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튀 스커트보다 도복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시절부터 뚱이의 로망은 늘 한결같았다. 그것은 도복을 입고 싶다는 것. 도복에 검은 띠를 맨 언니 오빠들을 볼 때면 어찌나 멋지다고 하는지, 길에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엄마, 저 언니는 검은띠야!!”라고 외쳐서 내향형인 엄마는 숨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초등학교 정문부터 큰길까지 이어지는 골목에는 태권도 학원도 많고, 띠를 맨 아이들도 많았다. 한 태권도장에 다닌다는 소속감을 나타내는 도복 가방과 단체 티 덕분에, 그걸 보는 뚱이의 꿈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리고 다섯 살이 저물어 가던 겨울, 뚱이도 드디어 도복에 흰띠를 맨 유치부 꿈나무가 되었다.
5세가 태권도장에 등록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 형제자매가 같은 도장에 다니는 경우 의지해서 다닌다.
- 하루 정도 체험 수업을 해본다.
후자의 경우는 일종의 입단 테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수업 중 앉아 있기, 줄 서기 등의 규칙을 지킬 수 있는지, 사범님들의 지시에 따를 수 있는지 등을 보시는 과정이다.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서 오래도록 기다려 온 뚱이에게
오늘은 뚱이가 태권도를 배울 수 있을지 테스트를 해보시는 거야.
이걸 통과해야 태권도장에 다닐 수 있어.
라고 말했을 때의 비장함이란… 뚱이의 다섯 살 인생에서 이처럼 긴장되는 순간이 또 있었을까 싶다. 이미 어린이집 생활 3년 차였던 뚱이는 무난히 테스트를 마치고, 온 가족의 환호와 축하를 받으며 흰 띠를 받았다. 맞는 도복이 없어서 지금까지도 밑단을 두 번 접어 입는 태권도복은 뚱이의 소중한 보물이다.
그런 아이가 얼마 전 노란 띠를 받았다. 등록한 지 6개월쯤 되면 노란 띠를 주시나 보다 싶었는데, 띠 주인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노란 띠를 동그란 배에 동여매고 집에 가며 쫑알쫑알 얘기하기를, 이 띠는 유치부 중에서도 오늘 딱 두 명만 주셨으며, 자기가 늘 바른 자세로 관장님만 쳐다보았기에 간신히 받을 수 있었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검은 띠를 주실 것 같다는 것이다. 정말로 검은 띠를 받으면 동네 입구에 현수막이라도 걸어야 할 것 같은 이 뿌듯함이라니.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체육을 싫어했으며 실력도 형편없었다. 안 그래도 운동하는 것 자체가 싫은데 체육 때문에 늘 깎여 나가는 내신을 보며 마음속으로는 이미 수백 번 절교를 선언했다. 막연히 대학에 가면 안 해도 되겠지 싶었는데, 웬걸. 생각지 못했던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고, 졸업할 때까지 8학기 내내 체육 관련 수업을 들었다. 물론 7번이 C였다. C를 받지 않은 단 한 학기는 아파서 실기 시험을 치르지 못한 동기들이 내 뒤였다.
뚱이는 나와는 다른 것인지, 아니면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인지, 운동을 좋아한다. 피곤한 날도 태권도장은 빠지는 법이 없다. 집에서도 진지한 무도인의 자세로 태극 1장을 연마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관장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오늘도 8시 반에 육퇴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레할 때 입는 튀튀 스커트나 리듬체조할 때 흔드는 리본에는 관심이 없는 딸이지만, 다행히 엄마인 나에게도 그것들은 로망이 아니었다. 딱히 어떤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나와는 달리 운동을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있었나 보다. 태권도장에 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뚱이를 보면 내 마음에도 행복이 차오른다. 언젠가 검은 띠를 받는 뚱이를 기록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