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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Mar 29. 2017

기차를 타고 떠난 네덜란드, 어느 작은 마을의 매력



 다음날 아침이 왔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침이 말이다. 나와 양양은 여유있게 일어나 여유 있게 창문으로 하늘을 봤다. 아 왠걸. 흐리다. 오늘은 둘이 근처 바닷가인 <Zand Voort>에 가기로 한 날이라 영국에서 수영복 판매가 끝나가는 때에 급하게 비키니까지 준비하여 왔는데 말이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영국의 펍 메뉴로 몸을 거대하게 불려 놓은 내가 암스테르담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고 낭만을 즐긴 뒤, 2년 후 쯤, 사진첩을 넘겨 보다 자책을 할 수도 있겠다 싶으니, 한편으로 수영복을 입지 않게 해준 날씨에 오히려 고마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는 양양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있는 마켓인 <Dapper Markt>에 먼저 들러 드디어 청어도, 일년 전부터 이곳 암스테르담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양양이 적극 추천한 훈제 장어도 맛보고, 열었을지 안 열었을지가 항상 확신이 없다는 맛난 케밥도 먹기로 했다. 시장에 들러 장어와 청어는 만났지만, 결국 잦은 휴일을 가진다는 케밥아저씨는 만날 수 없었다.


Dapper 마켓은 네덜란드 전통의 모습을 보기 힘들고, 이민자들이 주로 찾는 모습이다. 아기자기한 소품보다는 실생활용품을 주로 판매해서 관광의 중요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다만 곳곳에 빈티지 의류들은 잘만 찾으면 그럴싸한 디자인의 옷을 저렴하게 얻을 수 있다.



전 날 불금의 열기의 잔재로 속이 좋지 않아 계속해서 오렌지주스를 들이켜야만 했다. @Dapper Markt, 암스테르담


청어(Haring) + 장어(Palling)

"양양 나 속이 안 좋아." 


이 것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전날 밤 장작 6시간을 넘게 작은 잔으로 마셔왔던 맥주들이 개운하지 않은 아침 컨디션을 만들었다. 그래도 계속 돌아다니고 물을 많이 마시면 되겠지 해서, 리들에서 2L짜리 물과 오렌지 주스를 사서 가방에 넣고 다녔다. 막상 생선을 파는 가게 앞에 가니 '이거 먹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양양이 더치로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청어와 장어를 주문했고, 역시나 시장은 현금만 받았다.


껍질 싸악 발라서 훈제된 장어의 맛은 좋았다. 고소하고 담백하고, 비리지 않았다. "으음~" "으음"을 연발하며 입에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 온 청어의 시간. 겁 많은 언니 덕에 양양이 한 입 먼저 먹어보더니 괜찮단다. 분명 괜찮다고 했다. 위에 뿌려준 양파와 함께 씹으니 비린 맛도 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한 입. 그리고 온 얼굴의 신경을 움직이며 소리를 내뱉었다. "으으으엇" 그리고 다시 눈과 손은 장어로 향했다. 식감이 겉이 미끄덩한 느낌이고 씹으면 입 밖으로 빠져나오는 비린내가 스물스물 코로 올라 온다. 내가 속이 괜찮았다면 "내 타입이다"라면서 먹을 수는 없겠지만 두 어 점을 더 먹을 수도 있었겠다. 독일에서도 청어 통조림도 도전하지 못했었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청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날씨가 제발 개이길 기대하며,
바닷가로 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센트럴로 향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수로, 아닌 바다

 Dapper Markt에서 케밥 아저씨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예상치 못한 꾸물거리는 날씨에 주춤하면서도 끝내는 새로산, 왠지 입으면 나를 양파 자루로 만들어 줄 거 같은, 비키니를 들고 지인이랑 암스테르담 근교에 있는 바닷가로 향했다.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그 곳 <ZandVoort>까지 가는 길은 암스테르담의 센트럴에서 기차 한 번이면 충분하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으니 짧게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는 사람도 쉽게 바다를 둘러 보고 올 수 있다. 


우리는 센트럴에 가서 기차 티켓을 샀다. 15유로의 암스테르담 1일권을 사려고 했는데, 다행히 직원분이 "어디 가는데 1일 권을 사려고 하니?"하길래"ZandVoort, 여기서 가까운 바다"라고 했다. 알고보니 이곳이 안타깝게도 암스테르담과 가까운 위치이나, 행정 구역이 상이하여 1일권의 혜택을 받을 수 없기에 바닷가에 다녀오는 왕복티켓(12.80유로)을 별도로 구입해야만 했다. 기차는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있기에 오랜 기다림 없이 바로 탈 수 있었다. 나랑 양양은 바다에 가는 동안 암스테르담 기차의 나름 빠른 와이파이를 즐겼고, 나는 <에어드롭(Air drop)>이라는 애플의 신문물을 삶의 모든 것이 얼리어답터인 양양으로부터 전수받으며 황홀경에 빠졌다. 그 동안 죽어라 여행 다닐 때마다 클라우드에 사진을 올려서 폴더를 공유하거나 <카카오O>으로 스무 장씩 사진 끊어 보내기를 하던 야만인에게 이런 문명의 발달이 나타나다니. 또 그것도 모르고 여태 아이폰6을 단말기 약정 요금 2개월 남을 때까지 사용했다니. 나란 여자.




