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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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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11. 2017

일 년에 두 번, 독일인이 인생을 즐기는 시간


크리스마스의 거대함

11월의 어느 오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전철(S-Bahn/에스반)을 타고 중앙역에 내린다. ‘어? 무언가 오늘이 다른 느낌인 걸?’ 역사에는 언뜻 붉은 빛깔의 색채가 평상시와 다르게 많아진 낌새이다. 내가예민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게 중앙역사로 걸어가다 보니 이곳 저곳에서 무대를 설치하고 역사 천장에 닿을 법한 커다란 트리를 실내 중앙에 설치하느라 분주한 사람들이 보인다. 약 두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를 맞을 오색 불빛과 트리, 빨간색이 돋보이는 소품들을 전시하는 독일인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면서도 즐거움을 슬쩍 내비치는 모습이다. 11월 중순 경이 되면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재미난 광경이 독일 전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무뚝뚝하고 재미없기로, 그리고 참으로 못 노는, 바로 그 독일인들이 즐기는시즌. 크리스마스이다. 일년 중에 유일하게 사람답게 즐기고 놀면서 휴가를 만끽하는 건 여름 바캉스 기간과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독일인들의 생활은 유별나면서도 신기한 경험이다. 전철역에서, 도로에서, 마트에서, 상점에서 등 어딜 가나 그들만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표현한다. 


“킴 드디어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린대요.”

“크리스마스 마켓이 뭐야?대단해?”

“나는 매일이라도 크리스마스마켓에 가서 살고 싶어요. 먹을 것도 많고 축제 같기도 하고, 도시 한 가운데 한 달간 열리는유원지 느낌이에요. 도시마다 축제 분위기도 달라서 시간 되면 다른 도시에 같이 놀러 가요.”



여김 없이 독일 생활의 알찬박씨를 물어다 주는 제비, 홍차공주가 등장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도시인 프랑크푸르트는 구시청사가 있는 뢰머 광장에서 마켓을 알리는 공연을 시작으로 한 달이 넘는 장기간의 크리스마스 여행이 시작된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하면떠오르는 거대한 볼거리는 ‘크리스마스마켓’이다. 독일어로는 아주 생소한 단어여서 나는 ‘크리스마스’를 보고 크리스마스라고 읽지 못하고 망설이다 머릿속으로 읽어댄다. 창피하지는 않았으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으레 설레는 단어를 보고도 설렘을 느끼지 못한 게 조금은 아쉽다.



<바이나흐트마크트(WeihnachtsMarkt)>가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는 독일어 표현으로 연말이면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보이는 표현이다. 크리스마스 당일인 12월 25일 전까지 각 도시의 광장마다 공식적으로 허가 받은 노점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야외 운영을 이어간다. ‘뚝딱뚝딱’ 일주일에서 십일 정도는 시내 곳곳에서 간이 가판대들을 설치하는 모습을 흔하게 보인다. 한 달이 넘는 꽤 긴 노점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전기나 수도, 가스 등의 설비를 설치하는 것도 꼼꼼한 모습을 보인다. 지나 다니는 사람들이 혹여 발에 걸려 불편하지는 않을까 수 많은 전선들에 커버를 씌운다. 비가 오기도, 눈이 오기도 하는 상황을 대비하여 방수 설비를 함께 하는 모습은, 이런설비를 한두 번 설치해 본 솜씨가 아님을 증명한다. 견고함의 독일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겨울이 한껏 가까이 온 것인지 오후 다섯 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해가 자취를 감춘다. 홍차 공주와의 약속 장소인 <하우프트바헤(HauptWache)>역에있는 갈라리아(Galaria)백화점 정문으로 향했다. 독일에 와서 독일어 공부를 두 달 만에 깨끗이 포기한 나와 달리 계속해서 어학원을 다니며 독일어에 열을 올리는 그녀는 평일에는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만날 수 있다. 역에 내려 지하계단을 걸어 올라와 바로 앞 광장으로 눈을 돌리자 마자 나는, “어?”라는 외마디 탄성만 내뱉었다. 불과 며칠 전 만에도 지나쳤던 이곳이 낯설게 느껴진다. 시야가 탁트여 있던 광장에 옹기종기 노점들이 늘어 서있다. 항상 지나치는 도로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대로인데 목조건물들이 줄지어 설치되니 꽉 찬 느낌이고 더욱 북적대는 걸로 비춰진다. 축제라는 기분이 이때부터 느껴졌나보다. 대학교 때나 학교 축제기간에나 캠퍼스에 옹기종기 간이 부스가 줄지어 설치되고, 일일 호프다 일일 주점이다 곳곳에서 북적대며 먹고 마시는 젊음의 열기를 느꼈던 거 같다. 그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며 흥분과 설렘이 범벅이 된 기분으로 얼굴 전체에 미소가 번진다.


‘이 나라 이제야 좀 재미있어지는데?’


크리스마스 마켓은 유모차를 타고 있는 어린아이부터 휠체어를 탄 노인 분들까지 남녀노소를위한 행사이다. 과연 무엇을 즐길 수 있을까.





