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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Apr 16. 2023

이사를 가다.

나는 산호(coral)처럼 20대 후반까지는 정착하는 삶이었다. 그러다가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산호의 알처럼 부유하는 삶으로 바뀌었다. 이사는 유목생활에 따른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당시 나는 채용형 인턴으로 회사에 입사했고 회사 방침은 인턴은 지사, 본사를 각 2개월간 근무하도록 했다. 그에 따라 대전에서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때는 짐이라고 불릴만한 게 많지 않았다. 본가였던 광주에 대부분의 짐을 두고 살았기 때문이다. 여행 같은 근무 끝에 나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아이러니하게 다시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발령이 났다. 회사 합숙소로 쓰는 아파트에 혼자 살았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근무한지 2개월 만에 전세 만기가 도래하였다. 안타깝게 전세 연장은 불가했고 집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한라수목원 인근의 연립주택에 거주하게 되었다. 1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대전, 서울, 제주도를 거쳤지만 이사가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싱글로 최소한의 살림만을 갖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후 내 인생의 터전은 10년 동안 제주도>광주>서울>광주>순천>부산>서울(현재) 순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이 사이에 결혼이라는 이벤트가 벌어진다. 결혼 이후 이사는 쉬운 일이 아닐 수밖에 없어진다. 내 개인 짐과 아내의 짐, 공통의 살림살이가 합쳐지니 이사의 기간과 난이도는 혼자였을 때의 2배가 아니라 최소한 4배 이상으로 높아진 것 같다. 아내와 함께 한 이사는 내 지난한 이사 여정의 후반기 3번인데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처가에서 이사를 많이 도와주셨다. 따라서 나는 이사 갈 집의 부동산 임대차 혹은 매매계약, 이사 일정 조율 및 이사업체 계약, TV,  에어컨 등 가전제품 설치를 예약하는 것만 해도 무방했다. 이사라는 지독히  물리적인 업무의 주된 책임자는 아내였고 나는 어느 정도 보조적인 역할이 있었기에 상술했던 이사의 어려움을 크게 체감하지는 못했다.


작년 말 내가 근무하는 지사 사무실 임대인과의 협상이 결렬되었다. 임대료를 90% 정도 인상시키고 반대편 동일한 면적의 사무공간까지 추가로 렌트하는 조건이었으니 렌트프리(rent free, 무상임대) 기간을 고려해도 3배에 가까운 임차료 인상 요구였다. 본사에서는 불필요하게 사무실 평수를 늘리는 것을 반대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무실을 알아보아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끝나갈 무렵으로 기업의 임차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상업 부동산 시장은 지사와 동일한 면적으로 옮길 수 있는 대형 평형은 한정적이었다. 결국 사무실 입지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곳으로 이전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 연장이 가능한지 법적인 검토와 본사, 임대인과의 협상에도 1개월 이상, 다시 사무실을 알아보고 계약을 하는 과정도 1개월 넘게 걸렸다. 그리고 D-day(이삿날)는 정해졌다.


연초 인사이동이 났고 어느새 이 지사에서 전입일 기준으로 최고참이 되어있었다. 사무실 이사를 도맡아 할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가 되었다. 중간에 직원들이 이용했던 회사 합숙소가 계약 만기가 도래하여 숙소 집기를 사무실에 보관했다가 다시 처분하는 일이 필요했다. 이 역시 1톤 트럭이 오가는 2번의 이사였다. 방치하면 사무실 이사에 적이 되었기에 이삿날이 다가오기 전에 우선적으로 처리했다.


사무실 이사는 챙겨야 할 것이 주택 이사 와 비슷하면서 다른 점이 많다. 특히 사무실을 이용하는 인원이 많기 때문에 도면으로 개인 물품 위치를 표시해 주어야 하며, 중요한 서류들의 위치도 지정해 주어야 한다. 이 업무를 사실상 혼자 맡아서 했고, 나머지 잡다한 업무들을 개인 역량에 따라 팀원들에게 조금씩 배분해 주었다. 일정관리는 공유 문서를 활용하여 지사장부터 팀원, 본사 직원에 이르기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인 업무를 병행한 것은 물론이다. 다행히 연초에 비해 업무량이 줄어드는 추세라 이사 준비를 하기엔 최적이었다. 멀게 느껴졌던 이삿날이 도래했다.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화물 엘리베이터 이용 승인 요청을 다른 직원에게 시켰는데 매듭을 잘 짓지 못했다. 녹취까지 뒤져가며 관리실을 압박하여 가까스로 주말 이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제대로 처리가 안되었다면 월요일 정상근무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뻔한 대형 참사를 가까스로 막았다.


한쪽 사무실이 무너지고 다른 사무실이 채워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사무실은 채워져 있었을 땐 거대한 공간인데 막상 짐이 빠져나가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한때 이곳에서 근무했을까 상상하기 힘들 지경이다. 이삿짐을 새로운 사무실에 도면에 따라 채워 넣어도 묘사가 잘못되거나 미쳐 그려 넣지 못한 물품은 팀장과 내가 교대로 검수를 해야 했다. 그리고 괴로운 주말 이사를 마치자 이번엔 중요한 정수기와 팩스가 말썽이다. 이틀 동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결국 내가 총대를 메고 인테리어 업체를 닦달하고 기술자를 불러 처리했다. 아마도 다른 직원들은 매끄럽지 못한 일 처리를 탓할 수 있다. 업무처리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문제를 해결했지만 대체로 내 수고로움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중간에 회사 임원이 와서 노고를 치하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니었다. 팀장 혹은 지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남의 동네잔치가 되어버린 이사지만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고 싶다.  비록 집 이사는 주도적이지 못했지만 내가 처음 지휘를 맡은 사무실 이사는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다음 집 이사에는 내가 도면을 그려가며 사무실 이사 노하우를 살려볼까 한다. 언젠가는 내 이름을 건 사무실 오픈에도 이 경험을 살릴 수 있길 바라며 자축하는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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