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emata mathemata Jul 04. 2024

마이 퍼니 밸런타인

My Funny Valentine - Chet Baker

재즈 스탠더드 중 개인적 최고를 꼽자면 마이 퍼니 밸런타인데이(My Funny Valentine)이다.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인생사 굴곡이 컸던 쳇 베이커의 중성적인 미성이 먼저 떠오른다.


그중에서 잊히지 않는 가사는 아래와 같다.



But don't change a hair for me

그래도 나를 위해 머리카락 하나만큼도 변하지 말아 줘요


Not if you care for me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Stay, little valentine, stay

조금이라도, 밸런타인데이로 남아 줘요, 조금이라도


Each day is Valentine's Day

매일이 밸런타인이에요


그리고 나 역시 2020년 밸런타인데이 즈음이 (매일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가사처럼 잊히지 않는다. 당시 내가 투자한 포지션의 코인은 EOS였다. 포지션 규모는 앞서 말한 대로 50억 원(레버리지 10배, 자기 자본 5억 원)이었다. EOS는 지금은 50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당시에는 코인마켓캡 시가총액 10위권 내에 있었으며 이더리움 킬러라고 불렸다.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블록체인 신원증명 기반 소셜 미디어 플랫폼(VOICE)을 론칭한다고 Block.one(코인 개발사) CEO가 기조연설을 하기로 했다. 그로 인한 기대심리로 가격은 올라온 상태였다. 신원인증 서비스는 현재 인스타그램, X(구 트위터)에서 유료 서비스로 잘 구현되고 있다. 블록체인으로는 OpenAI CEO인 샘 올트먼의 월드코인에서 홍채인증으로 구현한 바 있다. 즉, 아이디어는 시대를 앞서나갔지만 싸이월드처럼 상업화에는 실패하고 망한 케이스이다. 케즘(chasm)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시 당시로 돌아가보자. 당일 회사 CEO 기조연설 이벤트는 이전 뉴스와 큰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발표 직전부터 가격은 약세를 띄었지만 그래도 이벤트 당일이니 반등하여 단기상승을 기대했다. 이는 확률에 입각하지 않은 근거 없는 믿음이자 종목과 사랑한 증거였다. 그러나 가격은 수직하락했다. 어김없이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fait accompli(기정사실)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레버리지 비율이 10배라 단기 급락에 손절하지 않으면 전부 날릴 판이었다. 손실이 50% 넘어가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모태신앙이었던 것을 기억해 내 하나님께 기도하고 난리를 쳤던 것 같다. 투자 천재라고 생각했던 과대망상의 이미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자기 자본이 1억 원 아래로 떨어지자 결국 부채상환을 위해 손절(stop loss)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반등을 기다리다간 청산될 때까지 버티면 5천만 원 빚만 남을 판이었다.




자기 자본이 7천만 원 언저리로 떨어질 때 결국 손절했다. 그래도 2천만 원이 이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주식 현물시장에서 수익률 40%는 엄청난 결과이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거둔 성과라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수익률은 세 자릿수이다. 투자를 잘한 것이 아니라 강세장에 운 좋게 투자하여 레버리지를 썼던 것뿐이다. 그러나 수익률 1,000%에서 40%로 급전직하한 것을 생각하면 나에게는 40% 수익이 아니라 86% 손실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마이클 모부신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에 따르면 수익에서 오는 기쁨보다 손실이 주는 슬픔이 2.5배 이상 강렬하다고 한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손실이 나면 장기투자를 하여 기회비용을 날리고 이후 가격 반등에 성공해 매입가격에 도달하면 서둘러 매도한다. 그렇게 고점매수 저점매도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란시스 골턴의 평균회귀(regression toward the mean)라는 개념이 있다. 이를테면 키(신장)는 부계(아버지)를 통해 유전하지만 자녀의 키는 자녀와 같은 세대의 평균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영원한 거인 가족은 없다. 이는 앞서 인용한 마이클 모부신은 평균회귀는 상관관계와 거의 일치하다고 정의한다. 그런데 주의할 점이 있다. 상관관계가 있다고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평균회귀로 예측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단적 결과가 나온다고 다음 결과가 평균으로 돌아간다고 가정하는 것은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보통 주가를 예측할 때 급락 후 반등을 기대하는 심리이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전문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착각한다. 인간의 본성상 (사실과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평균회귀를 강조했던 하버드대 출신 천재 투자자 빅터 니더호퍼가 있었다. <니더호퍼의 투기교실>을 집필할 당시 그 1997년 헤지펀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이 책은 자신의 투자 자서전이기에 타인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임종 직전 그가 많은 부를 일궜지만 그가 할아버지(대공황 이후 많은 자산을 잃었다)나 할아버지의 동료(그 유명한 제시 리버모어)처럼 파산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IMF로 불리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 태국은행에 투자했다가 말 그대로 쫄딱 망했다(blew up). 그가 망한 이야기를 자기 언어로 적은 게 후속작 <Practical Speculation(국내 미번역)>이다. 엘리트 투자자의 실패 이후 참담함에 샤덴프로이데를 느껴보고 싶다면 읽어보길 권한다. 어쨌든 그 역시 자신을 타산지석 삼으라고 쓴 책이다.


노련한 투자자라도 나심 탈레브가 말한 블랙 스완(Black Swan)에 대응하긴 어렵다. (모두 까기 인형이자) 독설가인 그도 니더호퍼의 파산을 안타까워했다. 결국 천재이자 노련한 투자자 역시 평균회귀의 함정에 빠진 셈이다. 그는 엄청난 시장 데이터를 분석해 상관관계를 찾았으나 인과관계는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 시장은 스포츠처럼 단순하지 않고 무수한 원인과 결과가 이어져있다. 그리고 분명 시장에는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낮은 확률의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번 돈 이상을 한꺼번에 날리는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니더호퍼는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 번 더 파산했다.


(천재 투자자와는 거리가 먼) 짧은 기간 동안 운으로 거둔 투자 수익률은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 LLN, 대수의 법칙)을 거쳐 원래대로 돌아온 것에 불과하다. 마치 학창 시절의 시험 성적처럼 찍기 운이 다해 자신의 실력에 따른 평균회귀라고 볼 수 있다.


손해 난 것도 아닌데 슬퍼할 것도 없지만 가난해진 기분을 버릴 수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명대사로 손꼽히는 부분이 있다.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마라, 자신을 동정하는 것은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다." 지금 내가 적은 글은 아마 정확히 자기 연민에 부합할 것이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


나는 남은 자본으로 부채를 상환하고 2천만 원으로 다시 투자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다음번 시장상황의 움직임은 경기도 가평 계곡이 아니라 거대한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불리는 이과수 폭포와 같았다.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마이 퍼니 밸런타인을 부른 가수인 쳇 베이커(에단 호크 분)를 다룬 전기영화 <본 투 비 블루(2015)>에 마지막 장면을 보면 연주를 하기 위해 결국 다시 마약을 하는 장면이 암시된다. 약혼자는 그의 노래를 듣자 약속을 저버린 그를 떠난다.


이 장면은 어쩌면 나에게 던지는 우화였을까?


https://youtu.be/croDLJt0x5U?si=saN9lQ9p4IKskiEZ

<Born to Be Blue> Ending Scene


이전 02화 5억 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