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들 서류 보내오는 거 봐라. 빙신들.. 여러 번 읽어도 뭔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수두룩한 오탈 자하며.. 걔네들 쓴 거 읽다 보면 내가 검산지 빨간 펜 선생인지 모르겠다니까.”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이번 기회에서 매듭을 분명히 지어야 합니다.’라는 경찰청장의 전례 없는 강경한 모습이 뉴스 화면에서 한 번, 그 뉴스 앵커를 통해 다시 한번 전파되고 있을 즈음, 옆 테이블에서 터진 소리였다.
모처럼 갖는 회식 자린데, 그것도 이제 막 이슬 한 잔 비웠을 뿐인데, 노릇하게 구워 바삭해진 막창을 이제 한 입 질겅거렸을 뿐인데 그 소중한 맛을 느낄 수가 없었어. 막창, 그 고소하고 다디단 녀석이 내 분노의 턱짓에 짓이겨질 뿐이었지.
“수사서류 그 따위로 쓰는 새끼들이 무슨 수사권 운운하는지. 세상 말세다. 말세.”
‘쾅’
나도 모르게 두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PAUSE 버튼을 눌렀다가 잽싸게 원위치한 듯 0.05초가량의 적막을 깨고, 지글거리며 막창 타는 소리, 잔 부딪히는 소리, 발을 동동 구르며 깔깔거리는 여자 소리, 씨팔 거리는 혀 꼬인 남자들의 욕설 따위들로 막창 집 안은 다시 가득 찼다.
하지만 한 테이블 만은 그럴 수 없었지.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짓누른 채 내 눈은 좌측을 쏘고 있었거든.
“당신 나 알아?”
“아니.”
“근데 왜 야려.”
“말을 싸가지없게 해서”
“내가 뭔 말을 싹수없게 했는데”
“경찰 서류가 좆같다느.... ”
“......”
순간 나도 놈도 말을 잃은 채, 서로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그런 다음 아주 잠시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웃기 시작했어.
“뭐야. 너... 씨... 너 설마 짭새?”
“그래 씹새야. 나 짭새다. 이 검새야.”
대학 동문으로 법학과를 나와 5년 전에 사법시험 붙어서 검사 된 놈. 서장의 직속 후배가 되는 셈이지. 신림동에서 형법 강의 들을 때, 나 철학과라고 은근히 무시할 때부터 놈과는 인간적인 교류는 일부러 갖지 않았지. 나는 딴 건 모르겠고. 인간이 덜 된 놈이 젤 싫거든.
그래서 비록 오랜만에 만났지만 눈깔 아래로 깔며 우습게 쳐다보던 그때 그 표정이 오버랩되면서 짜증이 확 일어버리더라, 더군다나 조금 전 싹수없는 말의 주인공까지 되시니... 지금부터의 대화가 어찌 될지 안 봐도 비디오였지.
“새끼 판사 된다고 깝죽되더만 고작 경찰인 거였어? 그럼 뭐 간후보? 봉경위냐?”
“봉순경이다 어쩔래. 씨밸럼아.”
내가 뭐랬냐. 저 주둥이 저럴 거라 했지? 놈도 헛다리를 짚어 민망했던지 잠시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약삭빠르게 화제를 원점으로 돌려버리더라.
“내가 틀린 말 한 거 아니잖아.”
“아니 틀린 말 했어.”
“너 네 서류 엉망으로 해 오는 거 맞잖아.”
“야 씨팔, 지금 서류 오탈자로 수사권 자질을 논하냐? 그러니까. 넌 검새야. 이 씹새야.”
“좆까고 있네, 야 문맥도 엉터리고, 글자도 막 틀려오면 내 입장에서 얼마나 짜증 나는지 알어?”
“야 씨발아, 니가 보기에 좆같아 보이는 수사서류 말이다. 어떻게 작성하는지 알기나 하고 지껄이냐?”
“5년 만에 보면서 말 좆같이 이쁘게도 한다. 야 내가 짭새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아냐. 그리고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너 수사의 주재자라매? 그러면 밑바닥 수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최소한 관심은 가져야 하는 거 아냐?”
“웃기지도 않어... 얼마 전에 드라마 봤는데.. 야 니들은 무슨 놈의 신파청이냐? 맨날 울고 질질 짜고. 병신들 아주 웃기지도 않아. 15만 공룡 조직이 어떻게 20년 전 와일드 카드’⃰ 때나 지금이나 똑같냐. 니들 수사가 지랄 맞은 게 내가 문제라서 그런 거냐? 찍소리도 못하는 무능한 너나 그러거나 말거나 정치권에 줄 대기에 급급한 니들 윗대가리들 탓이지.”
씨발 개새끼... 좆나 솔직하게 경찰의 가장 깊은 속을 들추어냈다. 기분은 엿 같지만 어쩌겠는가.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대화의 본질은 이게 아니었다.
