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polisopher May 26. 2018
“아저씨 신고한 지가 언젠데 이제 와요?”
“미안합니다. 퇴근 시간대와 맞물려 길이 많이 막히더라고요.”
“누가 죽어도 그런 말 할래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도로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잖습니까.”
“사이렌 시끄럽게 울리고 도로 막 가로질러서 그렇게 와야 하는 거 아녜요?”
“그러다 순찰차 사고 나면 씨팔 니가 책임질래요?”
마지막 말이 목젖을 때리고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고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야. 신고자 입장에서는 애가 타겠지. 심지어 5분도 안 되어서 도착했는데도 길길이 날뛰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이해는 돼. 나라면 더 한 막말이라도 했을 테니까.
신고 츨동 중이던 순찰차가 사고 난 뉴스 들어봤지? 이때 경찰이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해. 차가 박살 나는 건 기본이지만 순찰차에 타고 있던 경찰이 죽거나 불구가 되는 경우도 있어.
그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 동료가. 가족이 있었을 거 아냐. 아침 출근할 때, 아내에게 입맞춤을 하며 저녁 외식을 약속했을지 모르고, 모처럼 아들 녀석과 어벤저스를 보러 가기로 했는지도 몰라. 어쩌면 6개월 만에 고향 부모님을 찾아가기로 했는지도 모르지.
그랬던 그가 갑자기 저 세상 사람이 되었어. 영원한 불구가 되어버리거나...
그래 맞아.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게 되어 있어. 그런데 그거 아냐? 경찰? 완존 겁쟁이야. 제복 입으면 자세도 나고, 위엄도 있어 보이지? 그런데 더러운 건 안 보고 싶고, 위험한 데서는 유턴하고 싶단다.
나? 봉순경이라고 별 수 있겠냐. 괜히 폼 잡는 거야. 덤덤한 척, 안 무서운 척하는 거라고.
예고 없이 오는 게 사고지. 맞아.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경찰은 매일 사고당하는 걸 상상해. 왜? 모두가 피하는 위험한 곳을 일부러 들어가야 하거든. 알잖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겨진 차와 여기저기 찢긴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는 교통사고 현장. 칼 들고 싸우고 있다는 단란주점 내실에도 들어가야 해. 입구가 불그스레한 게 얼마나 기분 나쁜지 모르지. 왜 있잖아. 정육점 불빛 같은.
알다시피 인간이길 포기한 주취자들 깨우러 가는 건 일상이지. 반말과 욕 들어 쳐 먹는 건 당연하고 ‘선생님 선생님’해가며 열심히 깨우고 있는데 ‘빡큐질’ 어택... 당해 봤어? 좇도 민망해. 그것도 잠시, 혹시 날아올지도 모를 유탄 주먹을 피하기 위해 위아래 눈알 돌리며 노심초사 한 바가지.
알지? 소가 도축장에 끌러가기 전에 뒷걸음질치고 눈물 흘린다는 거. 한갓 미물도 죽을 자린지 아닌지 안다는 거잖아. 하물며 만물의 영장은 오죽하겠냐. 맡겨 놓은 사진 찾으러 가는 것처럼 어떤 그림이 나올지 뻔히 아는데 가고 싶겠냐고.
더러움, 불쾌, 공포, 짜증, 분노 모든 걸 억누르고 어찌 됐든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임무니까.
골든타임이라고 들어봤지? 119는 5분 안에 가야 한다더라. 심장이 멎은 사람 구하려면 말이야. 이런 일이 있었어. 주취자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데 이 아저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는 거야. 술김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어라 그게 아니네. 눈이 스르륵 감기는 거 있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심장 부위를 열심히 펌핑했지. 그러자 신기하게도 감겼던 눈이 스르륵 다시 떠지는 거야. 그것도 잠시, 다시 감겨버리대. 마침 도착한 구급대원이 시간을 보더니 그러더라. 5분 지났다고. 결국 그 아저씨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아직도 잊지 못해 서서히 식어가던 눈빛과 살갗의 냉기를...
