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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Oct 19. 2019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

1년 전 감동을 추억하며...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

그야말로 전국은 보헤미안 랩소디 앓이 중이다.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가까운 동료들이 위 풍문을 사실로 증명해주고 있다. 10대 후반 퀸을 즐겨 들었던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앨범 'Innuendo'를 손에 쥐게 되었지만 기쁨은 순간이었다. 머잖아 프레디 머큐리의 부고를 듣게 된다. 충격이었던 건 나의 영웅이 20세기 신의 저주, AIDS 합병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재 뮤지션의 죽음은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와 버무려져 비난이든 찬사든 여러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도 추모 열기는 식을 줄 몰라 죽음 1년 뒤 윔블리 스타디움에 운집한 최고의 스타들과 약 10만여 명의 팬들의 환호 속에 절정을 맞는다.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새로운 세기가 바뀌고 미니 카세트에서 MP3플레이어를 거쳐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휴대용 음향기기의 변천은 극적이었지만 퀸의 베스트 곡들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늘 떡 하니 한 자리를 잡고서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랬던 지난 5월, 유튜브에서 영화 상영 소식을 듣고 10월 말까지 한달음에 달려 만난 그들은 신비스러운 구름을 뚫고 나왔다. 그들은 풋내기였고 성공과 욕망 앞에 무너지기도 했다. 때론 현실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음악을 한 그들은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퀸'이라는 장르를 개척했으며 농익은 무대 매너로 관객을 자신들의 멤버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어려서 퀸을 즐겨 듣던 나야 저토록 오버하며 열광할 수 있다 치더라도 그들을 몰랐거나 귀에 익은 한두 곡 정도만 알고 있던 이들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이다지도 미칠 수 있다니, 그 현상은 매우 신기한 것이어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성공이란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퀸이 데뷔했을 때는 비틀스가 있었고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 같은 락의 전설들이 세상을 평정하고 있었다. 제왕들의 그늘에 가려 그들의 연주 실력이 저평가받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신인들에게는 대중에게 어필할만한 곡이 필요했겠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곡을 연주한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보헤미안 랩소디인 것이다. 성공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란 무척 진부한 주제를 몸소 실천한 그들은 마침내 독창적인 재능을 보여 줌으로써 '퀸'을 몰라도 그들의 곡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히트작을 여러 편 탄생시킨다.


'Queen'  사진=네이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 죽음 전후에 태어난 20대 또는 30대에게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이 퀸에게 공감하고 있다는 건 퀸의 성장기에 고무된 측면이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인종차별을 겪은 프레디나 명문대 출신으로서 탄탄한 삶을 뒤로하고 음악판에 뛰어든 멤버들의 무모함이 복지부동의 삶을 조장하는 사회와 거기에 길들여진 오늘날 젊은이들, 자신의 모습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프레디와 그의 연인들, 성소수자의 사랑에 대한 지평을 넓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열리는 퀴어축제의 반대 측에서는 그들을 저주하고 제지하는 맞불집회를 곤 한다. 90년대 초, 동성연애와 에이즈는 1+1 패키지였고 당시의 정서로서는 저주와 공포의 대상이었음은 물론이다. 오늘날 발달한 의학 덕분에 관리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고 성소수자 인권의식도 향상된 측면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혐오한다.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연인 짐 허튼 사진=네이버


10년 전에 이 영화가 공개됐다면 덮어 놓고 더러운 영화라고 저주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900만의 한국사람이 보았다는 건 성적 취향을 떠나 성소수자의 사랑도 아름다운 것이며 나아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공감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적지 않은 시간 프레디의 사랑에 할애했고 관객은 이를 끌어안은 셈이다.


생명의 촛불이 희미해져 갈수록 음악에 대한 열정을 더욱 불태운 프레디,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


프레디는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연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눈을 뜨자 창작 욕구를 태운다. 불치병임을 알게 된 순간 우리는 의욕적이 될까 아님 절망에 빠지게 될까.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지만 생명이 희미해져 가는 자신을 보며 의욕을 발휘한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혹 누군가 그럴 수 있다면 그는 삶에 대한 애착이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그런 사람 앞에 숙연해질 뿐만 아니라 경외심을 품게 된다. 우리는 프레디 안에서 그것을 보았다.


프레디 머큐리 사망 전 마지막 앨범 'Innuendo' 수록곡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뮤비의 마지막 장면


프레디 머큐리는 죽었지만 그게 사실인지 의문이며 때론 부당하게 느껴진다. 스크린과 오디오에서 그의 표정과 음성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고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AI의 등장, 생명공학의 혁신은 기존의 생명ㆍ윤리관을 뒤흔들고 있다. 짐작컨대 비교적 빠른 시일 내로 죽음에 대한 개념이 재정립될 것이다. 심장이 멎는 것과 뇌기능이 다한 것만으로 더 이상 죽음을 정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타인의 심장을 뛰게 하고 희망과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면 그는 죽었어도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헤미안 랩소디의 하이라이트 '갈릴레오~ 갈릴레오~'가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타 들어가고 있다면 프레디 머큐리는 여전히 살아있게 되는 것이다.


ㆍ대한민국 파출소 경관


■ 작년 10월 30일에 영화를 봤다.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때의 감동이 여전히 내 심장을 움켜쥐고 있다.  

                                                                                

https://youtu.be/oB4K0scMy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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