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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Jun 06. 2023

디아블로4, 게임과 꿈 꾸는 인간



오늘 자로 디아블로4 일반판이 정식 발매되었다. 학창 시절 내신과 수능을 망친 원흉이었던 이 게임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게임 제작사인 블리자드는 액티비전과 합병하였고, 그때 게임 디렉터들 모두 없어지고 다른 회사가 되었지만 마치 유전자(gene)처럼 오늘날 불멸의 밈(meme)이 되었다.    


젊은 날 시간과 기회비용을 강탈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디아블로 시리즈를 기꺼이 구매했다. 디아블로1, 2, 확장팩, 3, 디아블로2 레저럭션까지 총 5편에 이른다. 그러나 이번 편은 구매하지 않았다. 대신 디아블로4 베타(무료 체험)를 이틀 정도 참여해 보고 나서 PC방에 40분 정도 걸린 힘든 접속 대기를 뚫고 80분 정도 게임을 하였다. (PC방 이용권을 2시간으로 결제했기 때문이다.) 이 시간은 지난날 나를 사로잡은 악마(디아블로)에 대한 마지막 오마주일 것이다.


프로이트는 그의 강의집 <정신분석학 개론>에서 다음과 같이 잠에 대해 언급한다. 



"그렇다면 잠의 생물학적 의향은 휴양이며 심리학적 특질은 현실 세계에의 관심의 중단같이 보입니다. 마지못해 태어난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중단의 때를 갖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이 세상의 것이 되기 이전의 상태, 말하자면 모태 내의 존재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게임을 하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잠을 자는 모습과 같지 않는가?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잠은 꿈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뇌과학에 따르면 온전히 기억을 하지 못할 뿐 잠을 자는 동안 평균 1.5시간 동안 한 번 정도 꿈을 꾼다고 한다. 꿈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기억들이 재생되지만 대타자에 의해 억압된 기억들이 보다 많이 재생되기도 한다. 게임을 하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하므로 꿈과 상관이 없다고 여길 수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게임 콘텐츠는 현실과 달리 매우 유한하다. 한 번 죽였던 보스(boss)를 다시 죽이지 않을 것인가? 어떤 게임이든 비슷한 레퍼토리로 계속 전개된다. 특히 디아블로 같은 MMORPG(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은 동일한 사냥이 무한히 반복된다. 마치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 등장한 도르마무를 상대하는 방법처럼 무한히 상대를 사냥해야 한다. 비슷한 개념으로 니체의 영원회귀, 아모르파티(amor fati)~가 있다.


무한 사냥을 (당) 하는 게이머, 아니 닥터 스트레인지


이렇게 지독한 반복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흡사 마약처럼 게임을 탐닉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일확천금의 아이템 보상 확률과 레벨 업에 따른 보상 때문이다. 확률을 따져 가성비 높은 사냥을 반복하면 고급 아이템을 언젠간 얻게 되기에 사실은 지겨워도 비슷한 사냥을 무한히 반복한다. 어쩌면 그 아이템은 현금으로 교환할 수도 있기에 인센티브로서 유인이 크다. 그리고 게임 속 자신이 조종하는 꼭두각시인 캐릭터는 자신의 투사물로 시간이 지나면 앞에서 말한 아이템의 효과와 시너지를 더해 레벨 업이 이루어져 보다 강력해진다. 그 강력함으로 사냥 반복 시간을 지속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다. 이는 회사에서 업무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방식과 유사하다. 게임 속에 친절히 표시되는 가시적인 목표(Quest)와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 잔여량을 시각화되어 보이기에 레벨 업에는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린다. 어쩌면 게임 플랫폼이란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으로 유명해진 R=VD(reality=vivid dream)의 현현(epiphany) 아닐까? 


이는 날마다 '나도 자본가 계급이 될 수 있어.'라고 되뇌지만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해 작심삼일을 버티지 못하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가져다준다. 사실, 디아블로4라는 게임 프로그램에서 주어진 대로 삶을 다스려나간다면, 영&리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나와 같이 디아블로 시리즈 같은 게임을 탐닉하다가 나이를 먹어버린 중년이 다시 한번 게임으로 위안을 삼는 것이 대다수일 것이다. 레벨 업되는 것은 잠자는(꿈속의) 나인 게임 캐릭터일 뿐이지, 현실의 나는 게임을 매우 즐긴다는 자수성가의 아이콘인 방탄소년단(BTS) 진도, 장사천재 백종원도 아니다. 그래도 게임 속에서 이들을 만나면 다소 평등할 수도 있다면 하나의 위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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