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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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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31. 2017

낯선 도시가 일상이 되는 순간




 프랑크푸르트에서 생활한지 한 달.


<적응>이라는표현이 우습다. 이 도시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지 도통 모르겠으나 나는 이 투박함과 세밀함이공존하는 고약한 매력에 빠졌다.


나는 여지껏 길을 걷다가도,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도, 나에게 다가와서 가는 길이나 방향에 대한 정보를 물어 오는 사람들을 적잖게 만나 왔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서울이든 대전이든 심지어 오사카에서 마저도.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뭐든 물어 보기에 만만해 보이나?’ ‘어디라도 물어 보면 알고 있을 것 같나?’ 교복을 입었던 학생 때부터 이런 상황은 익숙했고 괜히 피하고 싶을 때면 듣지도 않는 음악을 듣는 척하며 이어폰을 꽂고 서있던 적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음악을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건지 모르는 사람들이 내 등이나 팔을 똑똑 두드리며 말을 걸어 오기도 하니 길을 알려주는 게 나의 평생 과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왜’라는 궁금증에 노이로제가 날 법도 하지 않은가. 

책을 보고 있을 때나 지인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지목되는 건 열에 여덟 번 정도가 나였다. 얘기를 하고 있는데도 내 어깨를 툭 치고는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아니 대체 왜?’ 평생을 살아도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로 남을 테다. 그러거나 말거나 독일에 와서는 당연히 이런 상황은 반복되지 않았다. 독일 땅을 처음 밟았던 날에도 어리바리한 모습 때문이었는지 오히려 덩치 큰 독일인들이 다가와 짐을 들어주고 말을 건네며 <헬퍼(helper)>를 자처해 주었다. 갈색 눈에도 내가 갓 상경한 시골 쥐였나 보다. 상황이 바뀐 건불과 한달.


한 달이 지나 하나 둘, 거리에서 나를 찾는 사람들이 생겼다. ‘아니 대체 왜?’ ‘왜 또?’ 내 겉모습이 바뀐 건지도 모르겠다. 갈색 눈에 산만한 덩치가 되어 보이는 걸까. 독일 분이 독일어로 버스 노선을 물어보기도 하고 나처럼 이 도시에 적응 중이거나 여행을 온 이방인들이 괴테 광장이나 마인강을 찾아가는 길을 물어왔다. 내가 이곳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음이 나도 모르던 사이에 살며시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사소하지만 하나하나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를 알아가고 이곳에서 머물면서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내게는 좋아하는 산책로가 생겼고, 나는 자주 가는 마트의 리스트도 만들었다. 책 한 권 챙겨 나와 벤치에 엎드리듯이 편한 자세로 기대 앉아 느긋하게 책을 보다가 잠들기를 반복하는 아지트가 생겼다. 일본인들이 자주 찾는 정통 일본 라멘집을 알아 단골이 되었다.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은 가지 않으나 목이 좋아(중앙역 바로 앞에 자리잡은 익명의 식당) 프랑크푸르트를 출장으로 찾는 비즈니스맨들이나 나이 지긋해서 가는 곳마다 한식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메인 고객인 한국 음식점들도 구별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시합을 지켜 보면서 맥주를 함께 즐기는 명당 가게들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마다 열리는 장터에서 수제 빵이나 소시지를 사는 즐거움을 알았다. 한달 짜리 교통티켓을 구입하면 주말에 무료로 한 명을 동반할 수 있다는 것도 한 달이 지난 뒤에야 알아챘다. 환경 보증금으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마트에서는 비닐 봉지를 유료로 구입해야하나, 돈 천원이 넘는 봉투 값은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내게 커다란 장바구니를 챙기는 습관을 만들었다. 물건을 사거나 점원에게 문의를 하거나 거리에서 길을 물어볼 때에도 언제든 동양인 여성은 남성에게 다가가야 친절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도 낯설기만한 도시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어느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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