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은 존재성을 갖고 있지 않다.
무엇이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일상적인 경험입니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그 피상적인 생각과는 다른 존재의 본질이 따로 있습니다. 어떤 사물의 객관적 존재 여부는 사실 그 대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라고 여겨지는 안쪽, 즉 생각에 의해 부여됩니다. 무엇에 대해서 존재성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란 말입니다. 생각이 존재성을 부여하는 메커니즘은 '분리'를 통해서입니다. 생각이 없이는 분리가 일어나지 않죠. 생각이 만든 분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만들어내고 비로소 '존재감'이 부여됩니다. 우리가 밖이라고 부르는 세상에는 분리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내가 보는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당신의 거짓 믿음에 근거한 또 하나의 생각입니다.
존재성의 본질은 우리의 생각이다.
생각이 존재성을 부여하는 메커니즘은 '분리'다.
생각이 없으면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존재성을 만들어 내는 주체가 사실은 당신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만든 것은 당신이 스스로 없앨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죠.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쨌든 그 모든 원인은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존재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정말 너무나 간단해요. 어려운 것은 당신이 직접 확인한 사실 위로 덧씌워지는 또 다른 생각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 눈 앞에 휴대폰이나 컴퓨터가 존재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금 내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 스스로 경험하고 있음에도(이 글을 그 디바이스를 통해서 읽고 있음에도)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정확하게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것이죠. 내가 방금 그것을 언급하는 순간 다시 그 '존재감'이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나요? 언뜻 생각하기에는 컴퓨터가 이렇게 계속 존재하지만 내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컴퓨터에 존재감을 부여하는 것은 당신 스스로라는 점이 진실입니다. 당신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당신 눈 앞에 컴퓨터라는 감각적 경험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모양을 존재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또 무슨 말인가? 그러면 모양이 존재가 아니란 말인가? 눈 앞에 사과가 있으면 사과가 존재하는 게 아니란 말인가?
혹시 자각몽이란 걸 꿔본 적이 있나요? 자각몽은 내가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 속임을 알고 꾸는 꿈을 말하죠. 보통은 잠이 깨기 직전에 자주 경험하는데, 이때는 눈 앞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꿈임을 명확히 알고 있는 상태가 됩니다. 한 번은 자각몽을 꾸고 있던 중간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과연 의식이 얼마나 세밀하게 꿈속에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지 궁금했었죠. 그래서 꿈속에 등장했던 털 이불을 최대한 눈 앞으로 가까이 가져와서 그 털들이 얼마나 정교한지 확인해봤습니다. 정말 놀랄 만큼 현실과 똑 같더군요. 바람에 날려 흔들리는 리드믹컬한 움직임까지 너무나 진짜 같아서 꿈속에서도 감탄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그 털 이불이 완벽하게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사실적으로 감촉을 느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즉, 털 이불에 존재성이 없었던거죠. 꿈속의 그림임을 미리 알았으니 속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양 자체가 절대적 존재성을 스스로 갖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존재성은 분리를 통해서 일어나고 분리는 당신의 생각이 만들어냅니다. 분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직 생각입니다. 현상 세계 자체에는 분리가 없어요. 분리가 없으니 '무엇'이 존재한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라는 독립된(분리된) 무엇이 없으니 존재라는 말을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대상 자체가
절대적 존재성을 스스로 갖고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존재성을 부여하는 것은
오직 당신의 생각이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집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여전히 내 눈앞에 컴퓨터가 존재하고 책상이 존재하는 것만 같기 때문이죠. 모든 것들이 모두 따로따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만 같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괜찮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천천히 사유해보면 되죠. 진실은 숨겨져 있지 않습니다. 매 순간 스스로 경험하고 있으니 숨겨있을 턱이 없다. 경험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겁니다.
지금 당장 자신의 집에 있는 냉장고를 한번 떠올려보세요. 제가 말하기 전까지 냉장고의 존재성은 나타나지 않았음을 기억하세요. 다음으로 거실에 있는 소파를 떠올려보세요. 이렇게 소파의 존재성이 드러나고 냉장고의 존재성이 사라짐을 느껴보세요. 당신의 머릿속에 이어서 이런 생각이 떠오를 겁니다. 우리 집 냉장고는 언제나 거기 있는데 내가 주의를 두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내 주의가 잠시 다른 곳으로 가 있었기 때문에 냉장고를 의식하지 않은 것이지 그것이 냉장고의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그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있다고.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존재성'은 모양의 인식과는 별개라는 사실입니다. 모양 혹은 감각적 경험이 존재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냉장고를 생각하지 않는 순간 그 냉장고의 모양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냉장고의 존재성이 사라진다는 의미죠. 비유를 하자면 존재성이 사라진 형상은 스크린에 비친 영상이나 홀로그램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꿈속에 등장하는 사물로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양은 있지만 존재성이 없습니다.
존재성의 감각적 경험과는 별개의 문제다.
경험된다고 해서 그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존재성은 당신의 생각에 의해서
분리된 관념이 일어날 때만 생겨난다.
생각이 세상을 이원적으로 분리시키는 메커니즘을 알면 실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생각을 거부하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포함하고 넘어서는 거에요. 당신 스스로의 진정한 모습은 모습이 없으며 모든 모습 있는 것들을 포함하는 전체성입니다. 이런 말은 사실 안하는게 좋습니다만 그냥 가볍게 언급합니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여기서 '나'라는 건 몸과 마음을 말하는건 아닙니다.
어쨌든 이번 글의 결론은,
이 세상에 존재성을 부여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이다...로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