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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Oct 30. 2024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가네코 후미코

아나키스트 박열의 동지이자 아내로 수식하기엔 부족한 신여성(新女性)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책이다. 저자는 유명한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 박열의 동거녀였다. 그녀는 박열과 함께 천황 암살 모의 혐의로 감옥에서 수감되어 23세의 나이로 의문사한다. 아이러니하게 박열은 8.15 해방 이후에 수감생활에서 벗어나 생존한다. 그녀의 수기를 참고했던 국내 영화로 비운의 명작 <아나키스트>가 있다. 극 중에서는 예지원이 저자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옥중수기로 재판에 활용하기 위해 썼던 진술서이다. 따라서 소설이라 볼 수는 없지만, 워낙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데다 필력마저 뛰어나 마치 자전적 소설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오래 생존했다면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본 작품은 무적자(無籍子)인 유년 시절부터 시작하여 박열을 만나 동거하기 전까지 과정을 담았다. 그녀의 인생이 짧았기에 자연스럽게 대부분 지면은 미성년 시절 생활에 할애했다. 그 유년 생활은 본인이 룸펜(프롤레타리아)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부모의 제대로 된 부양을 받지 못한 떠돌이 부랑자 인생이었다. 무적자인 이유 역시 아버지가 호적에 올리지 않은 것 때문이지 부모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으나 부모 양쪽에서 사실상 양육을 포기했다. 특히 저자가 조선에서 친할머니를 따라 7년 생활을 하면서 겪은 고초는 아동폭력(child abuse) 고발문학이 아닐까 싶을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 내용이 창작물이 아닌 자신의 체험담이기에 책을 계속해서 읽어나가기 힘들 정도로 안타까웠다. 어린 소녀였던 저자가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하려는 장면 묘사와 운명에 의해 복수의 감정으로 살아가길 다짐하는 그녀의 심정 변화가 그 정점에 다다른다. 


그녀는 이러한 핍박을 통해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저항하기를 택한다. 기존 체계에 안주하지 않도록 밑바닥 인생이 되었음에 오히려 감사한다. F. 니체의 운명애(amor fati)가 떠오른다. 실제로 그녀는 니체의 철학을 접하기도 했다.


그녀는 종교(기독교)를 통해 가난을 구원받지 못함을 깨달았고, 사회주의 역시 지배계급의 변화만 있을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아나키스트는 그녀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사회에서 남들처럼 잘 사는, 성공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나 자신이 되길 원했다. 저자는 민족운동자(독립운동가)는 싫다고 했고 박열 역시 이를 부정했다. 사후에 저자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가 된 것은 꽤나 역설적이다.


나는 남을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자신의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

책의 결말 혹은 그녀의 비극적 최후를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서 박열과의 운명적 만남 이야기가 마지막에 짤막하게 나온다. 결말을 몰랐다면 슬픔 가득한 작가의 인생에 다가온 마치 해피엔딩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유언처럼 영원한 실재 속에 존재할 것이라고 마무리한다. 마치 스피노자의 영원성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글 안에서 독자에게 선명한 목소리로 나답게 살아갈 것을 말한다.  


모든 현상은 비록 그 모습으로는 사라진다 할지라도 영원한 실재 안에서는 계속 존속할 것이라고.


인상 깊은 구절



아아, 세상에 학교라는 것만 없었다면, 나는 그렇게 많이 울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저 아이들에게서 그런 기쁨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 나는 아직 모든 사람의 기쁨은 다른 사람의 슬픔으로만 지탱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문지방 밖에 서서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일어나더니 “어서 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라며 나를 밖으로 밀어내고는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이제는 운명이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용기를 내어 죽은 것처럼 숨도 쉬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숲 아래를 언제 어떻게 지나갔는지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군고구마 가게에서 따뜻한 고구마를 보자기에 싸 달라고 한 뒤, 다시 아까 숲 아래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에 내몰리면서 곧장 달려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아아 그때! 나는 무심코 얼굴을 돌리고 다시 또 어두운 문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군고구마가 먹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나를 내쫓고 싶었다. 



도시에 살면서 7층, 8층 높이의 빌딩을 보고, 긴자의 눈부신 쇼윈도를 보는 사람들, 자가용으로 기다리는 길을 오가며 카페를 드나드는 사람들, 여름엔 선풍기, 겨울엔 난로에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거짓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거짓이나 과장도 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도시의 번영은 시골과 도시의 교환으로, 도시가 완전히 시골을 속이면서 취했기 때문이라고. 



