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다크 피닉스>를 보고
※ <엑스맨: 다크 피닉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수의 엑스맨 시리즈 팬은 아무래도 브라이언 싱어가 만든 <엑스맨: 아포칼립스>(2016)에서 자체적으로 뮤턴트와의 작별 인사를 끝마친 걸까. 아니면 뜬금없기는 해도, 마지막으로 남은 건 먹지 않아야 마음이 놓인다는 <김종욱 찾기>(2010)의 지우(임수정)와 같은 마음으로 거부하고 있는 걸까.
망작이라고 낙인찍기엔 아깝다
사이먼 킨버그가 연출한 폭스판 엑스맨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엑스맨: 다크 피닉스>(이하 <다크 피닉스>)의 성적이 갑갑하다. 이 영화는 시리즈를 통틀어 개봉 당일을 포함한 첫 주말에 가장 낮은 월드와이드 수익을 올린 영화로 기록되었으며, ‘끝’이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관객과 평단의 중론이다.
동감한다. <다크 피닉스>는 시리즈의 실패한 피날레다. 이 영화에는 지난 19년을 충분히 곱씹을만한 거리가 부족했다. 원년 멤버와 팬 모두에게 근사한 추억 앨범을 건넨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과 비교하면 더욱더 아쉽다.
그러나 나는 <다크 피닉스>를 ‘망한 영화’로 부르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게 엑스맨 시리즈가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로건>(2017)이 ‘이제껏 극장에서 가장 많이 운 영화’라는 것만이 이 시리즈에 대한 나의 애정의 전부다.
어렵겠지만 유구한 슈퍼히어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거리를 두면 느낄 수 있다. <다크 피닉스>가 <엑스맨>(2000)이 나왔던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극단의 시대를 향해 꿋꿋이 전하는 통합의 메시지를 말이다. 그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환대는 절대적이어야 한다
<다크 피닉스>에서 프로페서 X(제임스 맥어보이)가 세운 팀 엑스맨의 운영 전략은 뮤턴트의 슈퍼히어로화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적 태도에 관한 한 인간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걸 일찍이 간파한 그는 뮤턴트 쪽에서 변하는 것을 택한다. 우리가 먼저 선의를 보이면 그들도 미소로 화답할 거란 식이다. 프로페서 X는 인간을 구출하는 미션에 엑스맨을 적극적으로 투입한다. 이때 위험의 크고 작음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가 엑스맨에게 내리는 유일한 명령은 인간을 ‘빠짐없이’ 구해내라는 것이다.
프로페서 X의 예상은 적중한다. 뮤턴트를 향한 인간의 시선은 우호적으로 바뀐다. 뮤턴트가 우리 편이라는 것을 확인한 인간은 그제야 뮤턴트가 다수 사회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 언론사는 앞다퉈 영웅 엑스맨을 잡지 커버에 싣고, 대통령은 그들에게 표창을 준다. 대중은 그들의 귀환 장소에 자발적으로 모여 환영 피켓을 든다.
그러나 이러한 환대는 머지않아 철회된다. 뮤턴트는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 제한적 환대였기 때문이다. 진 그레이(소피 터너)와 헬리콥터를 타고 온 군인들 간의 한 차례 싸움이 벌어지자마자 인간은 환대 이전으로 돌아간다. 미국 정부는 진 그레이에게 국제수배령을 내린다. 뮤턴트를 적으로 두고 그들을 다시 울타리 밖으로 쫓아내겠다는 태세 전환 신호다.
뉴욕 시가전에서 인간이 뮤턴트를 체포하는 광경은 모욕적이다. 군인은 뮤턴트를 잡아다가 그들의 목에 능력 억제 장치(Mutant Inhibitor Collar)를 채우고 바닥에 끌기까지 한다. 여기서 인간이 뮤턴트를 온전하게 여기지 않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군용 열차 한 칸에 목을 가누지 못하고 손이 묶인 채 앉아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묘한 수치심을 느꼈다. 아마도 내가 포박당한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요원과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크 피닉스가 아닌 진 그레이에 주목해야 한다
<다크 피닉스>는 집단과 집단이 관계 맺는 방식뿐만 아니라 개인과 집단 간의 그것도 함께 다룬다. 중심에는 타이틀 롤 캐릭터 진 그레이가 있다. 그는 막강한 존재인 동시에 연약한 존재다. 염력과 텔레파시 능력을 타고난 그는 우주에서 인간 조종사를 구출하다가 초월적 에너지인 솔라 플레어를 흡수해 범접할 수 없는 데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진 그레이는 어린 시절 자신이 제어하지 못한 초능력 때문에 부모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산다. 다크 피닉스로서의 힘은 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 도리어 동료를 다치게 한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자책감에 휩싸인다. 그런데도 난 널 포기하지 않는다며 다가서는 레이븐(제니퍼 로렌스)까지 그 힘 때문에 죽게 되자 더욱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소피 터너가 촬영 6개월 전부터 몰두한 일이 액션 훈련이 아닌 정신건강 장애 증상 리서치였다는 게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터너가 공부한 환영·환청·기억상실·해리성 장애·조현병은 진 그레이가 직간접적으로 보이는 증상이다.
낙관적인 가족주의도 필요하다
그래서 진 그레이는 가족 집단과 뮤턴트 집단에서도 배제된다. 그는 ‘정상’적인 인간도, ‘정상’적인 돌연변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두 집단은 ‘비정상’적인 진 그레이와 함께 살기를 포기한다. 진 그레이의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의 생존 사실을 숨기고, 프로페서 X에게 딸의 양육을 맡긴다. 그는 뒤늦게 진실을 알고 찾아온 성장한 딸을 보고 겁에 질린다. 진 그레이는 그런 아버지에 낙담한다. 부녀가 각각 느끼는 공포와 미움에는 가해자가 없다. 나는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어 난감해졌다.
행크(니콜라스 홀트)는 진 그레이에게 복수하기를 원한다. 그에게 레이븐을 죽인 진 그레이는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다.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는 영재학교를 떠나 자신이 이끄는 집단의 근거지로 찾아온 진 그레이를 거부한다. “돌연변이를 지켜준다고 했잖아요.”라고 묻는 진 그레이에게 그는 “너에게로부터 지키려는 거야.”라고 답하며 진 그레이가 타자임을 분명히 한다. 매그니토가 지키는 ‘우리’ 안에 진 그레이는 없다. 여집합 내에서 부유하던 진 그레이는 결국 버림받은 아이의 슬픔을 토닥이는 척하며 다가온 외계 존재 스미스(제시카 채스테인)의 품에 안긴다.
후반부의 각성 및 대화합 전까지 진 그레이란 개인은 소속 집단에서 오로지 ‘위협적인 존재’로 축소된다. 철학자 이졸데 카림의 말처럼 그는 소속 집단 내에서 ‘개인의 구체적인 개별성을 부정(「나와 타자들」, 2019)’당한다. 그러나 레이븐이 남기고 간 팀 엑스맨 정신이 적어도 그와 뮤턴트 집단 간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아끼고 믿어주는 한 희망은 있다는” 말은 낯간지럽지만 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통합’(같은 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극단의 시대를 사는 지구인에게 칸트의 말은 오래됐지만 쓸모 있다.
‘지구는 둥글고 그 표면적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물론 여기에서의 ‘우리’는 ‘전부’다.
[chaeyooe_cinema]
엑스맨: 다크 피닉스 X-Men: Dark Phoenix
감독 사이먼 킨버그 Simon Kinberg
여전한 극단의 시대에 항변하듯 멤버들을 뒤로 물리고 그 자리에 통합의 메시지를 세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