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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세웅 Sep 01. 2023

에너지 바

기운 없을 때 먹고 힘내세요

“코디 선생님. 소아병동에 OOO환자 강심제를 끊을 수가 없어서요. 심장이식대기자 등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아심장과 주치의 선생님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나는 종종 코디로 불린다. 이번에는 어떤 사연을 가진 환자일까. 조심스레 상태 파악을 한 후 보호자에게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유세웅입니다. OOO환자 보호자분 맞으신가요?”


“네. 혹시 어떤 일로...?”


“주치의 선생님께서 심장이식 관련 상담을 의뢰해 주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이따가 오후쯤에 잠깐 방문해서 설명드려도 괜찮으실까요?”


“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는 기운이 빠져 있었고 약간의 경계심도 덤으로 느껴졌다. 심장 이식을 고려한다는 것은 내과적인 약물 치료, 시술, 외과적인 수술 등으로는 심장 회복의 가능성이 없어서 최후의 방법으로 심장 이식을 생각한다는 말이기 때문에, 아직 초등학생인 환자가 그동안 겪었을 치료과정과 가족들이 감당해야 했을 삶의 무게가 목소리를 통해 전해졌다.


환자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초등학생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보고, 사람을 낯설어하지 않는 열린 마음이 느껴지자 괜스레 긴장했던 내 마음도 풀어졌다. 어머니께서 보호자 침대 자리의 한편을 내어주셔서 자리에 앉아 심장이식대기자 등록 및 절차에 관하여 설명드렸다.


소아 환자의 부모님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부모님의 입장을 떠올려보게 된다. 이식 수술이라는 큰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감, 비슷한 시기의 다른 부모님들과는 다른 현실, 자녀의 질병이 마치 자신의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에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 짐작한다. 차마 아이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병실 끝 계단에서 펑펑 우시는 부모님의 모습도 봤다. 역량이 부족한 나는 죄송하게도 부모님의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진 못한다. 부끄럽지만 곁에서 함께할 뿐이다.


궁금해하실 법한 내용들을 보호자분께 자세히 설명드린 후 연락처를 남기며 자리를 옮기려고 한 순간, 환자가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말을 걸었다.


“혹시 게임 좋아해요?“


“네. 선생님도 게임 좋아하세요?”


”네. 예전에 많이 했었어요. 선생님 조카들은 마인크래프트 하던데 환자분은 어떤 게임 좋아해요?”


“저는 로블록스의 레인보우 프렌즈 제일 좋아해요.”


과거에 나도 암에 걸렸었고, 결핍을 채우려 게임 중독에 빠진 적에 있었기에 아이의 처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뭐든 경험하면 쓰일 곳이 있다고, 아이와 친해지는 데 게임만 한 것이 없음을 다시 깨달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레인보우 프렌즈를 익혀서 오겠노라고 약속하고 일어나는 순간 환자가 내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잡았다.


“선생님. 가지 말아요. 나랑 여기서 계속 있어요.”


지속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느라 또래보다는 성장이 더뎠던 탓에, 아이의 작은 손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며 우정을 쌓고 성장해야 할 시기에 병원에만 있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사람이 그리울까. 근심 가득한 어머니와 천진난만한 아이의 표정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그만 20여 년 전 내가 병실 생활을 했던 풍경이 겹쳐졌다. 나도 그랬었는데.


그렇게 환자와 내적 친밀감이 생긴 나는, 바쁜 일과 중 시간을 내서 틈틈이 환자를 보러 갔는데 어느 날은 곤히 잠을 자고 있었고, 어느 날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서 찾아갔더니 귀여운 고양이 모양 헤드셋을 쓰고선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께 줄 게 있다며 자신의 간식 중 하나인 에너지 바를 내게 줬다.


“선생님. 이건 에너지 바인데 기운 없을 때 먹으면 힘이 나니까 기운 없을 때 드세요.“


“고마워요. 선생님 힘없을 때 먹고 에너지 충전할게요.”


“저도 지금 먹을 거예요. 에너지 생기는 거 보여드릴게요.”


옆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께서 한 말씀하셨다.


“에너지 생기면 뭐 하고 싶어?”


“음... 선생님 지켜줄 거예요. 괴롭히는 사람들을 내가 무찔러 줄게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내 마음을 녹여버렸다.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정말 예쁘고 마음속에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셨다는 말이 무엇이었을지 단숨에 이해됐다.


선물 받은 에너지 바는 한동안 먹지 않고 아껴둬야겠다. 언젠가 일을 하다가 몸과 마음이 무척 지칠 그때, 에너지 바를 먹으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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