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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이네 Jul 03. 2024

마녀가 된 할머니

뚱이 할머니가 된 나의 엄마

 옛날에 아이를 잡아먹는 아주 무시무시한 마녀가 한 명 살았어요. 마녀는 토실토실한 아이를 한 명 발견하고는 그대로 잡아서 오븐에 던져버렸죠. 하지만 아이는 용감하게 맞서 싸워서 탈출에 성공했대요!

   

  고전 명작동화에 나올법한 이 플롯은 요즘 뚱이가 할머니와 매주 즐겨 하는 놀이이다. 토실토실한 아이인 뚱이는 주로 소파에서 발견되며, 침대는 마녀 할머니가 아이를 던져 넣는 오븐이 된다. 어찌 된 일인지 아이는 단 한 번도 마녀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없다. 늘 용감하게 탈출하고, 잠시 후 똑같은 자리에서 또 마녀에게 잡히고 만다. 지친 마녀가 잠시 쉬고 있으면, 용감한 아이가 마녀에게 가서 자기를 잡으라며 떼를 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내가 맏이인 까닭에 평생을 00이 엄마로 살아오신 나의 엄마는, 2019년을 기점으로 뚱이 할머니가 되셨다. 내 뱃속에서 나날이 자라나는 뚱이를 기다리며 목화솜을 사다가 아기 이불을 만들어 주셨고, 출산 전 베이비페어에서 천 기저귀 수십 개를 사서 안겨 주시기도 했다. K장녀인 나는 소심한 반항을 시도했지만, 결국 그 천 기저귀 더미를 9개월까지 빨아서 썼다.

  그런 뚱이 할머니가 지금은 매 주말 뚱이의 베스트프렌드가 되어 주신다. 여섯 살과 예순두 살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모래 놀이터에서 땅에 묻어주기, 욕조에서 물놀이하기, 함께 만화 보며 춤추기 등. 그중 요즘 최고의 놀이가 바로 ‘아이를 잡아먹는 마녀 할머니’다. 엄마의 아픈 무릎이 걱정되어 말리면, 두 짝꿍은 나를 재밌는 놀이에 끼어드는 불청객으로 취급한다.     

 

추운 겨울날, 뚱이와 할머니는 눈오리 수십 마리를 만들었다.




  엄마 6년 차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의 범위는, 결국 그 6년만큼의 시간이 전부인 셈이다. 남편에게 뚱이를 맡기고 잠시 외출하는 것도 한걱정이었던 내가, 요즘은 거의 매주 주말 뚱이를 할머니 집에 보낸다. 혹시 엄마랑 자겠다고 울면 어떡하나 싶어서, 친정에 맡긴 첫 토요일에는 남편과 밤늦도록 친정 주변을 산책-을 빙자한 대기-하곤 했었다. 그 한 주가 두 주가 되고, 요즘은 토요일 오후만 되면 뚱이 입에서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물론 뚱이 할머니가 먼저 전화를 주실 때도 많다. “뚱! 할머니 집에 몇 시에 올거야?”     

  토요일이면 뚱이를 초대하시는 엄마의 마음을, 처음엔 그저 엄마 모드로 이해했다. 뚱이를 하루 맡아줄 테니 우리 딸 토요일에는 좀 쉬렴, 내지는 둘이 데이트도 하면서 편히 보내렴, 등으로 말이다. 아이를 맡기는 자녀들 때문에 힘든 노후를 보내시는 조부모님들이 많다는 뉴스를 보고는 미안함과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할머니가 되어 보지 못한 나만의 생각이었다. 나의 엄마는 진작 00이 엄마 자리에 사표를 내시고 뚱이 할머니로 전업하셨다는 것을 몰랐던 탓이다. 뚱이를 보는 엄마의 눈빛,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우리 남매를 키우실 때와는 다른 장르의 사랑이 담겨있다. 그것은 오로지 뚱이 몫만 있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사랑이며, 나의 엄마는 뚱이와 보내는 시간을 진심으로 즐기고 계신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우리 남매를 키우실 때와는 모든 육아관이 100% 바뀌어 버린 모습을 보며, 동생과 나는 투정을 하기도 한다. 뚱이 할머니, 뚱이가 밥을 다 안 먹었는데 간식을 안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면 엄마는 말씀하신다. 사람이 돼지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밥을 다 먹니? 너네나 잘해! 참고로 우리 남매는 어릴 때 밥그릇에 밥풀이 남아 있으면, 밥상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상상을 하게 된다. 엄마와 나, 뚱이를 한 프레임에 놓고 보면, 우리는 한 사람의 미래와 현재, 과거인가 싶을 정도로 많이 닮았다.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볼 때면 종종 생각에 잠긴다. 내가 지금의 엄마만큼 나이가 들면 어떤 모습일까? 언젠가 있을지 모를 뚱이의 아이를 나도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은 여러 단면과 무게를 가지고 찾아온다는 것을 오늘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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