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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이네 Jul 06. 2024

6세의 건배사

뚱부장님의 취향

  내가 13개월까지 모유 수유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을 모아보았다.

    

  1. (나를 잘 모르는 사람) 와, 대단하시네요!

  2. (나를 잘 아는 사람) 안 힘들었어? 역시 체력이 대박이군.

  3.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람) 술은?     


  3번과 같은 질문을 받을 만큼 정말 많이 마셨다는 양심 고백을 남겨 본다. 나는 ‘간’이 과로하는 20대를 보냈다. 내향형 인간답게 각종 모임, 왁자지껄한 술자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예 관심이 없고 귀찮다. 오로지 가까운 사람들과 퍼마시는! 유형이었다. 술은 연애할 때 싸움거리에 해당하는 단골손님인데,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비슷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 내 남편은 연애하는 2년 동안 나와 함께 술 마시고, 취해주고, 즐거워해 주고, 울어주었다.

  집에서 함께 술 마시는 동지가 있는 신혼은 여러 가지 선물을 남겼다. 성장기 청소년만큼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초록색 소주병을 모아서 집 근처 마트에 가져다 팔았더니 진정한 창조 경제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마트 사장님들이 술을 사고 팔러 오는 우리를 기억해 주셨을 때 몰려오는 부끄러움은 덤이었다.          

  



  그런 내가 임신부터 모유 수유까지 만 2년 정도 술을 안 마셨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긴 하다. 술 마시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냐는 질문은 꽤 여러 번 받았는데,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

  내 삶은 큰 계획 자체가 없다. 모유 수유는 거창한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내가 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분유를 고르고, 주문하고, 시간 맞춰 타고, 소독하고 – 내 기준에서는 할 일이 너무 많게 느껴졌다. 모유 수유는 어디서든 옷 벗을 곳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하다 보니 돌이 지났다.     




  젖먹이였던 아기가 어느새 커서 이제는 건배사 전문가가 되었다. 자리에 맞게 준비된 멘트, 우렁찬 선창까지 정말 사회생활 n년차 부장님 같은 느낌이다. 우리 뚱 부장님께서 선호하시는 건배사 멘트는 주로 뚱아! (사랑해!) 내지는 우리 가족! (소중해!) 처럼 가족 모임에 어울리는 것들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잔만 부딪히고 내려놓으면, 왜 안 마시는지까지 일일이 챙겨주신다.

  야근도, 친구를 만나는 일도 거의 없는 나와 남편은 집에서 저녁 먹으며 반주를 한 잔 하는 것이 일상이다. 조기 교육으로 각종 알코올을 보고 자란 뚱이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최근에는 다이어트와 건강한 삶을 위해 술 마시는 빈도수나 양을 조금씩 줄여보자고 서로 다짐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노년에 실버타운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에 손잡고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셋이 앉아서 저녁 먹으며 잔을 맞대는 시간은 포기할 수가 없다. 뚱이가 외치는 건배사에는 웃음이 나고, 예쁜 소주잔에 물을 마시겠다고 할 때는 난감하지만 귀엽다.

  잔을 부딪히며 나눈 대화들 - 스무 살이 되면 엄마 아빠가 맥주를 사줄게, 언젠가 독일의 맥주 축제에도 같이 가보자, 따위의 약속을 뚱이가 기억해 줄지는 모르겠다. 어른이 된 뚱이가 마트에 진열된 술을 보았을 때, 즐거웠던 저녁과 행복한 감정의 조각들을 떠올리길 바라본다.

4살 때도 카리스가 넘쳤던 뚱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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