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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Jun 25. 2023

종이의 전쟁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는 북한이 작성한 전쟁계획서가 전시되어 있다. 이는 6.25전쟁의 원인, 남침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자국의 의지를 상대 국가에 강요하기 위한 폭력적인 행위이며,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정치는 곧 행정으로 이어지며, 따라서 국가의 공무원들은 전쟁을 위한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공무원은 권력자가 바뀌면 그들의 성향을 따라가는 무색무취의 집단이다. 상명하복의 나약한 군집체로 보일 수 있으나 바꿔 말하면 권력체계가 어떻게 바뀌든 공무원은 유전자처럼 불멸의 존재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이들이 작성하는 행정문서는 언제나 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70여 년 전 북한의 한 공무원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1장의 전쟁계획은 수백만 명을 학살하는 전장을 주술처럼 만들어냈다.


호사카 마사야스의 저서 <쇼와 육군>은 2차 세계대전을 패배로 이끈 일본 대본영 이야기를 다룬다. 엘리트들은 결국 전쟁의 실제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쿄에 틀어박혀 서서히 멸망해간다. 계획이 완벽하더라도 실험실 안의 시나리오일 뿐이고, 변수는 무궁무진하다. 대본영의 엘리트처럼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 소련의 엘리트들은 자국 내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 보고와 감청 등 각종 정보를 취합하고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생과 사가 오가는 참호 안의 절규가 보고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당일 사상자 XXX 명 등의 차갑고 냉정한 숫자로 기록될 따름이다. 감정을 배제한 전쟁기계들이 내리는 판단은 전쟁을 더욱 비인간적으로 만들어낸다. 실제 전쟁을 겪지 않은 겁쟁이 매파(chicken hawk)들은 비교적 호전적인 행정절차를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쟁은 햇수로 4년을 끌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수많은 젊은이들(남한 13만 명, UN 군 4만 명)이 참호 아래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남북한 민간인 250만 명의 희생이 있었으며 전쟁고아는 10만 명에 달했다.


그 지독한 피와 땀, 눈물의 대가로 아래와 같은 유엔군과 조선인민군(북한), 중국 인민지원군 간 정전협정문이 작성되었다. 그리고 종전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전쟁의 불씨는 여전하다. 언제라도 위기 상황이 벌어진다면 다시 한번 각국의 엘리트들은 전쟁과 관련된 문서 작성에 동원될 것이다. 새로운 인류인 소셜 미디어 세대는 전쟁을 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으로 접한다. 하지만 비극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그것은 한갓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엘리트가 많아야 전쟁의 위험성은 줄어들고, 문서의 행간에 인간적인 고뇌가 느껴지지 않을까?


6.25전쟁 정전협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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