어느 날 누군가 제게는 처음 보는 여자분이 와서 저를 보고 아마 세련된 척을 하며,


“어머, 정말 사랑스러운 딸이네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기쁜 표정도 짓지 않고 지극히 무심하게 “아니에요, 그냥 지인 집 아이예요. 아무래도 너무 가난한 집 아이라 예절도 모르고 말투도 천한 말밖에 모르니 정말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있지만, 너무 불쌍해서 그냥 데려왔어요”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내가 무적자였던 것이 나의 죄일까? 내가 무적자였던 것은 내가 알고 있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만이 알고 있는 일이고, 그 책임도 두 사람만이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나에게 그 문을 닫았다. 남들은 나를 멸시했다. 친할머니조차도 그 때문에 나를 멸시하고 위협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 심각한 체험을 통해 말하고 싶다.


――아이에게 자기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지도록 하라.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맹세하게 하지 마라. 그것은 아이에게서 책임감을 앗아가는 것이다. 비굴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에도 행동에도 겉과 속을 가르치는 것이다. 누구라도 자기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약속해서는 안 된다. 자기 행동의 주체를 감시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자기 행동의 주체는 완전히 자기 자신이어야 함을 사람은 자각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야 비로소 사람은 누구도 속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겁먹지 않는 진정으로 확고부동하고 자율적이며 책임감 있는 행동을 낳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우리 집은 천한 가난뱅이와는 격이 다르니까, 평소에 아이를 밖에 내보내 놀게 하는 흉내는 낼 수 없단다”라고 할머니에게 항상 훈계를 듣고, 그 고상한 교육 방침에 따라 집안에 갇혀 있는 자신이 슬펐다. 그것도 단지 나를 자기 집에서 노예처럼 부리기 위한 구실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더욱 슬펐다. 



――왜 그렇게 무리한 일을 하시는 겁니까? 당신은 도대체 아이가 소중한 겁니까, 기모노가 소중한 겁니까? 아이는 기모노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기모노는 아이를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그렇게 더럽히면 안 된다면, 좋지 않은 조잡한 기모노를 입히면 되는 거 아닙니까?


――어른들은 자신의 체면이나 인색함 때문에 아이를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어른들, 특히 어머니는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는 것이 그들의 직분입니다. 아이의 자유를 빼앗고 아이의 인격을 빼앗는 것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아이를 자유롭게 놀게 하세요. 자유로운 세상에서 노는 것은 자연이 아이에게 부여한 유일한 특권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아이는 마음껏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절대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아, 자연이여! 자연에는 거짓과 위선이 없다. 자연은 솔직하고 자유로우며, 사람처럼 사람을 왜곡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나는 이렇게 느꼈다. “고맙습니다”라며 산에 감사를 표하고 싶어진다. 동시에 문득 지금의 삶이 떠오르면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때는 실컷 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산에서 보내는 하루만큼 나를 되찾아 주는 날은 없었다. 오직 그날만이 나의 해방된 날이었다. 



나는 몰래 집을 나왔다. 나와도 갈 곳이 없었다. 바로 아래 길가에 있는 조선인들의 공동 우물 옆으로 가서 까닭도 없이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거기에 아는 조선인 아주머니가 푸른 나물을 그릇에 담아 씻으러 왔다. 내 얼굴을 보더니,


“또 할머니한테 혼났어요?” 하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해라!” 아주머니는 빤히 나의 애처로운 모습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집에 놀러 오지 않을래요, 딸도 집에 있으니까요.”


나는 또 울고 싶어졌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그저 큰 자비심에 녹아든 감격의 눈물로…….


“감사합니다, 가 보겠습니다.” 이렇게 감사를 표하고, 나는 비틀거리며 여주인의 뒤를 따라갔다.


여주인의 집은 숙모의 집 뒤편 절벽 위에 있었다. 거기에서는 숙모 집안이 잘 보였다. 거기서 나는 또, 숙모 집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실례지만, 점심은 드셨나요?”


“아니요. 아침부터...”


“어머, 아침부터...” 하고 딸은 놀란 듯이 소리쳤다.


“어머, 불쌍해라!” 하고 여주인은 다시 또 이 말을 반복했다.


“보리밥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드시지 않겠어요? 밥은 많이 있으니까...”


아까부터의 감정은 이제 가슴속에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나는 무심코 소리 내 울었다.


조선에 있었던 길고 긴 7년 동안 이때만큼 나는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에 감동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멍하니 맥이 빠진 마음 어딘가에 ‘죽음’이라는 관념이 문득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래, 차라리 죽어버리자...... 그 편이 얼마나 편할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완전히 구원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완전히 구원받았다.


