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나는 업무를 병행하면서 사무실 이전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 우리 회사는 보통 신규 지점을 오픈하면 정기 인사 시점에 맞춰 사무실 개설준비를 위한 전담 인력을 따로 뽑아 발령 낸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근무하던 지점의 임차 사무실의 소유주인 사모펀드가 일방적으로 계약기간 만료를 통보하는 바람에 추가 인원 충원 없이 지점의 고참 팀원으로서 일을 떠맡았던 것이다.
그나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사무실 이사에 대한 본사의 충분한 지원(오피스 전문 부동산업체 및 이사업체)이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사무직이었기에 얼마간 괴로움은 있었지만 과로사를 걱정할 만큼 힘든 정도는 아니었다.
최근 과로사를 은폐한 것으로 언론에 폭로된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에 수년 전에 가본 적이 있다. 그때도 웨이팅이 굉장히 길었다. 최근에도 같은 회사에서 비슷한 콘셉트로 안국역에 매장을 낸 아티스트 베이커리의 끝도 없이 이어진 대기 줄과 소금 빵 하나에 6,900원이라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놀라기도 했다.
런베뮤가 인건비를 최대한 아낀 이유는 창업주 이효정의 엑시트(exit) 때문이다.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을 높이기 위해 고정 비용인 인건비를 최소화한 셈이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의 20대 남성 직원은 고유 업무인 육체노동을 하면서 매장 이전업무까지 도맡아 초과근무를 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당초 런던베이글의 최대주주 측이 높은 몸값을 희망했던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대주주 측은 3000억 원 안팎의 기업가치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4년 기준 런던베이글의 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은 271억원, 마진율은 34% 수준을 기록했다. 매장 6곳뿐인 업체의 실적으로는 우수한 편이나, 최대주주가 원하는 매각가를 맞출 만큼의 실적은 아니었다.
JKL파트너스는 약 2000억 원(EBITDA 8배 수준)을 제시하며 협상에 나섰고, 결국 분할납입과 언아웃(Earn-out) 조 항을 포함한 구조로 거래가 성사됐다. 언아웃은 일정 실적을 달성하면 매도인에게 추가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 으로, 매도인에게 단기간 실적을 높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구조다.
매도 측이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장 확장과 인력 효율화를 병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외식업은 확장성과 수익성에 한계가 있는 산업으로, 고평가를 정당화하려면 실적 성장세를 입증해야 한다.
특히 기업 매각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인력보강을 위해 추가 채용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도 과로사 이유로 꼽히는 부분이다. 매각을 앞둔 시점에는 인건비가 늘면 EBITDA가 줄어 기업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결국 근무를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인력을 보강하는 대신 기존 직원의 근로시간을 늘려 단기 실적을 유지하거나 개선하 는 방식으로 대응했을 가능성이 크다.
런던베이글은 매각 직전인 7월 12일 인천 롯데백화점에 7호점을 열었다. 사망한 A씨는 인천점 개점을 준비하며 매장 세팅과 운영 초기 업무를 맡았고, 인천점 개점 이후 며칠 지나지 않은 7월16일 회사 숙소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그는 지난해 5월 입사 이후 14개월 동안 네 곳의 매장을 옮겨 다니며 오픈 일정에 맞춰 잦은 이동과 장시간 근무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3000억 몸값' 비극일까…매각 맞물린 런베뮤 과로사 논란, 2025.10.28, 마켓인>
한편으로는 이 사건 직전에 캄보디아에서 취업사기로 납치 감금된 20대 한국인 청년이 고문 사망한 사례가 연일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이로 인해 외교부 홈페이지에서는 아래와 같이 경고문이 게시되어 있다.
ㅇ 캄보디아(프놈펜, 시하누크빌, 캄폿 보코산지역, 바벳, 포이펫 등) 등 동남아시아 지역 일부 국가에서 고수익을 미끼로 해외취업을 유도한 뒤, 주식리딩방, 보이스피싱과 같은 온라인 범죄 관련 불법행위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경우 감금·폭행까지 자행하는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ㅇ 이와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시고, 특히 아래 사항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항공료 등 선지급(차후 정산), 높은 임금 등 좋은 취업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 우선 의심
- 취업하고자 하는 기업의 담당자를 찾아 직접 상담하고, 담당하게 될 업무 내용을 정확히 확인
- 모든 계약사항은 문서화하되, 외국어로 기재된 문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서명하지 말 것
- 반드시 취업비자를 발급받고 출국할 것
<캄보디아 등 동남아지역 취업사기·감금 피해 주의, 외교부>
런던베이글뮤지엄과 캄보디아 범죄단지 사태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피해자가 20대 남성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근로계약서와 관련되어 있다. 고용노동부의 표준 근로계약서를 살펴보면 업무의 내용 부분이 눈에 띈다. 사실 이 부분이 근로시간이나 임금보다 매우 중요하다.
https://www.moel.go.kr/policy/policydata/view.do?bbs_seq=20190700008
계약서에 자세히 기록할 수 없는 상세한 내용은 직무기술서(직무명세서)를 따른다.
직무기술서(職務記述書, job description) 또는 직무명세서(職務明細書)는 개개의 직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직무의 성격·대요(大要)·수행 조건 등을 일람표에 나타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이 기재된다. 즉 직무명·직무 분류 번호·부과명(部課名)·직무의 개괄적인 설명·담당자의 자격 등이다. 직무기술서보다도 직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상세한 기술하는 것이 직무명세서로서, 직무명·직무 분류 번호·부과명·직무 개요를 기재한 후에 작업 조건·작업 환경, 담당자에게 요구되는 학력·교육 정도·경험·기능·연령·신체적 조건·성격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 위키피디아
https://m.ncs.go.kr/blind/bl04/JdsptList.do
캄보디아 취업사기 업체가 제시하는 근로계약서에 이들의 업무가 주식리딩방, 보이스피싱 온라인 범죄라고 쓰여있을까?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과로사한 직원의 근로계약서에 과연 사무실 이전 업무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을까? 확인은 해봐야 알겠지만 왠지 전혀 적혀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로계약서 상 업무를 벗어난 일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취업사기이며 런던베이글뮤지엄 역시 명시된 업무에서 벗어난 일을 강요했다면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피해자들은 '취업사기'를 당한 끝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다시 사무실 이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당시 인턴사원 중 한 명이 사무실 이사를 돕는 것을 거부했다. 자신이 명시적으로 주어진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당시에는 그 직원이 참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 사건으로 인해 내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직무는 최대한 명시되어야 하며 그것이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권리 보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