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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isopher Dec 26. 2019

'천문' : 하늘에 묻는다. 에로스인가 필리아 인가




간의, 양부일구, 자격루 등 천문관측기와 각종 시계를 만들어낸 과학자 또는 엔지니어로서 능력이 비범한데다 관노에서 종3품 대호군 벼슬에 이르는 삶의 사이클 또한 워낙 굴곡진 인물, 익히 알려진 대로 이 위대한 과학자는 그를 총애하던 임금으로부터 형벌을 받은 후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이 대목에서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영화 천문 또한 실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단연 그가 왜 사라졌는가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하나 배우 한석규(세종 역)와 최민식(장영실 역)의 연기 장인들의 만남이다. 넘버3, 쉬리 이후 20여년 만에 호흡을 맞추게 되는 만큼 그들의 농익은 인물 묘사는 부푼 기대감을 갖게 했다.

     

물시계 원리를 시연하는 영실과 호기심 가득 지켜보고 있는 세종 <사진=영화 천문 中>


세종과 장영실은 국민적 영웅 또는 그에 걸 맞는 인물로서 여러 매체를 통해 익숙해져 있다. 세종의 존재야 워낙 독보적이므로 그렇다쳐도 그간 그를 비추기 위한 서치라이트에 머물러 있던 장영실이 최근 몇 년 사이 독자적으로 주목받더니 이제는 세종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인지도가 상승했다.

     

영화 천문은 그런 장영실을 뒷받침해주는 듯 임금과 신하 관계라기보다는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종업계 파트너처럼 그려냈다. 기술 개발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때론 기계를 직접 다루어보기도 하면서 서로 같은 이상을 꿈꾸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들의 경이로운 콜라보는 天과 地만큼이나 거리감 있는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야깃거리가 마를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왕의 침소에 들어가 방문에 별자리를 그려 보인 영실과 이를 흡족해하는 세종. 무척 야릇한 장면이었다. <사진=영화 천문 中>


한편 영화에서 그들의 관계를 군신에서 동료 혹은 친구 관계로 격상?시키고 있지만 도처에서 보여 준 그들의 눈맞춤스킨십은 야릇했다. 가령 비가 와서 별을 보지 못한다고 투덜대는 세종에게 영실은 별을 보여주겠노라 다가가는데 '침소에 잠시 들어도 되겠습니까'라는 표현, 그리고 방문에 별자리를 그리며 보는 장면에서는 에로틱한 감정마저 전해졌다.

     

그들의 이야기에 골몰해 있자니 마치 요새 유행하는 퓨전 사극의 원형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말이 안 된다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하는  시대극들이 그만한 인기를 끌고 있다면 우리는 세종과 장영실의 스토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도와 영실, 그들의 사랑은 필리아을까. 에로스였을까.


ㆍ대한민국 파출소 경관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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