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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May 06. 2023

어버이 없는 어버이날

내 아버지가 내 나이였을 때 나는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3년 전에 갑자기 일터에서 65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해외에 홀로 체류 중이신 아버지를 운구하고 장례를 치르는데 거의 3주 정도 걸렸다. 지금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면 41세의 아들을 둔 아버지일 것이다. 나는 조금 더 늙었지만 변함없는 그의 아들일 테고.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거의 집에 안 계셨는데, 직업이 선원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렵진 않았지만 홀로 남자애 둘을 키우는 게 힘들어서 그러셨으리라. 나도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남처럼 느껴졌고, 딱히 가정에 충실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기러기 아빠였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배가 정박해있는 곳에 찾아갔다. 말로만 들었던 아버지의 직장인데 기억나는 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배와 항구가 연결된 임시로 된 다리가 참 위험해 보였다. 조금만 실수하면 깊은 바다로 영원히 떨어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선체였다. 배는 정박해있어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가 탑승한 배는 축구장 크기 이상의 거대한 유조선이었지만 수평선에서 명멸하는 부표처럼 고정됨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소음이다. 선내의 엔진음이 끔찍하게 커서 사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평소에 귀가 잘 안 들려 목소리가 늘 우렁찼다.


관광지로 유명한 부산 태종대 한켠에는 순직선원 위령탑이 있다. 아버지의 위패를 합사할 수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누군가는 일하다 죽는 것이 덧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한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그의 뜻하지 않은 죽음은 아버지의 삶을 빛나게 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항해 즈음에 어머니가 스마트폰으로 배 위치를 추적하는 APP을 보여주신 적이 있다. APP 화면에서 배는 작은 화살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이제 앞으로 이거 볼 날이 없겠구나." 가끔 아버지가 여전히 출항 중이신 것 같다는 착각이 일곤 한다. 특히 여행에서 우연히 바다와 마주하게 되면 말이다.


보이지 않지만 꾸준히 움직이는 배를 형상화한 화살표처럼 아버지는 나의 바다를 누비고 계신다.


(RIP)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순직한 선원들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 해양수산부(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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