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고통스럽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던 나는 그의 유명한 단편인 이 책이 무미건조한 느낌을 것이라고 예단했다. 하지만 이 편견은 첫 페이지부터 빗나갔다. 유머러스하며 무엇보다 흡입력 있는 페이지 터너 수준이었다. 그가 당대에 성공을 하지 못한 것은 시대를 조금 앞서간 것뿐이라는 사실을 공감하며 나는 이 책에 대한 예찬을 늘여놓고 싶다.
주인공인 월가(Wallstreet)의 변호사 '나'가 고용한 (지금은 멸종한 직업인) 필경사* 바틀비는 문제적 인간이다. 그는 상사이자 고용인의 정당한 요구를 당당하게 거부한다. 하지만 '나'는 바틀비가 보여주었던 성실하고 진중한 모습 때문에 해고하지 못한다.
* 손글씨로 글을 적는 사람
태업을 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바틀비는 사무실에서 취식까지 하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이 많은 '나'는 그꼴을 몇 달을 지켜본다. 더 나아가 바틀비는 휴업을 선언한다. 결국 '나'는 바틀비를 쫓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사무실을 이전한다.
분명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본주의 세계 아래 바틀비의 이런 무개념 행동에 분노할 수 있다. 고용인 뿐만 아니라 피고용인 동료에게 자신의 업무를 전가하는 셈인데 그들 역시 또 다른 문제적 인간들이라 독자로서는 감정이입이 차단된다. 바틀비가 안쓰럽게 보이도록 한 작가의 노련한 설정일 수 있다.
'팔리지 않는 글을 쓰는 작가'가 바틀비이자 저자인 멜빌이라는 해석을 따르면 거울을 보고 그린 초상화 같은 글 같다. 상업주의와 예술주의 간의 갈등이란 인간의 삶을 숭고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이 책은 작가 사후에도 여전히 출간되며 독자에게 '바틀비를 바라보는 나'를 보여줌으로써 이를 증명하고 있다.
주인공 바틀비는 '선호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노무를 거부했다. 그는 모든 일, 여가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식사까지 거부하게 된다. 이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같은 느낌을 준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면 나와 같은 기분으로 읽은 것이 맞다.
I would prefer not to.
-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나는 저녁 여섯 시 이후 그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못했지 만, 그의 얼굴은 흡사 태양과 같은 주기로 달아올랐다가 사그 라지곤 하는 것 같았다. 살면서 기이한 우연들을 많이 보아 왔 지만, 터키의 얼굴이 가장 붉고 환하게 빛나는 그때가 바로 그의 업무 능력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라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다.
나는 너무나 놀라 어안이 벙벙하였다. 일단 내가 잘못 들었거나 바틀비가 나의 말을 오해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문장으로 다시 한번 부탁을 했다. 그런데 나만큼이나 정확한 어조로 그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합니다."
"I would prefer not to."
나의 첫 번째 감정은 순수한 슬픔과 진심 어린 연민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내 상상 속의 바틀비가 점점 더 절망적이고 고독한 모습으로 자라나며 그 슬픔은 곧 공포로 그리고 연민은 거부감으로 바뀌었다. 비참한 모습을 생각하거나 보게 되면 어느 정도까지는 연민이라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더 이상 그럴 수 없어지는 법이다. 섬뜩하긴 하지만 진리였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선 천적 이기심 때문이 아니다. 외려 이것은 '인간의 선천적 본성 은 치유될 수 없다.'는 우리의 절망감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감수성이 예민한 존재에게 연민은 종종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연민으로는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구원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일반적 상식에 따라 우리의 연민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사하는 날, 나는 인부들과 함께 짐마차를 대동한 채 사무 실로 갔다. 가구가 많지 않았기에 이사를 마치는 데에는 몇 시 간 걸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바틀비는 계속 칸막이 뒤에 서 있었다. 나는 맨 마지막으로 칸막이를 옮기라고 지시했다. 칸 막이가 걷혔다. 마치 거대한 2절판 책처럼 칸막이가 접힌 후에도 그는 그 휑한 공간 속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입구에 서 서 그를 지켜보다가 내 안에서 무언가가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잘 있게, 바틀비. 나는 가네. 잘 있어. 신의 가호가 함께하 기를, 그리고 이것을 받게."
나는 그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바닥에 떨어졌다.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벗어나길 갈망했던 그에게서 억지로 나 자신을 떼어 낸 채 떠났다.
낙담 속에 죽어 간 사람들에게 전해졌어야 할 용서였으며, 절망 속에 죽어 간 사람들에게 전해졌어야 할 희망이었고, 구원 없는 재난에 질식해 죽은 자들에게 전해졌어야 할 희소식이었다. 생명의 임무를 받아 나섰지만 죽음으로 질주하고 말았던 그 편지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