112도 5분이야. 왜 5분인지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징적인 의미라고 이해하고 있어. 그만큼 빨리 가서 구하고 도와야 한다는 취지겠지. 그런데 말이다. 이 상징적인 숫자를 오해해서. 정말 5분 안에 주파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 모든 불신과 아픔은 여기서 시작되는 거 아닌가 싶다.
보통 교통 신호 대기하면 몇 분? 아무리 못해도 3분, 5분도 넘어가. 출퇴근길 겹쳐봐. 10분이 뭐야. 차에 내려서 걸어가는 게 빠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냐?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우리나라 도로 사정상 5분 안에 갈 수 있는 데가 몇 군데나 될지를. 도시는 정교한 교통 시스템과 차량 체증으로, 시골은 광활한 영토 때문에, 아이언맨이라면 모를까.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해도 못가. 5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잖아.
그런데 경찰이 본연의 임무 다 한다고 서두르다가 신호를 깠어, 또 중앙선을 넘다가 마주오는 차량과 꽝!
사고 나면 어떻게 되게? 암! 조사 들어오지. 사고 났으니 당연한 건데 문제는 왜 신호위반을 했냐, 중앙선을 넘었냐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하다 그리 되었는데 쫀쫀하게 그걸 따지냐고? 어. 따져. 신호를 까고 중앙선을 넘을 만큼 급했냐고. 인상 팍팍 쓰믄서.
그런데 너는 알 수 있겠니? 전지전능의 탈을 쓰고 있는 감찰 나리들은 알고 있을까? 신고를 접수하는 상황실은?
무슨 말이겠어. 결국 순찰맨이 직접 가 봐야 급한지 아닌지 판결 난다는 얘기지. 그러니까 신고가 일단 터지면 무조건 빨리 가볼 수밖에 없지 않겠어? 신고자 입장에서는 당연 좋아. 경찰도 그게 본연의 임무이자.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데 그렇게 사고 나면 출동 경찰은 엄청난 압박과 불이익에 시달려, 징계는 물론이고 형사처벌도 받아야 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상대방에게 금전적 보상도 해야 해.
사고를 당한 사람과 그 가족은 말도 못 할 고통에 빠지겠지. 그래서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거는 맞지만. 문제는 보상 주체가 국가가 아닌 경찰 개인이라는 거지.
왜? 놀랬어? 국가가 당연 해주는 줄 알았다고? 지랄. 미드, 너무 많이 본거야. 현실은 정 순경, 이 경장이 다 물어줘야 해. 이게 실화냐? 그래 실화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이해가 안 되는게 있어. 경찰이 노닥거리다가 사고 난 게 아니잖아. 설령 노닥거리고 있다 손 쳐. 그거 꼴 보기 싫다고 경찰 때리면 어떻게 되게? 그래. 공무집행 방해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어. 그런데 112 출동 중에 발생한 사고 책임에 대해서는 왜 그 경찰 몸뚱어리로 때우라고 하는데?
이렇게 따지면 뭐라는 줄 알아? 처벌할 법은 있는데 보상해줄 법이 없단다. 웃기지. 나도 웃겨. 그러니 안 그래도 가고 싶지 않은 신고 현장에 가고 싶겠냐? 씨발...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목에 핏대가 섰다. 경찰에게 닥친 위험과 그 뒤에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광경을 직간접적으로 하도 겪었더니 그래. 이해 좀 해주라.
야야야 나 가봐야겠다. 신고 들어왔대. 오후 5시밖에 안 됐는데 술 처먹고 지랄들 났단다. 여기서 퀴즈 하나 낼게. 이 신고는 급한 걸까. 안 급한 걸까. 뭐? 그게 뭣이 중허냐고? 그래 니 말이 맞다. 이래도 저래도 신호 다 지키며 가는 게 중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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