“좋은 지적 땡큐다. 씹새야. 그런데 넌 아직 내 질문에 답 안 했다. 그놈의 오탈자가 공소장 작성하는 너를 짜증 나게 했다고 치자. 그게 무능한 경찰의 만성적인 문제라고 치자 이거야. 그게 니들이 수사권을 포기 못하겠다는 이유냐?”
“야. 짭새. 흥분하지 마라. 설마 그것 때문에 그러겠냐? 우리가 늘 이야기하잖아. 수사라는 게 엄격한 절차에 의해서 이뤄져야 하는 거라고. 근데 뭐야 툭하면 반말하고 두들겨 패고, 기본적으로 인권의식이 박약하잖아. 안 그래? 그런데다 수사서류까지 개판이고.. 그게 대수롭지 않다는 거냐?”
“솔직히 실망이다. 물론 니 주댕이에서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한 것은 아니다만 경찰 인권의식이 어떻고, 수사서류 오탈자가 어떻고라니... 좋다. 오탈자 비율이 높은 건 인정 하마. 초를 다투는 사건을 접하며, 너 좋아하는 절차 지키려 퇴고에 탈고할 시간이 없어서 그랬다.”
“쳇!”
“너처럼 책상머리에 앉아 느긋하고 꼼꼼히 들여다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니 말에 일리는 있다. 경찰인력이나 조직 구성을 효율적으로 손보고, 또 경찰관으로서 오탈자나 문맥상 오류를 줄이려는 노력도 해야겠지. 그런데 말이다. 인권의식 없다는 말은 본말이 전도된 거 아니냐?”
“너 검찰 조사 중에 투신한 사람들 말하려고 그러지?”
“잘 아네, 경찰 조사 중에 그런 비슷한 일 있어봐라. 여기저기서 아주 게떼처럼 달라붙어가지고 이리 빨고 저리 빨아서 빈 쭉정이를 만들어 버리잖아. 그런데 니들은 뭐야. 니들은 누가 뭐라디? 마. 상식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너 나할 거 없이 죄다 통제받고 있는데 왜 니들만 열외 하냐? 그렇게들 전지전능하셔? 어?”
“쯧쯧쯧. 뭐 한마디 하면 이렇게 미친 망아지처럼 날뛴다니까. 야 다 집어치우고, 니들이 이렇게 게걸스럽게 일하니까 냉정하게 크로스 체크해줘야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거야. 이 멍충아.”
“야, 엉뚱하게 말 빙빙 돌리지 말고. 니들이 얼마나 웃기는 줄 알기나 아냐? 경찰은 모자라서 선생 같은 검찰의 통제를 받아야 한대. 그런데 지들은 그럴 필요가 없대. 왜. 검사니까. 지나가는 개도 웃을 기가 막힌 논리 전개야. 짝짝짝. 아니 어떻게 돼먹은 놈들이기에 국가기관이라는 것들이 국민의 통제를 안 받으려고 하는 거야.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 야 너 이게 진짜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어? 진짜로?”
“......”
“그놈의 기소편의주의가 뭐냐, 도대체가. 이게 사람 잡는 거야. 이런 신격화된 용어나 권한이 니들 다 망쳐 놓은 거야. 출세, 권력욕에 미쳐서 검사된 욕망 덩어리인 주제에 기소편의주의가 말이나 되냐?
“......”
“너. 니들 하는 말 있지 왜. 니들은 사회 거악 잡고, 잡범 잡는 건 경찰이나 하는 일이라고”
“사실이잖아.”
“그놈의 사회 거악은 어때 잘 잡혀? 이 씨밸롬아 국민들 원성 들리지도 않냐? 그것들 제 때 제 때 잡아 처넣기만 했어도,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왔겠냐? 경찰이 정치권에 줄 댄다고 해도, 씨발놈아 니들만 하겠어. 국회든 어디든 니들이 안 잡고 있는 데가 있기나 해?”
“......”
놈은 잠시 내 얼굴을 보다 아무 말 없이 비어있는 내 술잔에 이슬을 한 잔 가득 따라주었어.
“야, 목마를 텐데 한 잔해라.”
생각해보니 술집에 들어온 뒤로 딱 한 잔만 마셨다. 약한 불에 뭉긋하게 다려진 막창도 죄다 말라비틀어져 과자 부스러기가 되어 버렸고.
“야. 그나저나. 그 형, 서장질 어때?”
“몰라, 병신 새끼, 가오 잡으려고 경찰 됐지, 뭐 신경이나 쓰겠어.”
“그 냥반 안 그랬는데... 경찰 되더니 변했네.”
“경찰 되고 변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인간이었어. 부모 잘 둔 덕에 어려움 없이 공부하고, 사법시험 붙고, 뭐.. 돈 있겠다. 권력 한 번 잡아 보고 싶었던 거지.”
놈이 술잔을 들어 남아 있던 술을 제 입에 털어내더니 내 앞으로 들이밀더라, 무의적으로 한 잔 따라줬지. 그러다 퍼뜩 생각이 났다.
