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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Jul 11. 2024

같은 강에 두 번 발 담그기

주식시장 장기투자의 신화

'Buy and Hold' 전략으로 알려진 워런 버핏의 투자 성공신화는 유명하다. 그 이면에는 장기적으로 보면 주가가 우상향 한다는 신화가 있다. 아래는 지난 5년 간 미국, 한국, 일본, 중국의 주요 주가지수를 비교한 차트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하락이 있다. 같은 주가지수라도 차트는 시간봉, 일봉, 주봉, 월봉, 연봉으로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띤다. 문득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떠오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 Charlie Chaplin

주가지수 비교 google금융

그렇다. 장기추세로 보면 누구나 승자인 게임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내가 투자하는 시점의 어느 구간에서 본다면 하락이다. 나심 탈레브는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 이렇게 재치 있게 말한다. 당신이 주식 가격을 1년에 1번 본다면 1번 슬프거나 기쁠 것이다. 안타깝게도 손실은 기쁨보다 2.5배 더 감정의 골이 깊다. 만일 주가를 날마다 본다면 영업일 기준 약 250번 기쁨과 슬픔이 반복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들여다보는 데이트레이더라면 이제 당신은 조울증 환자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감정 기복을 감내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으리라. 그러나 투자 실패는 매우 중요한 인생의 시점에 원금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인 <무취미의 권유>에 따르면 실패도 경험이라고 실패를 권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별날 없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때 단 번의 실패가 재기할 수 없는 인생 나락이 되는 경우가 많때문이다. 그는 우리는 부모, 사회가 모범으로 여기는 대체로 정해진 길을 간다. 이를 다시 한번 권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작정 근거 없는 모험심에 경계하는 말이다. 대체로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한편, 주가지수가 상승하는 데는 상장기업이 늘어나는데 힘입은 크다. 아래는 세계의 상장기업 수를 보여준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주식시장에 거래되는 기업 역시 크게 늘어났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겉으로는 우상향 하는 것으로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기업실적 악화로 인해 거래소 조건에 미달하여 상장폐지된 기업들은 꾸준히 존재한다.

전 세계 상장기업 수, focus.world-exchanges.org


2023년 미국에서만 471개 기업이 상장폐지되었다. 2024년 7월 작성일 현재도 206개가 거래소에서 사라졌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주식시장 우상향의 이면에는 수많은 기업들의 명멸이 숨겨져 있다.


https://stockanalysis.com/actions/delisted/2023


다시 말해 워런 버핏은 벤자민 그레이엄을 따라 기본적 분석을 잘했기에 100년 기업에 투자해서 성공한 것이다. 일반인이 그의 투자를 추종하여 (사실상) 랜덤으로 소수 기업에 buy and hold를 할 경우 확률적으로 상장폐지를 당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1935년 기업의 평균 수명은 90년이었으나 1975년에는 30년, 1995년에는 22년으로 짧아졌고, 최근에는 15년 이하까지 단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S&P500 지수 편입 기업들의 평균수명은 1920년대에 67년이었으나 지금은 15.18년에 불과하다.


이렇듯 장기투자는 기업 수명이 짧아지면서 점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다시 다른 기업이 상장하므로 개별기업의 생애주기와 무관하게 전체 주가지수는 우상향 해왔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 입각하여 주식 투자자들은 크게 보면 개의 선택지가 있다.


효율적 시장 가설에 입각하여, 미스터 마켓(Mr.Market)에 약간 수수료를 주고 벤치마크 지수보다 약간 낮은 수익률에 만족하는 인덱스 펀드에 투자할 것인가? 경우 고민할 것은 별로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대로 패시브(액티브 펀드의 반대말)해서 통제력을 잃었다고 생각했거나 대체로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다는 인지적 착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간의 어림셈(heuristic)과 비합리성을 강조하는 행동경제학자처럼 액티브 펀드를 투자할 것인가? EPS(주당 순이익)를 따지는 기본적 분석이든(언제나 기업의 분식회계 위험이 있다), 상승과 하락 패턴(봉차트, 이동평균선, 엘리엇 파동이론, 각종 보조지표)을 발견하는 기술적 분석이든(무작위에서 패턴을 발견하는 것은 인간 두뇌의 환상) 투자자는 신념에 따라 뭐라도 할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적, 신경과학적, 심리학적 신념에 사로잡혀 자신에 맞는 투자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어리석지만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 혹은 과대망상으로 직접 투자를 했고 시장을 이기기는 고사하고 원금 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 선진국인 미국 시장에서는 투자금액 기준으로 2023년 드디어 패시브 펀드가 액티브 펀드를 추월했다.

미국 인덱스 펀드 v. 패시브 펀드, www.morningstar.com

여전히 한국은 액티브 펀드가 패시브(인덱스) 펀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인들의 투자 성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앞으로 비슷하게 인덱스 펀드가 활성화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국내 인덱스 펀드 현황,  www.fnindex.co.kr




주식시장은 앞서 적었듯이 멀리 보면 장기 우상향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100년 남짓만 보았을 때의 행운이다. 나심 탈레브의 말처럼 시간을 무한히 늘리면 (확률론의) 에르고딕성에 따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종(種)의 평균 수명은 400만 년이라고 한다. 인간은 20만 년을 썼다. 물론 400만 년 역시 평균이라 종을 사멸시킬 어떤 이벤트가 내일 일어날지 어찌 알겠는가? 저자는 남은 380만 년 동안 책을 열심히 읽자고 주장했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의 인간은 따분한 독서보다는 도박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투기(speculation, 혹은 투자)를 선호할 것이다.


결국 영원할 것 같은 인류도 멸망할 것이다. 주식시장 붕괴, 혹은 약세장은 또다시 재현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잔인한 확률에 기대어 투자하고 삶을 영위한다. 그렇다고 스스로 가련할 것은 없다. 불확실성은 공포이자 기쁨의 원천이니까 말이다. 그것이 확률(운)의 실체이고 우리는 이를 사랑하기에 시장참여자의 대부분이 돈을 잃는 사실을 알면서 오늘도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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