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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Jul 25. 2024

내 슬픈 트리마제 미분양의 추억

어느 벼락거지 이야기

얼마 전 유명배우가 성수동 트리마제(2017년 준공) 분양권을 구매해 재테크를 성공한 무용담을 들려주어 화제가 되었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내 선택과 아내의 사려 깊음에 대해 일말의 비애감이 들었다.



당시 아내는 국세청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담당 세적(稅籍)이 트리마제 시행사였는데 당시에는 높은 분양가로 인해(3.3㎡ 당 3,200~4,800만 원) 미분양 상태였다. 시행사 직원은 아내에게 미분양 물건을 사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트리마제 53㎡ 현재 시세는 매매가 기준 17억 원 수준이다. 당시 같은 평형대 분양가는 4.8~5.3억 원(평균가 5억 원)이었다. 세전 340% 수익률이다. 앞으로 한강 조망권 프리미엄에 따른 성수동 부동산 가격 상승가치를 고려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이상 2014년에는 부동산 시장 침체 여파로 서울도 LTV 적용이 70%였다. 무엇보다 은행대출 시 소득제한도 없었고 맞벌이였다. 그 유명한 트리마제 아파트를 자기 자본(equity) 1.5억 원이면 구매가 가능했다.


2014년 9월 부동산 시장 활성화 목적으로 LTV는 50~60%였으나 전국 동일하게 70%로, 수도권에만 적용하는 DTI는 50%에서 60%로 완화시켰다. 1년 단위 행정지도로 시작된 이 조치는 매해 연장돼서 오는 7월 종료를 앞두고 있다. - LTV·DTI의 역사(경향신문, 2017.6.6)

  

그때 아내는 나에게 진지하게 구매의사를 물었다기보다는 시행사 직원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식으로 흘리듯이 나에게 말했던 것 같다. 그것은 그녀 방식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나는 아마도 이렇게 답변했으리라. "그런데 난 돈 없어."



사실은 무엇보다 실행할 의지가 없었다. 당시 나는 본사 근무를 하느라 부산에서 주말부부를 했고 지방에 전세로 살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서울에서 1년 넘게 근무한 경험은 있었지만 출퇴근만 하느라 서울에 대해 잘 몰랐다. 특히 성동구 성수동은.


근본적으로 나는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는 것을 참을 수 없이 경멸했다. 그렇다고 내가 돈에 초연한 성자(聖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자 삶의 터전을 두고 성냥갑 모양을 한 규격화된 아파트를 가지고 너나 할 것 없이 죄의식 없이 베팅하는 모습이 싫었다.


서울 부동산 2006~2024년 매매/전세가격 변동, 아실


아니, 사실을 말하면 그 부침 없는 정부 비호 아래 모진 우상향이 싫었다. 정확히 따지면 주식시장에서 돈을 거둬들이지 못한 나의 열등감 아니었을까? 그때 투자는 오로지 주식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앞서 적은 대로 나는 경기민감주 한진해운에 올인하다가 억대의 손실을 거둔 바 있다. 내가 주식투자 수익률이 뛰어났다면, 아니 적어도 손실 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반감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년에 걸쳐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올린 후 PER이 저점을 찍은 경기 민감주를 매수하는 것은 단기간에 자금의 절반을 날릴 수 있는 검증된 투자법이다. - 피터 린치
주가가 내려가봐야 얼마나 내려가냐고? 0까지 내려간다! - 마크 미너비니


나는 전세살이 하면서 아파트 살 돈이 없다고 아내에게 변명했지만 충분히 구매할 의사만 있다면 LTV 최대한도로 집을 사고 임차인에게 월세를 받아 원리금을 일부 상환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했다. 게다가 다시 말하지만 그땐 맞벌이었고 안정적인 직장에 연차가 오르면 수입이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트리마제 이전에도 지방이전 공공기관 직원 대상 특별공급 분양기회가 있었다. 본사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는 대가로 부산 대연지구에 아파트를 일반분양가보다 낮게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지사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미혼이었다. 2012년 부동산 시장은 금융위기 여파로 더욱 위축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부산에 미거주해서 그곳의 입지 가치를 잘 몰랐다. 당시 3억 원 정도에 분양받을 수 있었던 국평(84㎡) 아파트 매매가는 고점인 12억 원을 찍고 조정받았음에도 현재 8~9억 원 정도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때 분양받은 직원들은 불로소득을 얻었고 나는 가장 쉬운 길을 버리고 주식 투자자로서 골고다길 혹은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5042377691


이후 나는 한국거래소(KRX) 직원과 우연한 기회에 이야기를 나누며 뒤늦은 깨달음을 얻었다. 한국거래소는 우리 회사보다 조금 앞서 부산에 본사를 이전한 바 있다. 그 직원은 본사이전 TF로 근무했을 때 직원 숙소를 대규모로 구하는 와중에 호가가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것을 체험했다고 한다. 그는 덧붙여 직원 1천 명 정도 수준의 이전이면 인근 부동산 가격을 억 단위로 움직일 수 있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 이러한 경제적 인과관계를 조금만 생각할 수 있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특별공급을 받았으리라. 그때 3억 원은 마냥 비싸게 느껴졌다. 적금을 넣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 대가는 벼락거지에 다름 아니다.


작년 서울에 살 때 나는 아내와 서울숲에 놀러 갔다. 아크로서울포레스트, 갤러리아포레 같은 랜드마크 아파트 옆에 트리마제가 눈에 띄었다. 서울숲에서 느끼는 도심에서 잠시 벗어난 화창한 날씨와 여유와 대비되게 내 마음에는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그때의 내 심경의 변화를 아내는 눈치채지 않았으면 한다.

벼락거지의 뒷모습


부동산 투자에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인가? 바로 '입지(location)'이다. 만일 평행세계의 아내가 트리마제 미분양 이야기를 내게 꺼냈을 때 평행세계의 나에게 서울숲을 거닌 기억이 있었다면 섣불리 악의에 찬 거절과 경멸을 보이지 않았으리라.


다시 한번 시간을 되돌려 2022년 부동산 시장 고점에 도달했을 때를 반추해 본다. 영끌족과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던 시절이다. 아내와 나는 뒤늦게 대체투자라도 해볼 겸 주말이면 재미 삼아 저가 아파트 매물이 있다는 경기도 평택에 부동산 임장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부동산 여러 곳을 돌아다녀도 우리 외에 찾아오는 손님 한 명 없었다. 부동산 사장님들은 이 마른땅에 단비와 같은 우리를 유치하려고 적극적으로 연락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적막에 본능적인 수상함을 감지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반갑지 않은 뉴스가 들려왔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가장 늦게 올린 경기도에서부터 가격 조정이 시작되었고 지방을 거쳐 서울까지 전염되었다. 여기까지는 겨우 몇 년 전 이야기라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교훈은 부동산 투자는 입지와 시장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강남 같은 1급지는 매물이 워낙 귀하니 전화로 입찰해도 된다. 그 정도 자금이 있는 분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고 읽지도 않을 테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대륙이 아닌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다. 그럼에도 임장이 귀찮다고 생각해서 부동산 투자를 안 하고 벼락거지를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가 있고 한 번도 간 적 없이 투자를 감행하는 것 역시 고점에서 폭탄을 떠안을 위험이 있다. 세종시 국평 아파트를 10억 넘게 주고 구매한 말 그대로 상투 잡은 투자자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타인(특별분양 받은 세종시 공무원들 포함)의 가계경제를 개선시켰을 뿐 자신은 부채로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벼락거지이다. 기회비용의 문제이고 나는 좋은 투자기회를 날렸다. 그리고 기회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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