“야, 그나저나 뭐야. 왜 말을 딴 데로 돌려.. 결정타에 할 말 잃었냐?”
“나도 잘 모르겠다. 니 말마따나 검사 되어 보니 봬는 게 없어지기는 하더라. 내가 좀 싹수없기는 했어도 모진 놈은 아녔는데 자리가 엄청 큰 거야..... 욕망 덩어리에게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힘을 주었으니...
근데 처음에는 디게 조심스러웠거든... 여러 번 곱씹으며 한 인간의 운명도 생각해보고.. 그런데 쏟아지는 업무 때문에 그딴 거 생각할 겨를이 없어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도장 찍는 속도가 빨라졌지 뭐.”
놈은 말이 끝나자, 다시 술잔을 입에 가져갔고, 빈 술잔을 내 앞으로 내밀었어. 그래서 이번엔 의식적으로 술을 따라주었지. 그렇게 빈정대던 놈이 갑자기 센티해지더라.
“니 말대로, 짭새. 아니 경찰들 고생하는 건 알겠더라. 철끈을 풀었다 맺다. 몇 번을 했는지 여기저기 찢겨 걸레가 된 수사보고... 처음엔 기본도 안 된 무식한 것들이라고 엄청 무시했는데 고뇌 가득했을 상황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계속 올라오는 증거 영상들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
“뭔 내용이었는데.”
“공무집행방해, 폭행죄, 모욕죄... 심지어 독직폭행의 장면까지.... 그 안에 담긴 경찰은 엄청 약해 보였어. 경찰이 피해자가 된 경우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욕설에, 막말에, 붙잡히고, 밀리고, 주먹질에.”
“치......”
“솔직히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나는 검사니까. 절대 그럴 일은 없잖아.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는 감정이입이 조금씩 되면서 현장 경찰을 이해하려고 하더라. 내가.”
난데없는 놈의 급반전에 독기 품었던 나도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묻고 싶었던 것은 물어야 했어.
“니가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다행이란 생각은 든다. 그건 그렇고 수사지휘권 내려놓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냐?”
“수사지휘권? 좀 웃기지. 같은 조직도 아니고, 타 부서 사람이 타 부서 사람을 지휘하고 명령한다는 게. 이런 난센스도 없기는 하지. 검찰이 지휘를 한다고 절차가 잘 지켜진다거나 인권보호가 잘 된다고는 생각 못 하겠어. 게다가 필드에서 뛰는 사람을 책상머리에서 무슨 수로 지휘하고 인권을 보호하겠냐. 법률적 조언자라면 모를까. 하지만 꼭 검찰이 아니더라도 경찰은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적법절차나 인권보호대책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마저 부정하면 나도 더 이상 이야기 안 하련다.”
이제야 대화다운 대화가 될 것 같았다. 새끼. 진작 이렇게 나왔으면 술맛도 더 좋았을 거 아냐. 어느새 나는 놈의 술잔에 내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건 니 말이 맞다. 본질을 말한 거아. 경찰처럼 거대하고 폐쇄적이고 획일화된 조직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니까. 검찰이 수사권 조정의 전제 조건이라고 주접만 떨지 않으면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찰 안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지.”
“일어날란다.”
“뭣이? 이제 술맛 좀 나려고 하는데 벌써 일어난다고?”
“나, 너처럼 그렇게 한가한 놈 아니다.”
“이 씹탱이.. 끝까지...”
“새꺄 농담이다. 농담. 너도 그 욱하는 성질 좀 버려라. 그리고 조심해. 띄어쓰기 잘 하고.. 내가 너 관할 검사니까. 히히.”
“뭐? 뭐야? 야 왜 진작 말 안 했어. 이 죽일 놈의 새끼...”
놈은 뒤돌아서 한 번 웃고 나가버렸다. 싱거운 놈 같으니라고.
수사권 조정...
주사위가 던져진지 1년가량 된 것 같다. 그런데 여전히 그 게임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이미 한 번 던진 것으로 족하지 않았는지. 변심한 상대편은 다시 던지자고 한다. 그러면 상대도 다시 던지려고 하겠지.. 주사위를 쥔 자들은 어떻게든 유리한 승부를 하고 싶을 테니까.
그나저나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놈이 관할 검사였다는 것이. 썅.. 얼굴이 화끈거린다.
ᆞᆞᆞkantrolᆞᆞᆞ
용어 해설
1.수사의 주재자
수사의 개시부터 진행 그리고 완결까지 전 과정을 쥐락펴락하는 자
2.기소편의주의
처벌할지말지 지 꼴리는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뜻
3.와일드 카드⃰
2003년 상영한 범죄자 때려잡는 형사들을 소재로 한 영화, 개인적으로 범죄현장에 맞딱뜨린 경찰의 리얼리티를 잘 묘사한 영화로 평가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