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대한 존중과 힐난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식문화 주요 키워드를 들여다보면 파인 다이닝, 오마카세, 와인 페어링 등을 꼽을 수 있다.
식문화가 고도화되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계단 발전한 고급 식문화가 대중화되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외식 트렌드에 불을 뿜게 했던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가 붐을 몰고 왔다.
그리고 최근 5년을 기준으로 돌아본다면 코로나19로 인한 해외여행 수요 위축에 따른 자가 식문화 소비 지출 비용의 증가 등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큰 흐름과 별개로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키워드가 하나 있다.
바로 평양냉면이다.
가수 존박을 비롯하여 미식가라고 불리는 여러 연예인들의 맛집으로 역사 깊은 평양냉면 전문점이 언론에 노출되었고 슴슴하고 밍밍한 맛에 대해 평양냉면, 일명 진짜 평냉의 맛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어딘가에서는 지속되고 있다.
나는 사실 평냉에 대해 선입견이나 불편함은 없다.
2014년 을밀대에서 소위 ‘진짜 평양냉면’을 처음 접했고 처음에는 정말 ’이 행주 세척한 물‘을 왜 돈 주고 사 먹는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여전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과 정말 가끔 을밀대를 갔었다.
그러던 2020년 우래옥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호기심에 방문한 우래옥은 나에게 평양냉면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짝 알게 해 주었다.
평냉 마니아들이 말하는 육향이 무엇인지,
그 자극적이지 않은(우래옥은 사실 평양냉면 중에는 자극적이라 생각한다) 평양냉면의 맛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느끼게 되었고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몇 년간 여름마다 우래옥을 가면서 평양냉면 레벨을 끌어올리고 있었고 오늘은 최근에 다녀온 평양면옥 본점을 기록하고자 한다.
* 평양면옥 본점
- 서울 중구 장충단로 207 1층
- 매일 11:00~21:30
- 냉면 / 비빔냉면 15.0
- 냉면 곱빼기 22.0
- 편육 35.0 / 편육반 19.0
우리나라 평양냉면 역사에는 크게 4가지 계열이 존재한다.
1. 우래옥 : 을지로에서 1946년부터 영업한 육향이 진한 순 메밀면의 냉면
2. 의정부 계열 : 의정부 평양면옥을 시작으로 창립자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필동면옥, 을지면옥, 본가평양면옥
3. 장충동 계열 : 대동면옥에서 시작되어 가족들이 운영하는 평양면옥
4. 백령도 계열 : 사골국물과 까나리액젓으로 맛을 낸 변가네옹진냉면
추가로 을밀대, 능라도 등 역사 깊은 평양냉면 장인들이 있다.
내가 방문한 평양면옥은 장충동 계열이며 너무나 유명하기에 각종 매스컴에 여러 번 나왔고 거의 기업처럼 운영한다. 편육반, 냉면, 비빔냉면을 주문했다. 매장은 상당히 넓고 직원들이 많으며 밑반찬이 깔끔하게 제공된다. 아내는 비빔 애호가이다. 평양냉면의 세계로 같이 손잡고 가고 싶었으나 취향을 존중하는 우리 부부는 다양하게 주문해서 나눠먹는 것을 좋아한다. 아참 그리고 나는 맵찔이라 강제 평냉이다.
그래서 비빔냉면, 물냉면을 각각 1개씩 주문하고 편육도 주문했다. 편육이 생각보다 참 기가 막혔는 데 굉장히 잘 삶아졌고 온도가 따뜻해서 서비스되어서 참 맛있었다.
평양면옥의 비빔냉면은 살짝 매콤했지만 달큰한 중독성이 있어서 꽤 많이 뺏어(?) 먹었다. 내가 자꾸만 감탄하면서 물냉면을 먹으니 아내가 그게 왜 맛있냐며 나누어 먹어보고는 한마디를 했다. ‘육수가 차가운 설렁탕 같다’ 완벽한 한 줄이었다. 그렇다. 육향이 은은하게 베여있는데 느끼하지 않은 그 느낌이 정확히 차가운 설렁탕 느낌이었다. 슴슴하고 맹숭맹숭한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묘하게 여운을 남기는 끝향. 그리고 면발은 부드럽고 소화가 잘될 거 같은 괜한 느낌도 들었다.
내가 나이가 든 것인지, 입맛이 바뀐 것인지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 평양냉면을 ‘힐난’하던 내가 어느새 ‘찬양’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하니 인간 군상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는 동시에 다른 평양냉면 맛집들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오히려 여름이 되기 전에 아내 손을 잡고 다양한 평양냉면 맛집을 방문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