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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emata mathemata Jul 02. 2024

5억 원

행운은 불행의 반대말이 아니다.

때는 2020년 2월이었다. 코로나가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주식투자를 대신하여 코인투자를 하고 있었다. 2017년부터 코인은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를 전후하여 국제 금융시장에서 대체 투자자산의 지위를 서서히 얻어갔다. 거기에 블록체인이라는 ICT 분야의 신기술이 덧씌워져 열광할 만한 요소가 있었다. 나 역시 이 시기 광기의 상승장(대불장)에 입문했지만 수익을 거두진 못했다. 오히려 변동성이 주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이후에도 투자를 계속했지만 손실이 누적되어 갔다.

비트코인 (coinmarketcap)

도박꾼은 본전을 찾지 못한 채 2018년부터 코인 시장은 하락장이 찾아왔다.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으로 인한 크립토 윈터(crypto winter)를 거친 후 시장은 점차 회복세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는 주식과 달리 통화(currency)처럼 내재가치가 없는 코인시장의 펀더멘탈이 달라져서라고 볼 순 없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모든 통화의 내재가치는 기축통화인 달러조차 없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전에 따른 전쟁비용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태환제도를 폐지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이다. 레이 달리오의 <금융 위기 템플릿>에서 저자는 정부의 시장안정 발언을 신뢰할 수 없는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닉슨은 금태환 포기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전격 선언하여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브레튼우즈 체계는 종언을 고하고 인플레이션이 가속도를 붙는다. 정리하자면 정부 발행 화폐에 가치를 유지하는 정부 보증이 사라진 지 이미 반세기가 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미연준의 기준금리는 2016년 피벗(pivot)하여 제로금리를 벗어나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하였던 것에 대한 평균회귀 조치였던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연준의 기대와 달리 금융시장은 QE(양적완화)와 연준풋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러한 학습효과 때문에 시장의 상승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미연준 기준금리 (FRED)
한국은행 기준금리 (BOK)

2017~2020년까지 기준금리는 점진적으로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꾸준히 우상향이었다. 물론 이러한 상승은 주식뿐만 아니라 부동산 등 전반적 자산 인플레이션 징후를 띄었다.

S&P 500 (FRED)

이러한 장기 상승추세에 수익을 거두었다면 투자자의 실력이 아니라 운이 좋게 이 시기에 롱(long, 매수) 포지션에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력과 운을 종종 혼동한다. 이러한 착각은 투자의 영역에서 훨씬 빈번하게 일어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연준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에서 용인한 저금리가 만든 이지 머니(easy money) 그 중심에 있다. 이자 부담을 극단적으로 줄여 일반 투자자들조차 레버리지 투자를 용이하게 만든다. 차입 자금이 시장에 풀리면서 어느 시장에 투자하든지 투자 수익률을 올려주었다. 높은 수익률을 위해 위험자산에까지 투기는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얼마 전까지 침체를 지속했던 코인 시장도 그 탈것 중 하나였다.




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위와 같은 거시경제의 흐름으로 코인시장이 반등의 조짐을 보였다. 나는 은행에 5천만 원 신용대출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돈을 과감하게 코인 선물(futures)에 투자했다. 이는 레버리지에 레버리지를 더한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잃기만 하던 투자와 달리 피라미딩 방식으로 투자를 하면 할수록 계속 수익이 났다. 다행히 나는 롱포지션에 있었다.


5천만 원이었던 시드머니는 선물구조의 특성상 거침없이 불어났다. 중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손절하지 않는 투자는 오히려 강세장에서는 도움이 되었다. 투자원금이 2배 이상이 되자 출금하고 다시 시작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시드가 늘어난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중간중간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금 보유, 반대 포지션으로 헷지는 하지 않았다.


나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바로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 말이다. 당시 승률이 높아진 가장 큰 원인을 시장의 흐름에서 찾지 않고 나는 기술적 분석에서 찾았다. 제럴드 아펠이 만들어낸 MACD를 맹신했다. 주로 일봉 차트를 보았고, 가격추세와 보조지표의 다이버전스(괴리)를 이용한 매매를 통해 나름대로 시장 진입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마법처럼 맞아떨어졌다. 

보조지표 MACD (Wikipedia)

나심 탈레브의 <행운에 속지 마라>에는 트레이더의 승리가 계속될수록 분비되는 세로토닌이 미치는 악영향이 묘사된다. 바로 나에게 주어진 성공이 운이 아닌 실력이라는 착각 말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성공에 불안하기보다는 자신감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프롭 레이딩(고유계정 거래) 금액이 커져가자 역시 완전한 바보는 아닌지라 레버리지에 대한 규칙이 있었다. 3배 이상 레버리지는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24시간 멈추지 않는 초위험자산에 레버리지 3배 역시 위험이 헷지 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제 처음에 없었던 목표금액이 생겼다. 10억 원을 달성하면 당시 조금씩 가격이 꿈틀대던 서울 아파트를 구매하고 남은 금액으로 투자를 계속하려고 매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싶어 투자금액 일부를 출금해 국내주식에도 투자했다. 그런데도 투자원금이었던 부채 상환은 끝내하지 않았다. 디레버리징 하기에 대출이자는 여전히 저렴했다.


5천만 원에서 시작한 자기 자본은 어느덧 5배로 늘어나 2.5억 원이 되었다. 포지션 금액은 7.5억 원이 되었다. 나는 나의 과감함에 자신감을 높여 투자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문득 가파른 차트가 고평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보지 않던 주봉에서 다이버전스를 감지했다. 비트코인보다 알트코인의 변동성을 선호해 롱포지션으로 높은 수익을 거두었던 나는 이번 거래는 반대일 경우에 손익비가 높은 구간이라 청산 위험이 적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허용한 최대 레버리지(3배)로 숏(short, 매도) 포지션을 잡았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사실 이 판단은 정확히 일주일 후 코로나빔 직전이었다면 최적의 타이밍이었으며 지금 내가 이 글을 썼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빅터 니더호퍼의 투기교실>에는 '월가에는 방향이 맞더라도 너무 일찍 투자했다가 죽은 무덤이 셀 수 없이 많다.'라고 했다. 그때의 나의 경우도 같았다.


자기 자본은 레버리지에 따라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당일에만 10% 넘게 상승했다. 그대로 포지션을 유지했으면 아마 자본의 절반 정도 날아갔을 것이다. 나는 평소와 다른 이상함을 감지했다. 갑자기 특이점이 발생했다. 손실 회피라는 인간 본성을 억누르고 손절을 하고 반대 포지션으로 10배 롱포지션을 잡은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상승장은 바로 끝나지 않았고 순식간에 자기 자본이 2배로 늘어났다. 거래소 계좌 잔고에 한화로 5억 원이 찍혔다. 포지션 금액은 레버리지 10배인 것을 감안하여 50억 원이었다. 당시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1만 달러 정도에 불과해 코인으로 환산하면 40 BTC가 넘었다. 해외 거래소에 예치된 코인을 국내 거래소로 송금하면 김치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그 이상일수도 있었다. 나는 후견지명을 싫어 하지만 당시 레버리지 투자를 멈추고 계속 비트코인으로 보유했다면 현재 시세로 강남 아파트 가격 이상이었을 것이다.


행운은 불행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행운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행운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불행으로 다시 찾아온다. 결국 나의 대성공은 빠른 시일 이내 대실패로 돌아온다. 그때의 거래는 다시 생각해도 환상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기대 이상으로 운 좋게 거둔 수익은 주봉에서 보았던 가격 거품의 징후를 완전히 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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