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인생은 없다.
사람은 건강할 때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지내게 됩니다. 좀 더 윤택한 삶을 꿈꾸며 계획하고 실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주어진 오늘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나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 자체로 멋있고 응원하고 싶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건강입니다.
타인으로부터 장기 혹은 골수를 이식받은 사람들은 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필수적으로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 말이지요. 성공적으로 이식을 받고 퇴원한 환자분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주로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한 의사 선생님께서는 환자분에게 평생 복용해야 한다고 설명을 하시다가, 납득하지 못하고 실망을 하는 환자분들을 마주친 후 답변을 달리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100살을 기준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가령 60세 환자분이 진료실에 찾아와서 질문하실 때 이제 40년만 더 드시면 된다고 말씀드린다고 합니다. 환자분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제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인지하시고, 더 이상 질문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이 언젠가는 끝이 날 것입니다. 영원한 인생은 없으니까요. 그 사실만 바라보면 좀 우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주어진 오늘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이기도 하니 주어진 삶을 좀 더 충실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었던 날이었는데, 이식을 대기하는 환자분들과 이식을 받으시고 일상생활을 하고 계시는 환자분들을 만나며 드는 감정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나 자신이 환자분들과 공감하려 노력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감의 깊이가 그렇게 깊지 않았다면, 최근 들어 부쩍 환자분들이 처한 상황을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도 언젠가 나이가 들고, 병에 걸릴 수 있으며 그때 병원생활을 하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게 될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하다 보니 환자분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장기 이식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가 많은 것에 비해 장기를 기증해주시는 기증자분들의 수는 적기 때문에 원한다고 바로 이식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장의 경우에는 얼마나 응급한 지, 혈액형은 무엇인지, 얼마나 기다리셨는지와 같은 기준에 따라 수혜 여부가 결정됩니다. 혈액형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요즘은 기본 1년에서 2년 이상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하며 대기하는 환자분들은 강심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숨이 차고 소변이 나오지 않으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분들입니다. 그 상황에서 우울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기약 없는 기다림 가운데 하루를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별일 없으시죠?"와 같은 반복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괜찮아요."와 "똑같아요."입니다. 심장을 만들 수만 있다면 "오늘 심장이 완성되었습니다."와 같은 말을 건넬 수도 있을 텐데, 언제 심장 이식을 받을 수 있는지 간절하게 기다리는 환자분 앞에서 면목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환자분들이 얼마나 힘드실까 생각도 들고, 기다리는 것 밖에 해결책이 없는 이 상황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환자분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을 마주치게 되겠지만 부디 기다리는 시간 또한 덜 힘드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봅니다. 이미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무엇인가 채우려고 아등바등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부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미 세워진 편견과 선입견으로 미리 판단하고 다 아는 것처럼 지내는 부분은 없는지.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마주할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이웃을 깊이 공감하고 사랑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찾은 정답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