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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Jun 12. 2023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페터 한트케



이 책은 화자인 (유럽인인) 나의 시점에서 별거 중인 아내를 찾아 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처음에 호텔 벨보이 흑인에게 팁을 건네주는 나의  불쾌함의 묘사로 시작되는데, 너무 적나라해서 민망할 지경이다. 심지어 작가는 하릴없이 화장실에서 자위했다는 식의 짤막한 글을 남겨, 사실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내면의 우울함은 유년기의 불우한 가정사와 더불어 카프카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라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밀로셰비치를 옹호하다가 보스니아와 코소보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가 된 작가의 페르소나(얼굴)을 보아도 슬픔이 느껴지긴 한다.


안동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가 눈만 맞았다는 트로트 유행가처럼, 핸드폰이 없던 시절의 여행은 시종일관 엇갈림으로 점철된다. 호텔에 그저 자신이 투숙했음을 알리는 메모가 전부인데, 숙련된 사냥꾼처럼 조금씩 미국을 횡단하며 아내 유디트의 흔적을 찾아가게 된다. 처음 보는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돌싱 여사친인 클레어를 만나 그녀의 아이를 동반한 기묘한 데이트를 이어나가기도 한다. 클레어와의 이야기는 오에 겐자부로의 <레인트리> 연작을 연상케 한다. 낯선 이국에서 오래된 옛 친구의 낯선 아내와의 관계는 선정적이라기보다는 과거와의 화해 도구로 연출된다. 마찬가지로 나와 오랜 친구인 클레어의 관계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지난한 아내와의 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녀의 무소유에 가까운 아이 양육방식 역시 깨달음의 원천이 된다.


나와 유디트는 폭력이 오가는 싸움도 나눴고, 점차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게 되었다. 나에게 틈입해오는 타인의 삶이란 가혹한 것이다. 미혼자라면 결혼을 하기 전엔 알 수 없다고 생각될 테지만, 누구나 부모-자식과의 관계에서 그 불협화음은 시작되었다. 차이와 반복일 뿐이다.


후반부에 아내가 권총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권총이 나에게 발사되는 대신 이별을 확정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각자의 여행을 통해 4주간의 조정 기간을 거친 나와 유디트의 이별은 순조로웠고, 아마도 클레어와 나의 관계처럼 변화될 것이다. 우리가 부모를 언제인가부터 삶의 동반자에서 벗어나게 되듯이 말이다. 굳이 이 작품을 시나리오로 하여 영화화한다면 흥행에는 실패할 것이 뻔하지만 그러기에 홍상수가 영화화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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