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는 주가수익비율(PER), 주당순이익(EPS), 주가순자산비율(PBR) 같은 멀티플 개념이 있다. 멀티플이 존재하는 이유는 특정 기업, 특정 산업, 전체 주식시장의 현재 주가가 실제 가치에 비해 고평가(또는 저평가) 되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이다.
멀티플 : 주식의 가치를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로, 특정 기업의 주식 가격을 그 기업의 이익이나 자산, 매출 등과 같은 재무 지표로 나눈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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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시장에는 PIR이라는 개념이 있다. PIR을 보는 이유는 집값을 떠받치는 것은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이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은 차주(대출자이자 주택 소유자)의 상환 능력을 보고 대출한다.
PIR(Price to Income Ratio) : 집값의 버블을 측정하는 추산법, ‘연소득 대비 집값 비율’
이코노믹 리뷰
특정 시점에 집값이 국민소득 멀티플을 한계점 위로 넘어서면 주택 구매를 포기하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부동산 버블의 붕괴라고 한다.
PIR은 여느 통계가 그렇듯이 조사 기관마다 조금씩 상이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국토교통부, KB부동산에서 정기적으로 PIR을 조사한다.
국내 PIR, 뉴스1
먼저 국토교통부 자료는 연 단위로 나온다. 최근 자료가 2022년인데 수도권 기준 PIR은 9.3으로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인다. 2022년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거품이 막 걷히기 시작하던 때이다.
KB부동산
KB부동산은 분기별로 PIR 자료가 나온다. 서울 기준 2022년 2분기 14.8을 정점을 찍고 24년 2분기 11.5까지 내려왔다. 같은 기간 경기도는 10.8에서 8.9로, 인천은 10.8에서 8로 PIR이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의 PIR
서울 신축 아파트(1~5년된 아파트) PIR 추이 [출처: 연합인포맥스]
반면 연합인포맥스에서 2023년 PIR 조사대상을 서울 신축 아파트(1~5년)로 자체 조사한 적이 있다. 대상 기간은 2006년부터 2023. 10월까지이다. PIR은 2022년 21.3을 최고점으로 상승한 후 23. 10월 19.3으로 소폭 조정되었다. 똘똘한 한 채,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열풍의 결과이다.
ifs POST
2021년 국가미래연구원(ifs)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PIR은 KB국민은행의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2014년 3분기의 8.8배에서 2021년 2분기에는 18.5배로 급상승했다. 이는 일본이 경험했던 부동산 버블의 절정기인 1990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도쿄지역의 맨션아파트의 PIR(도쿄칸테이-일본 최대급의 부동산 데이터 기업-기준)이 1985년의 8.08배에서 급상승해 1990년에는 18.12배를 기록한 바 있다. 도쿄지역의 장기평균 PIR은 8배 정도로 평가되기 때문에 1987~1993년 동안은 평균선에서 이탈했던 버블이 존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버블 경제 시절 도시별 PIR [출처: Tokyo Property Central]
일본 버블 경제가 끝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지나친 부동산 가격 폭등은 사회갈등을 유발했고, 결국 여론에 떠밀려 일본 정부는 부동산 대출을 제한하는 ‘부동산 총량규제’를 도입했다. 또한 일본은행도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주장하며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2. 일본은행은 1989년 5월말 정책금리를 2.5%에서 3.25%로 0.75%포인트 올린 데 이어, 이후 4번의 추가 인상을 거쳐 1990년 8월 6.0%까지 끌어 올렸다.
3. 이러한 유동성 축소에 부동산시장보다 주식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1989년말 39,000까지 오르며 정점을 찍은 주가는 1990년 23,000으로 40%나 하락했다. 이후 부동산 시장도 하락으로 전환하며 상업용 부동산은 고점 대비 83% 정도 빠졌고, 주거용 부동산 또한 50% 이상 빠졌다.
4. 부동산 가격은 한꺼번에 급락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큰 폭의 하락세가 수년 동안 지속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도쿄 아파트의 PIR도 1990년대 중반 약 8.9배로 낮아졌다.
뉴스다임
부동산 가격, 버블인가?
부동산 버블에 대한 우려가 깊은 한국은행 또한 PIR을 언급한 적이 있다.
국가별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 (NUMBEO 제공)
한국은행은 2023.9월 펴낸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 이른바 PIR(Price per Income Ratio)*이 26.0배로 나타났다는 국가 비교 통계 사이트 NUMBEO의 주장을 인용했다.
* 중위 사이즈인 90㎡ 아파트 가격을 가계의 평균 순가처분소득액으로 나눈 값
해당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PIR은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80개국의 중앙값(11.9배)을 크게 웃돈다. 올해를 기준으로 오로지 10개국*만이 우리를 제쳤다.
또한 한국의 PIR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10.3배), 이탈리아(9.7배), 스페인(7.8배)을 크게 상회했으며 심지어는 우리와 같은 아시아 국가이면서 높은 인구 밀집으로 유명한 대만(20.1배), 싱가포르(15.5배)를 가뿐히 제쳤다.
작성일 현재 NUMBEO에서 서울(15.3)과 뉴욕(27.3) PIR을 비교해 보면 서울이 뉴욕보다 78% 이상 높다. 뉴욕 집값이 훨씬 비싼 것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IMF 2024년 추정치 기준 미국의 1인당 명목 GDP는 8.5만 달러이고 한국은 3.4만 달러로 미국인의 소득이 250% 더 높다.
