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에 살면 안 되는 이유

신경 쓸 게 많다

by 파타과니아

해고당했다. 헬스장도 망했다. 이제는 정말 갈 곳도 없다. 지금까지는 정말 정신력으로 버텨왔는데 고시원에서 사는 게 슬슬 한계가 오는 거 같다.


1. 고시원에 사는 건 정말 비추다. 공용주방, 공용화장실 이유야 많을 텐데 딱 하나 정리하면 잡다한 곳에 나가는 에너지가 많다는 거다.


2. 요즘은 일어나면 웬만하면 바로 청년지원센터로 간다. 빠르면 9시, 늦어도 10시에는 나가려고 한다.


3. 9 시인 이유는 청년지원센터가 여는 시각이 9시이기 때문인데, 이런 날은 보통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나간다.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해야 한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두유와 비타민, 아몬드를 먹고 바로 나간다.


4. 10 시인 이유는 잡다하게 신경 쓸 게 많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샤워장에 사람은 있나? 보통 출근시간이 애매하게 겹치는지 9시가 넘어서도 씻는 사람이 종종 있다. 바구니와 수건을 챙기자. 수건을 까먹으면 저번처럼 물 뚝뚝 흘리면서 젖은 옷으로 가야 한다. 까먹지 말자. 화장실에 사람은 있나. 물티슈는 남았던가. 변기에 누가 똥테러를 하지는 않았겠지. 왜 공지사항 보고도 그러는 거지. 공지사항이 한국말로 되어있어서 그런가. 고시원 사장은 여기가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많은 건 알까. 아 그런데 여기 물 온도 조절도 잘 안 되는데. 하. 진짜 씻기 싫다.

이렇게 잡다한 짜증과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면 진짜 겨우겨우 씻는다. 10분 씻는데 30분을 빈둥거리면서 고민하기도 하는 거다.


고민은 사람의 결정을 미루고, 사람의 결정이 느려지면 하루가 버려지기도 꽤 쉽다.


5. 회사 다니고 헬스장이 있을 때는 괜찮았다. 눈 뜨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나와 운동하고 씻는다. 쾌적한 회사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쉰다. 밤에는 근처 도서관에 가서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는다. 이러면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는 걱정이 없었다. 밥은 닭가슴살을 먹으면 되니 잡다하게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정말 잠만 고시원에서 잤다.


6. 이제는 정말 먹고 씻고 자고 다 고민해야 한다. 영하 13도인데 빨래가 마르나. 생각했는데 정말 3일 동안 안 말라 실내에 두고 겨우 말렸다. 보험이나 증권 같은 서류는 대면으로 줘야 한다고 일주일째 못 받고 있다. 마땅한 보관함이 없어서다. 세일이라고 3개 2990원에 샀던 닭가슴살은 처음에 없어지는 게 신경 쓰였는데 그냥 포기했다. 아예 마음을 비워버렸다. 누군가 먹고 배라도 채운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기쁜 일 아닐까.


7. 누군가의 방귀와 트림. 주방에 가득한 중국과 인도의 향신료 냄새. 한 달에 한 번 오는 거 같은 겜돌이. 저번에 한 번 연락 갔을 텐데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왜 이어폰을 안 끼고 보는지 모르겠는 유튜브. 국제전화라서 신나는 건지 쏼라거리는 중국인들.

밤새, 그리고 아침에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 많은 잡다한 곳에 에너지와 신경을 빼앗긴다.


8. 다행히 노트북을 하러 오거나, 책을 읽는 시간. 밖에서 보내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 정도까지는 괜찮다. 그렇지만 수면 시간 7시간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이 대체로 스트레스다. 굳이 건조기를 돌려도 되는 옷을 챙기고, 굳이 두유와 비타민 닭가슴살로 식사를 통일한 건 잡다한 곳에 에너지를 뺏기기 싫어서다.


그런데 그 외에서 아끼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고 잇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