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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Aug 21. 2024

정관정요, 오긍

제왕학, 고전 자기계발서


이 책은 오긍이 당 현종 치세에 당태종 시대의 여러 사례를 모은 일종의 제왕학 자기 계발서이다.  


성공한 군주 당태종 이세민과 실패한 군주 수양제 양광은 친척 관계로 5촌 지간이다. 둘은 묘한 공통점이 있다. 적장자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고(당태종은 형제를, 수양제는 아버지를)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는 것이다. 또한 대외 정벌, 특히 고구려에 대한 집착 역시 동일하다. 


기본적으로 둘은 비슷한 성장 배경과 (장자에 대한) 피해의식, 권력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수양제는 집권 후 권력의 정점에 있었기에 독재자로서 신하의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신하가 간언을 올리면 그 대가는 죽음이나 비슷한 불이익을 주었기 때문에 전혀 자정 작용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카리스마는 대운하 건설을 통해 불모지였던 강남 일대 개발을 할 수 있었지만, 무리한 고구려 원정(화약무기 발명 이전인 냉병기 전쟁 역사상 세계 최대 규모)은 빠른 패망을 이끌었다.


반면 당태종은 집권 후 방현령 등 개국공신과 위징 등 상대 진영에 있었던 인물까지 두루 포섭하여 언로를 열었다. 그는 자신에게 계속 간언을 올릴 것을 적극 권장하였고 후한 상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정관지치라 불리는 태평성대, 성공이 계속되자 점점 자신에게 간언하는 신하들과 논쟁하고 자기 뜻대로 정사를 펼친다. 또한 그는 신하의 반대에도 고구려 침공을 계속한 바 있고, 재미를 위해 지방 순행과 사냥을 다니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는 사서를 열람하여 제멋대로 역사 왜곡을 한 흔적마저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역시 이 책에 다소 미화되긴 했지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인간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당태종은 초기의 성공에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과 닮은 수양제의 실패를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여기고 끊임없이 거울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라는 유명한 위징의 말이 나온다. 또한 순자의 말인 '물(백성)은 배(왕)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를 거듭 인용하며 수양제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역사적 한계는 있지만, 인의를 중시한 유교의 왕도정치 이상을 실천하려 노력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사실 현재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국가는 손에 꼽을 정도이기에 이 책은 역설적으로 빛을 발한다.




인상 깊은 구절



“제왕의 대업은 창업創業(나라를 세움)과 수성守成(창업을 지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어렵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방현령房玄齡이 대답했다.


  “천지가 혼돈에 빠져 영웅들이 다투어 일어날 때는 그들을 쳐부수어야 항복해오고, 그들과 싸워 이겨야만 굴복합니다. 이 점에 근거하여 말해본다면 창업이 어렵습니다.”


  위징이 대답했다.


  “제왕의 군사 봉기는 반드시 혼란한 때를 틈타서 이루어집니다. 저 아둔하고 교활한 폭군을 전복시키면 백성이 제왕을 즐겁게 추대하고 사해 만민이 천명에 귀의하게 되므로, 이는 하늘이 주고 사람이 받는 일이니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천하를 얻은 뒤로는 본래의 뜻이 교만해지고, 백성은 조용한 휴식을 바라지만 온갖 노역은 끝없이 이어지며, 백성이 피로에 지쳐 쓰러지는데도 과도한 업무는 쉼 없이 계속 됩니다. 나라의 쇠퇴는 언제나 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근거하여 말씀드리자면 수성이 어렵습니다.”



만약 기존의 건물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급하지 않은 건물은 제거하면서 줄이고 또 줄여나갑니다. 따라서 화려한 기둥을 세운 집에 띠풀로 지붕을 일 수도 있고, 흙으로 만든 계단에 옥으로 만든 섬돌을 끼워 넣을 수도 있습니다. 백성이 즐거워하는 일을 시키며 그들의 힘을 다 고갈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그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은 편안하지만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은 고생했음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럼 만백성이 기쁜 마음으로 자식처럼 달려올 것이고, 수많은 중생이 임금을 우러르며 선한 본성으로 귀의할 것입니다. 이것이 덕치의 차선책입니다. 



비록 (백성을) 엄혹한 형벌로 감독하고 사나운 분노로 위협한다 해도 끝끝내 구차하게 모면하려고만 할 뿐, 속으로는 좋은 마음을 먹지 않습니다. 겉모습은 공손한 척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복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망의 무서움은 그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니,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민심의 동향입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으므로 매우 신중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썩은 새끼줄로 치달리는 수레를 제어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니 소홀히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시종일관 부지런히 갈고닦아 미래에 모범을 드리워, 후세 사람들이 오늘날을 바라보는 것이, 오늘날 사람이 옛날을 바라보는 것처럼 되게 하면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소? 짐은 근래에 스스로의 잘못에 대해 듣지 못하고 있고, 스스로의 부족한 점도 잘 살피지 못하고 있소. 충성스럽고 간절한 마음을 다하여 자주 훌륭한 간언을 올리는 경에게 의지하여 짐의 생각을 비옥하게 하고 있으니, (다른 일이야) 어찌 하나라도 말할 만한 점이 있겠소?” 