NUMBEO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국내의 비정상적인 PIR에도 불구하고 시장 가격은 꾸준히 유지되는 것일까?
부동산 마켓메이커, 정부
부동산 가격은 2022년을 정점으로 가격 조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2023년 부동산 시장에 커다란 변수가 발생한다. 2024년 총선을 앞둔 정부의 시장 개입이 시작된 것이다. 기존에 소득 제한이 있던 보금자리론을 특례보금자리론으로 리브랜딩 하여 25.8조 원의 정책자금 주택 담보대출을 일으켜 부동산 가격을 펌핑 시켰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특례보금자리론 가운데 2023년에만 10만2671건(25조8126억)이 신규 주택구매 용도로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아파트 매매 건수인 41만1812호(한국부동산원 부동산통계정보 기준)의 4분의 1에 이르는 규모다. 지난해 서울 전체 매매 규모(3만6439호)의 거의 3배, 경기도 전체 매매 규모(10만4350호)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 가격을 크게 좌우할만한 거래량이다.
한겨레
가격이 치솟아 오르자 특례보금자리론을 중단시킨 정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 저출산 해결을 위해 신생아 특례 디딤돌대출이라는 정책자금을 신규 공급한다. 제목대로 2년 이내 출생한 자녀를 가진 사람만 신청할 수 있다. 이 역시 24년 6개월 동안 2조 원 가까운 물량을 시장에 쏟아냈다.
신생아 특례도 실행하면서 정책 개입 효과를 배가시켰다.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받은 신생아 특례 자금 용도별 실행 실적을 봤더니 2024년 1월 29일부터 7월 31일까지 신규 주택구매에 1조9830억원(6657건)이 집행됐다.
한겨레
이렇게 정부는 세수 확보와 자산 70%가 부동산에 집중된 국내 민심 이탈 방지를 위해 시장에 바보들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부동산 불패신화는 계속될까?
최근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폭력시위 사태는 출산율 감소에 따른 것이다. 이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출산율은 학생 정원 축소를 가져오고 결국 노동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주택 구매력 있는 세대가 줄어들면 주택 가격이 높게 유지될 수 없다.
일본 출산율은 버블경제 시절에도 1.5대를 유지했다. 반면 세계 최저 출산율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반등의 기미가 없을 지경이다.
주택 가격이 상당한 조정을 겪고 있는 중국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시점과 묘하게 겹친다. 이는 단순히 시진핑 정권의 부동산 규제 정책과 다른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출산율 감소 추세는 결국 부동산 가격 하방에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인구 소멸은 결혼식장, 어린이집, 학교만 폐교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주택 구매자 감소로 이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소득 없이 집을 살 수 없다. '
다시 이야기를 PIR로 돌아가 보자. 연 소득이 줄어들면 PIR이 높아진다.
주택가격(Price) ÷ 연소득(Income) = PIR
소득 감소는 PIR을 높일 것이다. 그리고 PIR이 높아지는 것은 주택 가격이 상대적으로 고평가되어 가격 매력도를 하락시킬 것이다.
한국경제
통계청에 따르면 실업률은 2.9%로 예상보다 낮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직활동 단념을 의미하는 쉬었음 인구는 증가하여 2024년 역대 최대 237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실질적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경제
기업은행에 따르면 2024년 중소기업 연체율 또한 1%에 육박하고 있다. 기업 도산으로 더욱 많은 실업자(혹은 그냥 쉬었음)가 양산될 것이 우려된다. 이는 중소기업뿐만이 아니다. 현재 고환율(원화 약세, 달러 강세)로 인한 내수 침체, 출산율 감소로 인한 수요 감소로 대표적인 유통 대기업마저 흔들리고 있다. 롯데그룹 위기설로 최근 롯데지주는 52주 신저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롯데지주, 네이버페이증권
앞으로 국내 경제는 최근 미 대선 결과 트럼프 재집권이 확정되면서 미국 우선주의, 보호주의 무역으로 수출 주도 경제에 타격이 우려된다. 대표적 경제 선행지수인 주가지수 코스피는 이미 G20 수익률 중 최악을 기록했다.
동아일보, 한국경제
부동산시장 역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에도 대출 규제가 이어지자 주택 가격은 서울 아파트 기준 24. 7월 12.3억 원에서 11.3억 원으로 하락(평균 거래금액 기준) 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가난한 세대, 30대
PIR을 이루는 소득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살펴볼 내용이 있다.
가계금융복지데이터,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2021년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에서 발간한 가계금융복지데이터에 따르면 생애주기(라이프사이클) 상 주택 구매 수요가 가장 많은 30대는 Y 세대(1985~1996년 출생)에 속한다. 이들은 이전 세대인 산업화 세대(1940~54년 출생), 1~2차 베이비부머(1955~74년 출생), X세대(1975~84년 출생)에 비해 유일하게 앞선 세대의 순자산을 뛰어넘지 못했다. 특히 수도권 1990년대생의 자산 불평등이 가장 심각하다.
가계금융복지데이터,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결론적으로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조정되지 않는 한 부의 불평등은 계속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물려받을 자산이 없거나 적은 Y세대, Z세대가 집을 살 여력이 있을까? PIR은 보이지 않는 손, 시장경제에 의해 정상화될 것이다.
9줄 요약
1. 부동산가격 버블은 PIR(연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로 측정한다.
2. 서울 아파트의 PIR은 일본 버블경제 시절 도쿄의 PIR(18.1)과 유사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