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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말록 May 20. 2023

의식이라는 공간

의식과 경험

의식이라고 하면 좀 모호하죠. 잠자는 의식, 꿈꾸는 의식, 깨어있는 의식 등등 종류도 많고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 조금 복잡하고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앞으로는 의식을 그냥 ‘경험’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의식을 경험을 하는 게 아니라 경험 자체를 의식이라고 멀입니다. 색다른 경험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하고 있는 그 평범함 경험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경험을 유심히 보면 참 신기합니다. 깨어있는 의식이 없으면 이 경험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전처럼 내가 눈을 떠서 의식으로 밖에 존재하는 세상을 본다라고 생각하진 마세요. 그것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경험에 대한 '해석'이고 '생각'입니다. 이건 마치 경기장에서 생생하게 벌어지는 축구를 중계하는 해설자의 해설과 같거든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복잡한 건 '생각'이지 당신의 경험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해요. 의식이 있으면 경험이 드러나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경험만 있고 의식이 없거나 의식만 있고 경험이 없는 그런 건 없습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요. 동전은 하나죠. 앞면 따로 뒷면 따로가 아니죠.


우리의 모든 경험이 그대로 의식이라는 새로운 관점에 익숙해진다면 그동안 당연했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모든 것, 들리는 모든 것, 경험되는 모든 것은 이 의식이고 또 이 의식 안에서 일어납니다. 심지어는 당신 스스로에 대한 자아 감각과 육체도 그 의식과 함께 드러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게 되죠. 좀 더 정확하게는 그 모든 것들이 의식 자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멀리 볼 것 없이 지금 바로 당신 눈앞에 보이는 핸드폰이 의식이란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마치 꿈속에서 보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꿈 의식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물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구분하는데 익숙했던 우리에게 보이는 모든 대상들이 의식이라는 말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의식은 정신이고 대상은 물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죠. 기존의 세계 모델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식을 통해서 저 밖의 대상을 인식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잠들거나 기절하면 저 밖의 대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인식만 하지 못 할 뿐이라고 믿습니다. 사물에 반사되는 빛이 눈으로 들어와 망막을 거쳐 뇌에 전기 신호 형태로 전달되고 우리의 의식이 알게 된다는 전통적인 모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경험이 의식이든 아니면 그저 밖의 대상을 인식하는 뇌의 작용이든 이 판단은 일단 접어두고 이런 질문을 드려보고 싶군요. 지금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은 저 밖에 있는 건가요 아니면 뇌 안에 있는 건가요?  휴대폰의 딱딱한 느낌과 온도의 감각은 눈앞에 있는 건가요 아니면 뇌 안에 있는 걸까요?


기존의 세계 모델로 판단한다면 휴대폰의 이미지와 감촉은 눈 밖이 아니라 뇌 안에 있는 게 됩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휴대폰이 사실은 두개골에 갇혀있는 1.4kg의 컴컴한 뇌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뿐 아니죠. 지금 보이는 모든 것, 들리는 모든 것, 그리고 시간과 공간까지 몽땅 당신의 뇌 속의 이미지라는 말입니다. 심지어는 당신 스스로 인식하는 당신 자신까지도 말입니다.


어떠세요? 당신의 모든 경험 그리고 당신 자신까지도 몽땅 뇌 속에 존재한다는 말이 받아들여지시나요? 아니면 뇌는 밖의 대상을 인식할 뿐 뇌 속에 대상이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뇌를 아무리 해부를 해도 당신의 그 경험이나 대상을 발견할 수 없으니 대상이 뇌에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탐구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든 우리의 이 모든 고민과 질문과 의심이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결국 그 또한 경험이니 저의 표현으로 하자면 '의식'이고 기존의 방식대로 해석하면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뇌 속에서 일어난다 하는 것도 의식이고 이것도 의식이고 이 말도 또한 의식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던 고민을 하던 이 경험을 벗어나긴 어렵겠네요. 마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머릿속에 들어간 존 말코비치가 생각나네요. 마주 보는 두 거울처럼 무한하게 반복되는 이미지 같겠지만 결국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용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신기하게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던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던 어쨌든 그 모든 것이 의식을 벗어나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부처님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손오공 자신이 바로 부처라는 진실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아무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경험되는 이 사실에서 여러분도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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