내 몸과 정신에 힘이 솟구쳐 올랐다. 시들해진 손발에 힘이 생겨나고 이유 없이 일어설 수 있었다. 공복감 같은 건 영원히 잊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12시 반 급행열차가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 바로 그거다. 그것으로 하자. 눈을 감고 단번에 뛰어들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대로는 너무 초라하다.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히 허리띠만 갈아입고, 방구석의 상자에서 소매가 딸린 홑옷과 모슬린 반 폭 띠를 꺼내 작게 접어서 보자기에 쌌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이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 나처럼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복수해야 한다. 그래 죽어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강가의 자갈밭 위에 내려섰다. 그리고 옷자락과 허리춤에서 돌멩이를 하나둘씩 던져버렸다. 



나는 조선에 있는 숙모 댁에서 기르던 개를 떠올렸다. 그 추운 조선의 겨울밤에 돗자리 한 장 주어지지 않고 밖에서 자야 했던 개를 떠올렸다. 내가 밥도 먹지 못하고 밖으로 쫓겨나 있는 동안 마치 나의 고통과 슬픔을 알아주는 것처럼 꼬리를 흔들고 고개를 숙이고 코를 훌쩍이며 내게 다가왔던 그 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런 내가 개의 목에 꼭 매달려서 있는 힘껏 개를 껴안고, 혼자 마음속으로 훌쩍훌쩍 울었던 것도. 또한 밤에 몰래 나가서 개의 잠자리에 짚을 깔아주었던 것도. 그리고 또 어릴 적 아버지가 찔러 죽인 개의 가련한 죽음의 모습을. 



태어날 때부터 나는 불행했다. 요코하마(横浜)에서, 야마나시(山梨)에서, 조선에서, 하마마츠에서 나는 시종일관 학대받고 억압받았다. 나는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과거의 모든 것에 감사한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조부모에게도, 삼촌과 숙모에게도, 아니 나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지 않고, 곳곳에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게 해준 나의 모든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아버지나 조부모, 삼촌과 숙모의 집에서 아무 불편함 없이 자랐다면 아마도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그들의 사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끝내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았기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겨우 17살이다.



그 무렵은 이미 여름이었기에 석양이 쨍쨍 내리쬐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땀과 먼지로 더러워졌고, 게다가 끊임없이 외쳐야 했기에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고통마저 꾹 참아냈다.


희망이 그 고통을 이겨내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신을 섬기고 사람에게 봉사했다. 하지만 나는 그 보답을 받지 못했다. 나는 이미 사흘이나 굶주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직업을 구하러 돌아다녔지만, 그 직업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불해 둔 숙박비가 끝났다며, 집주인에게 청구를 받았다. 물론 나는 지불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내 눈에 띈 것은 끝부분 한구석에 실린 짧은 시였다.


나는 그 시를 읽었다. 얼마나 힘찬 시였던가. 구절마다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는 마치 황홀경에 빠진 듯했다. 내 가슴의 피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어떤 강렬한 감동이 내 모든 생명을 고양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 작가의 이름을 보았다. 내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박열(朴烈)이라는 게 그것이었다. 누군가의 필명인가 싶었다. 하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이 시에 걸맞은 남자를 나는 아직 조선인 사이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요즘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희망에 불타올랐던 나는 고학을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분명히 깨달았다. 지금의 세상에서는 고학 같은 걸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다. 소위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사람들로부터 훌륭하다고 불리는 것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나는 남을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자신의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 



그것을 우리 동료 중 한 사람은 도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초대 씨와 마찬가지로 이미 이렇게 된 사회를 만인의 행복이 되는 사회로 변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별다른 이상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하나 초대 씨와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비록 우리가 사회에 이상을 가질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에게는 자신의 진정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든 말든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우리는 다만 이것이 진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그것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진정한 삶이다.  



“있잖아요, 후미코 씨. 부르주아들은 결혼하면 신혼여행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동거 기념으로 비밀 출판이라도 해볼까요?”


“재미있겠네요, 합시다.” 내가 조금 들뜬 기분으로 찬성했다.


“무엇을 할까요? 저는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의 『빵의 약탈』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둘이서 번역할까요?”


박은 그러나 반대했다.


“그건 이미 번역본이 나와 있어요. 게다가 남의 것은 내고 싶지 않아요. 그보다는 빈약하더라도 둘이 쓴 게 좋겠어요.”


우리는 그런 계획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우리는 공원을 나와 거리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시간도 이미 꽤 지나 있는 것 같았다. 



머지않아 내 존재는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모든 현상은 비록 그 모습으로는 사라진다 할지라도 영원한 실재 안에서는 계속 존속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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