암스테르담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잔포르트(ZantVoort)> 기차역에 도착하여 역사를 나가 보이는 길목으로 5분 남짓 걸어가니 탁트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모래사장이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탁트인 전경을 선 보이기에 해변에 늘어선 수많은 리조트들도 유명하다고 양양이 덧붙였다. 인구가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마을이지만 바다를 즐기기 위해 찾는 관광객들은 수십 배가 되니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지 숙박업 및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내가 이 곳에 오기 전에 지인이 보내준 바다 사진은 맑디 맑고 푸르디 푸른 청초한 모습이었는데 오전의 날씨는 늦가을, 아니 겨울 풍경이다. 색채를 빼앗긴 잿빛의 하늘과 바다가 눈 앞에 펼쳐졌다.


키블링 탐닉

그래도 밀려 오는 바다 내음과 머릿결 흩날려 주는 미풍, 좋은 사람이 함께하니 그 나름대로의 낭만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네덜란드 음식인 <키블링(Kibbeling)>에 대한 궁금함과 바닷가에 다다르니 고소하게 코로 들어오는 냄새에 일단 이미 기분이 좋았다. 생선 튀김이라 그 바로 앞바다에서 잡은 명태나 대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기분탓인지 '생선은 바다에서 먹어야 제 맛이지'를 읊조리며, 시장에서 청어와 장어를 먹을 때에도 눈에 띄었지만 참았었다. 바다에 가까이 다가가니 키오스크가 일렬로 세 네 군데 드문드문하게 보였고, 모두 키블링을 판매하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브라이튼(Brighten)>를 여행했을 때 바닷가 모래사장에 우두커니 있는 키오스크에서 피시앤칩스를 먹은 경험이 있다. 그 때의 그 맛이 내가 영국에서 지내면서 맛 본 가장 맛있는 생선 음식이었듯이 이 곳도 그렇겠지. 


서서 먹을까 하다가 스탠딩 테이블은 모두 차 있어서 바로 옆 난간에 걸터 앉아 먹었다. 우리는 키블링과 게살튀김을 주문했다. 시각적으로도 생선튀김으로는 전혀 알아챌 수 없다. 육안으로는 분명 뼈를 발라 튀겨낸 후라이드 치킨이다. 맛은.


내가 여지껏 살면서 먹은 생선 중 가장 살이 탱글탱글했다. 튀김 옷에 간을 적절히 해 두어 소스 없이 먹어도 맛있다. 아무리 먹어도 생선 살의 비릿함은 전혀 없고 살이 쉽게 부스러지지 않아 좋다. 지인에게 이 곳이 맛이 있는 편인지를 물었을 때 "응 보통이야"라고 하니 도대체 제대로 맛있는 건 어느 정도로 맛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내가 맛있다 맛있다 좋다 좋다를 연발을 하니 다음에도 또 먹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키블링을 만날 수 없었다. 맛있는 게 너무 많았으니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내심 하늘이 개고 여름이 가기 전에 수영복 한 번 몸에 걸쳐주고 싶어졌다. 맹수같은 갈매기들의 습격을 피해 바다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시간과 장소를 즐길 수 없게 사람들이 붐비지 않고 선선한 날씨에 감사하며 바닷가를 걸었다. 날씨 탓인지 바다에 뛰어 들어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으나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다들 바닷가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따뜻한 초코멜 한 잔

딱 종아리까지 바다에 담구고 우리는 바닷가에 있는 까페와 레스토랑들 중에 <TIEN>에 들러 따뜻한 한 잔씩을 했다. TIEN은 더치로 <TEN(숫자10)>이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탁트인 야외 테이블에서 따뜻한 음료는 그 동안 찬바람 맞느라 고생했다는 위로같았다. 지인 추천으로 초코멜을 주문했다. 물론 위드 크림이다. <초코멜(CHOCOMEL)>은 초코우유 중 더치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인데 요걸 따뜻하게 데워 크림을 얹어 마시니 달긴 정말 달다.






한 번 찾으면 떠나기 싫은 마을, ZandVoort

몸을 따뜻하게 만들 때 쯤, 날이 개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마을 ZantVoort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보러 바다를 떠날 참이었는데 하늘이 파랗게 변하니 당장에라도 바다에 뛰어 들고 싶게 했다. 저녁 일정이 이미 빼곡히 차 있는 터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골목 골목을 둘러보며 네덜란드 사람들의 성향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하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조금의 익살스러운 부분이 있다. 거리를 향해 있는 창문들도 상당히 크고, 많은 집들은 내부가 훤히 보이게 해 두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사생활보다 경관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였고, 집 앞 주차를 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는 익살스러움의 극치였다. "이곳에 주차 하지 마세요, 30분도 10분도 1초도 안됩니다."


떠나기 싫은 마을 ZantVoort를 뒤로하고 역으로 돌아 왔다. 암스테르담에 이박 삼일 이상 머무르는 사람이 바다를 보고싶다고 하면 주저없이 추천해줄 수 있는 곳이다. 네덜란드라고 튤립과 풍차를 보러 가는 것도 좋지만 여행은 항상 본인이 그 곳에서 하고 싶은, 보고싶은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게 가장 후회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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