『순자』 「수신修身」 편에도 “나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며 나를 바로잡아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고, 나의 올바른 점을 칭찬하며 나를 바로잡아주는 사람은 나의 벗이며, 나에게 아첨하는 자는 나의 적”이라는 금언이 있다. 



태종이 장현소에게 말했다.


  “경은 나를 수 양제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걸왕과 주왕에 비하면 어떻소?”


  장현소가 대답했다.


  “만약 이 궁전을 끝끝내 건축하신다면 똑같이 혼란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태종은 감탄하며 말했다.


  “내가 잘 생각해보지 않아서 그 한가함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오.”


  또 방현령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현소의 상소문을 보니 낙양에 진실로 수리 공사를 해서는 안 되겠소. 나중에 사리에 맞게 행차를 해야 한다면 노숙을 한다 해도 무슨 고생이라 할 수 있겠소? 모든 노역은 즉시 중지할 것이오. 그러나 낮은 지위의 사람이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 간여하는 것은 옛날부터 쉬운 일이 아니오. 충직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소? 여러 사람이 ‘예, 예’ 하고 순종하는 것은 한 명의 선비가 악악대며15 반대하는 것보다 못하오. 명주 200필을 하사하시오.”



“양신과 충신은 다르오?”


  위징이 말했다.


  “양신은 자신도 아름다운 이름을 얻고, 임금도 영예로운 호칭으로 불리게 하며 그것을 자손만대에까지 전해 끝이 없는 복록을 누리게 합니다. 충신은 자신도 주살을 당하고 임금도 악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하여 가문과 국가를 모두 망하게 한 뒤 홀로 명성을 누립니다. 이런 점에 근거하여 말해보더라도 이 두 유의 신하는 서로 거리가 퍽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 시대의 현명한 임금들은 그릇을 쓰듯 용량에 맞게 사람을 부렸소. 모두 당시의 선비를 선발했을 뿐 다른 시대로부터 인재를 빌리지 않았소. 어찌 부열傅說의 꿈을 꾸거나 여상呂尙을 만난 연후에야 정치를 할 수 있겠소? 또 어느 시대에 현인이 없겠소? 다만 버려두고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일 뿐이오.”



그렇다면 육사란 무엇인가? 첫째, 벼슬에 안주하고 녹봉만 탐하면서 공무에 힘쓰지 않고 세속의 흐름과 더불어 부침하며 좌우의 눈치를 본다. 이와 같은 신하가 구신具臣이다. 


둘째, 임금이 하는 말은 모두 선하다 하고 임금이 하는 행위는 모두 옳다고 하면서 남몰래 임금이 좋아하는 것을 구해 바치고 임금의 이목을 기쁘게 한다. 남몰래 영합하고 비굴하게 아첨하여 임금과 더불어 즐기며 이후의 폐해는 돌아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신하가 유신諛臣이다. 


셋째, 마음속으로는 음험한 생각을 감추고 밖으로는 조심스러운 척하며 교언영색으로 선한 사람을 질투하고 어진 사람을 시기한다. 사람을 추천할 때는 장점만을 밝게 드러내고 단점은 감춘다. 사람을 내칠 때는 단점을 밝게 드러내고 장점은 감춰서 임금이 상벌을 부당하게 내리게 하고 임금의 호령이 시행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신하가 간신姦臣이다. 


넷째, 지혜는 족히 비리를 분식할 만하고 변론은 족히 남을 설득할 만하여 안으로는 골육지친을 이간시키고 밖으로는 조정의 분란을 조성한다. 이와 같은 신하가 참신讒臣이다. 


다섯째, 권력을 오로지하고 세도를 부리면서 하찮은 일을 중요하게 만들고 개인 가문으로 파당을 지어 자기 집안을 부유하게 한다. 또 임금의 명령을 제멋대로 고쳐 자신만 고귀한 지위에 오른다. 이와 같은 신하가 적신賊臣이다. 


여섯째, 임금에게 아첨하여 사악함을 찬양하면서 임금을 불의의 소굴에 빠뜨리고 파당을 모아 임금의 현명함을 가려 흑백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임금의 악행이 나라 안에 두루 알려지게 하고 사방의 이웃 나라에까지 그 소문이 들리게 한다. 이러한 신하가 망국지신亡國之臣이다. 이 여섯 가지를 일러 육사라 한다.



만약 임금이 간언을 듣고 의심이 생기면 그 일은 시행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신하로 하여금 충직한 간언을 다 아뢰고 고굉지신의 힘을 다 쏟아붓게 해도 혹시 때가 되어 두려움을 품으면 아무도 자신의 성실함을 다 발휘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조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바로 겉으로 순종만 하게 하면서 또 말을 다 하지 않는다고 질책하시면 [신하들이] 나아가고 물러날 때 장차 무엇을 근거로 삼겠습니까? 신하들에게 반드시 간언을 올리게 하려면 임금이 간언을 좋아하면 그만입니다.



