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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Oct 16. 2024

디 에센셜: 한강

노벨문학상을 위한 시간



한강 작가가 국내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독서 불모지로 변해가는 한국에서 오래간만에 내리는 단비, 아니 홍수가 아닐까 싶다. 그녀가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고 했을 때 기묘한 스노비즘이 발동해 읽진 않았다. 뒤늦게 수상 소식을 듣고 책을 (무료로) 구하려 하니 회사 전자도서관에 이 책 한 권이 있었다. 이틀에 걸쳐 읽고 간단히 리뷰해 본다.


이 책은 문학동네 <디 에센셜> 시리즈로 작가의 다양한 편린들을 한꺼번에 살필 수 있어 좋다. 1권의 장편소설, 2권의 단편소설, 시와 수필, 기타 작가의 글이 실려있다. 생존 작가로서 직접 작품을 선택하였기에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자신과 가장 닮은 글을 선택했을 것이니까.


장편 <희랍어 시간>은 눈이 멀어가는 남자 희랍어 강사와 실어증에 걸린 여자 수강생의 이야기이다. 두 명의 화자를 넘나들며 이야기가 마지막에 합쳐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서서히 잃어가는 사람과 이미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의 끝은 사랑이다. 나는 슬픔을 담담히 묘사하는 것, 좌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등장인물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작가의 따뜻한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 마찬가지로 단편 <회복하는 인간>에서 언니와의 관계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외상과 연관 짓는다. 주인공은 상처가 회복하길 부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언젠가 회복할 것이라고 제목을 통해 독자에게 넌지시 말한다.  


한편 작가는 초기에 시인으로도 활동했다. 책에 실린 몇 편 안되는 시 중 가장 마음에 든 시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이다. 저자는 갓 지은 밥의 모락모락 피는 김에서 필멸을 깨달았다. 아래 인용했으니 확인해 보기 바란다.  


저자의 산문 중에 <종이 피아노>는 가난했던 초등학생 시절 문방구에서 피아노 대신 샀던 종이 피아노에 대한 글이다. 나중에 중학교 때 형편이 나아져 부모님이 피아노 학원에 다니라고 하는 대목이 가슴 찡했다. 미천한 글쓰기를 종종 하는 나에게 이런 정서를 가지런한 필체로 독자를 눈물짓게 할 수 있는 작가의 재능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You deserve it!





인상 깊은 구절



당신의 아버지가 예고했던 마흔 살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나는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 일이 년쯤은 더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더디 진행되어온 일이므로, 마음의 준비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허락받은 담배를 가능한 한 오래 피우는 죄수처럼, 볕이 좋은 날이면 집 앞 골목에 나가 앉아 긴 오후를 보낼 뿐입니다. 


희랍어 시간



παθεῖν (patheín)

μαθεῖν (matheín)



‘수난을 겪다’는 뜻의 동사와 ‘배워 깨닫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거의 흡사하지요? 그러니까 지금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언어유희로 두 가지 행위가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무심코 팔꿈치로 누르고 있던 육각 연필을 빼낸다. 얼얼한 팔꿈치를 한번 문지른 뒤 흑판에 적힌 두 단어를 공책에 옮겨적는다. 먼저 희랍 알파벳으로 단어를 쓰고, 결국 그 옆에 모국어로 뜻을 써넣지 못한다. 대신 왼주먹을 들어 졸음기 없는 두 눈을 문지른다. 희랍어 강사의 해쓱한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의 손이 움켜쥔 백묵을, 하얗게 마른 핏자국 같은 모국어 문자들이 선명하게 흑판에 박혀 있는 것을 본다.


  하지만, 이 단어들의 중첩을 단순히 언어유희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에게 무엇인가를 배워 깨닫는 일은 글자 그대로 수난을 의미했으니까요. 소크라테스 자신은 생전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도, 그를 지켜본 젊은 플라톤에게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되었을 겁니다.


희랍어 시간



하지만 나는 어김없이 그 세계의 것들에 매혹되었지.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를 강의하던 보르샤트 선생이 잠재태에 대해 설명하며 “앞으로 내 머리는 하얗게 셀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죠. 지금 눈이 내리고 있지 않지만, 겨울이 되면 적어도 한 번 눈이 올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내가 감동한 것은, 오직 그 중첩된 이미지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어. 강의실에 앉은 젊은 우리들의 머리칼이, 키 큰 보르샤트 선생의 머리칼이 갑자기 서리처럼 희어지며 눈발이 흩날리던 그 순간의 환상을 잊을 수 없어.


  플라톤의 후기 저작을 읽을 때, 진흙과 머리카락, 아지랑이, 물에 비친 그림자, 순간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동작들에 이데아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내가 그토록 매혹되었던 것도 마찬가지였어. 오직 그 의문이 감각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 아름다움을 느끼는 내 안의 전극을 건드렸기 때문이었어.


희랍어 시간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 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언젠가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내가 이끌고 온 모든 경험의 기억을 나는 결코 아름다웠다고만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렇게 남루한 맥락에서 나는 플라톤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라고.


  그 역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


희랍어 시간



이따위, 라고 중얼거리며 당신은 축축한 흙 위에 누워 있다. 회백색 구멍 속의 상처 따위는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흙이 들어간 오른쪽 눈이 쓰라리다. 이 모든 통각들이 너무 허약하다고, 당신은 수차례 두 눈을 깜박이며 생각한다. 지금 당신이 겪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회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차가운 흙이 더 차가워져 얼굴과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게 해달라고, 제발 다시 이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게 해달라고, 당신은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기도를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린다. 


회복하는 인간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얼마 뒤 나는 문방구에 가서 십원을 주고 종이 건반을 샀다. 책상에 네 귀퉁이를 압정으로 붙여놓고, 학교에서 간단히 배운 대로 노래를 연주했다. 물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고개를 까닥거리며 신나게 쳤다. 시위를 하거나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그저 아이다운 낙천성이었을 뿐인데,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내가 종이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던 때가 그 시절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중략)


 그때 어머니가 우셨다. 내가 뙤약볕 속에 쪼그려앉아 어머니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때는 그토록 냉정하게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어머니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가 배우기 싫어도, 엄마 아빠를 위해서라도 일 년만 다녀줘라. 안 그러면 한이 돼서.


  이번에는 어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말씀하셨다. 내 책상에 일 년도 넘게 붙어 있었던 종이 건반에 대해서. 그걸 볼 때마다 까맣게 타들어갔던 마음에 대해서.


종이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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