학하지 않을 거야.”
복학하는 대신 일 년 동안 직장을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자기 학비는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디자인회사의 입사 시험을 보고 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귀대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필 회사에 첫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 전역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역하기 하루 전날 큰아이에게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전역하자마자 바로 출근을 해야 하니까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아침 일찍 부대로 와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제대하자마자 바로 일하러 가니? 하루도 못 쉬고…”
큰아이 전화를 받는 아내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가득 묻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마와 달라야 하고 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뭘. 사내 녀석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고 싶다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둬.”
군에 가기 전에 입던 옷을 챙겨 들고 부랴부랴 자동차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강화도에 있는 부대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잠시 부대 정문 앞에서 기다리자 예비군 군복을 입은 큰아이가 허둥지둥 뛰어나왔습니다.
차 안에서 급히 양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큰아이는 그 길로 강남에 있는 회사로 직행해서 첫 출근을 했습니다. 전역하자마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곧바로 직장으로 일하러 간 것입니다.
일 년 동안 열심히 디자인 일을 해서 학비를 벌었습니다. 그리고 복학하고 졸업했습니다.
***
나도 바쁘게 살았습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고시에 합격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목회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학교 졸업한 우리 큰놈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전혀 돌아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큰아이도 바쁘게 살았습니다. 결혼도 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도 하고, 디자인팀장으로 진급도 하고, 서울에 아파트도 하나 샀습니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예쁜 손자도 내게 안겨주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도 벌써 은퇴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은퇴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명절 연휴 전날이었습니다.
밤중에 갑자기 큰아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상을 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상이냐 물어보니까 ‘iF 디자인 어워드’라는 것입니다.
“…iF 디자인 어워드라고?”
“네.”
***
세계 3대 디자인상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상이 독일에서 주는 ‘iF 디자인 어워드’입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그 상을 받겠다고 해마다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매년 수많은 나라에서 수천여 점의 작품들이 출품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노벨상 같은 상이고, 꼭 한번 서보고 싶은 꿈의 무대가 ‘iF 디자인 어워드’입니다.
이 녀석이 그런 큰 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생전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도 말해주지 않더니… 걔가 당신 닮은 거 맞네. 진짜 만화가 아들 맞나 봐.”
그해 큰아이는 상을 받기 위해 독일 뮌헨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큰아이의 작품이 함부르크에서 전시되었습니다.
큰아들 녀석은 과묵합니다. 그런 소식도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전화로 툭 전해주었습니다.
나도 우리나라 보통 아버지입니다. 그런 전화를 받고도 그냥 한 마디만 툭 전해주었습니다.
“…수고했다.”
***
그러나 그날 밤 너무나 두근두근 가슴 설레고 잠이 오지 않아 곤히 잠든 아내 깰까 숨죽이며 불 꺼진 거실을 왔다갔다 밤늦도록 돌아다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