“짐은 지금 세 가지 일을 부지런히 행하면서 또한 사관이 나의 잘못을 기록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소. 첫째, 이전 시대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고 그것을 국가의 보배로 여기고 있소. 둘째, 선한 사람을 등용하여 함께 정치의 올바른 도를 이루려 하오. 셋째, 소인배를 배척하고 그들의 참소를 듣지 않으려 하오. 나는 이 세 가지를 지키면서 끝끝내 바꾸지 않을 것이오.” 



정관 6년, 태종이 상서좌복야 방현령에게 말했다.


  “근래에 산동의 최崔, 노盧, 이李, 정鄭 네 성씨가 여러 세대 동안 가문이 침체했음에도 여전히 옛 근거지의 세력을 믿고 자존망대하기 좋아하며 사대부를 칭하고 있소. 또 매번 딸을 다른 종족에게 출가시킬 때도 반드시 혼인 예물을 많이 요구하면서 예물이 많은 걸 귀하게 여기는데 액수를 따져서 혼약을 정하는 건 시장의 장사치 흥정과 같은 일이오. 이는 풍속을 심하게 파괴하고 예법의 경전을 문란하게 만드는 행위요. 일의 경중에 있어서 타당함을 잃었으니 올바른 도리로 볼 때 반드시 개혁해야 하오.” 



예부상서 왕규의 아들 왕경직王京直7은 태종의 딸 남평공주南平公主에게 장가들었다. 왕규가 말했다.


  “『의례』에는 며느리가 시부모를 뵙는 예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래에는 풍속이 피폐해져서 공주가 출가할 때 이런 예절을 모두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상께서는 영명하시어 모든 거둥을 예법에 따르고 있습니다. 제가 공주의 알현을 받을 수 있다면 어찌 제 몸의 영광일 뿐이겠습니까? 국가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왕규는 자신의 아내와 자리를 잡고 앉아 공주로 하여금 친히 수건을 잡고 시부모의 손을 씻어주며 음식을 올리는 예절을 행하게 하고 예절이 끝난 후 물러나게 했다. 태종이 소문을 듣고 훌륭한 일이라고 칭찬했다. 이후로는 공주가 출가할 때 시부모가 있으면 모두 이러한 예절을 갖춰서 시행하게 했다.



태종이 말했다.


  “음양가에서는 꺼리더라도 짐은 [그들의 건의를] 시행하지 않겠소. 만약 움직이는 행동마다 반드시 음양가의 건의에만 따르면서 올바른 이치는 돌아보지도 않고 복을 받기 바란다면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소? 만약 시행하는 일마다 모두 정도를 따른다면 저절로 항상 길할 것이오. 또 길흉은 사람에 달려 있는데 어찌 음양에 구애될 겨를이 있겠소? 농사는 시기가 매우 중요하므로 잠시라도 어겨서는 안 되오.” 



한 면으로만 그물을 펼쳐놓고 삼면으로는 동물이 달아나길 축원하고, 금琴을 끌어당겨 시詩를 짓도록 명령을 내리십시오. 하루 이틀 짧은 순간에도 이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십시오. 오직 사람의 행동이 화와 복을 부르고 하늘이 그것을 돕습니다. 저는 간쟁하는 신하로 직언하는 일을 맡고 있어서 감히 앞서의 의심을 말씀드립니다.”



정관 연간에 임읍국林邑國2에서 앵무새를 조공품으로 바쳤다. 본성이 말을 잘했고 특히 사람들과의 응답에 뛰어났지만 자주 괴롭다는 말을 했다. 태종은 이를 불쌍히 여기고 사신에게 부탁하여 다시 숲으로 되돌려놓게 했다.



태종이 『제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저 무기와 갑옷은 국가의 흉기다. 토지가 넓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민생이 피폐해진다. 중원이 편안하더라도 전쟁을 잊으면 민심이 해이해진다. 민생 피폐는 백성을 보전하는 대책이 아니고, 민심 해이는 적을 막는 방법이 아니다. 무기와 갑옷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해도, 그것을 항상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농한기에 무술을 강구하며 군사 의례를 익혀야 한다. 3년 동안 군사 연습을 하여 그 등급과 차례를 판별한다. 따라서 월왕 구천은 개구리에게 예의를 표하여 마침내 패업을 이루었지만, 서언徐偃은 무기를 버렸다가 끝내 나라를 잃고 말았다. 무슨 까닭인가? 월왕 구천은 군대의 위의를 익혔지만 서언은 나라의 방비를 잊었기 때문이다. 또 공자는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전쟁을 하는 것은 그들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때문에 활쏘기의 위력을 알고 그것으로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이 군사를 부리는 사람의 직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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