우선 금강산도 식후경, 먹거리와 마실 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특히 평일 저녁에는수많은 직장인들도 퇴근길에 호프브로이에 들러 즐기는 맥주 한잔의 일정을 슬며시 바꾼다. 크리스마스마켓에 들러 삼삼오오 맥주 대신 <글뤼바인(Glueh Wein)>을 마신다. 와인에계피와 설탕을 넣고 함께 끓여낸 뜨거운 와인인 ‘글뤼바인’을 추운 날씨에 ‘호호’ 불어가며 즐기는 인생의 맛은 달콤하다. 한 번 마셔 본 사람은 한마음으로 겨울이 기다려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을 때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입 안 가득 메워진다. 살짝 매운 기운에 사래가들린 느낌으로 ‘콜록’ 한번을 하고야 만다. 그렇게 한 번의 ‘콜록’을 한 이후부터 나는 글뤼바인의 마법에 빠진다. 프랑스어로는 <뱅쇼Vin Chaud>, 영국에서는 <몰드와인Mulled wine>이라고도 불리는 이 묘한 마성의 주류는 보온병에 담아 겨울 내내 지니고 다녀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마실 거리뿐이겠는가. 소시지와 크레페, 팝콘, 군밤과 감자튀김 등의 풍성한 먹거리에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도 푸근해지는 축제이다. 지름이 3M쯤 되는 커다란 원형 그릴에 대여섯 명의 독일 장정들이 끊임없이 소시지와 고기를 구워댄다. 평상시에 길거리 간이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그 맛있는 소시지의 맛을 상상했다 해도 그것도 소박하다.




이곳은 십여 분을 줄 서 기다려 맛본 글뤼바인 보다 더욱 인기가 있다. 저녁 시간이 되려면 아직멀었다 싶었는데도 이미 20M쯤 되어 보이는줄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한 켠에서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것을 세 명의 아주머니가 속성으로 반을 가른빵에 넣고 있다. 소시지를 굽는 아저씨들과 빵에 소시지를 넣는 아주머니들, 그리고 주문을 받고 목청껏 메뉴 이름을 외치며 결제를 하는 젊은 직원 둘까지 철저한 분업화의 공간이다. 빠른 속도로 내 순서가 다가오니 괜스레 설렘이 더했다. ‘맛집’이라고소문난 곳에 가서 수십 분을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의 감정 이랄까. 커다란 불 판을빨간 소시지, 하얀 소시지, 야채 소시지에서 나아가 왠 두툼한고깃덩어리도 보인다. 가만히 보니 돼지 목살 쯤 되어 보인다.


“우리 저 돼지고기로 먹어보자”

언제 또 저런 걸 먹어보겠나 싶어 돼지목살 스테이크가 곁들여진 빵을 주문해본다. 한 입도 배어 먹지 않은 상황에 성급한 표현이겠지만, 내 손에 쥐어진스테이크 빵은 독일에 와서 먹어본 수많은 음식 중에 최고. 숯 향이 베인 두툼한 목살은 ‘이게 가능한가?’ 할 정도로 육즙을 머금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릴에 돼지 목살을구워 먹을 때 바게트 빵이랑 곁들여서 먹으면 분명 이 느낌이 느껴질 텐데 과연 이런 맛이 날까?




독일 크레페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군것질거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설탕 덩어리처럼 단걸 좋아하는 독일인들의 군것질 거리는 온통 ‘달달함’이다. 캐러멜이 잔뜩 묻은 팝콘과 아몬드, 축제 때 마다 목에 걸고 다니는 커다란 과자, 생강쿠키……달콤함에 유독 관대하지 못한 내 입맛에는 한 입이 마지노선이다. 그런내게도 달지만 좋은 무언 가가 하나 있으니 바로 악마의 유혹, <누뗄라(Nutella)>이다. 독일에서도 크레페(Crepe)는 국민 간식의 하나이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향에 이끌려 우리는 물 흐르듯 크레페 가게로 향했다. 한쪽벽면은 온통 거대한 누뗄라 잼 병으로 장식한, 보기만해도 달콤함이 샘 솟는 모습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 머리를 질끈 묶고 노릇노릇 크레페 반죽을 팬에 익히는 눈 빛에서 레이저를 쏘고 계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누뗄라 크레페를 주문하려고 보니. 싱그러운 붉은 열매가 눈에 띈다. 체리다. 체리와 사과 등을 절인 것을 넣은 생소한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이번에도 우리는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싱그러운 체리, 그리고 새콤한 사과 크레페를 주문해본다. 


스무 살에 처음 일본이라는 나라로 떠난 해외여행에서 크레페를 맛본 적이 있다. 화려한 색채와 생크림 듬뿍, 게다가 원하는 대로 아이스크림과 치즈케이크 등을 넣어주는 크레페의 모습이 나의 뇌리에는 이미 표준이 되어 있다. 얼마 전 파리의 길거리에서 맛본 크레페는 조금은 소박했지만 겉이 고소하고 바삭 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왠지 모를 고급스러운 향연을 선사했다. 그런 나의 눈에 들어온 체리가 듬뿍 들어간 독일의 크레페는 거대한 비주얼의 충격을 안겨준다. 크레페 아주머니는 커다란 원형 반죽을 팬에 살짝 익혀 절인체리를 가운데 얹고 네 귀퉁이를 대충 접어 일회용 접시에 ‘툭’ 담아주신다. 돌돌 말린 깜찍함도, 노릇노릇한 빵에 알록달록 과일과 초코 시럽을 듬뿍 뿌린 어여쁨도 없다. 투박함과 소박함, 그냥 독일 크레페다.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은 언제나 유모차 군단 어머니들로 붐빈다. 회전목마와 꼬마 자동차, 관람차 등의 놀이기구들이 언제 어떻게 이곳에 설치된 건지. 언뜻 보면 그럴싸한 작은 놀이동산의 모습이다. 신기한 건 유모차를 정차해 두고 걷지도 못하는 영유아들을 회전목마에 태우는 독일 부모님들의 대담함이다. 발 디딜 틈이 없이 유모차가 가득 들어선 곳에서 가만히 회전목마를 보고 있노라면 독일 아버지들의 자상함에도 또한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190cm가 족히 넘어 보이는 아버지가 한 손에 잡히는 어린 아이를 목마에 태우고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건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그림이다.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려있는 동안 이곳의 매일매일은 축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순간을 즐긴다. 평상시에 밋밋한 모습의 독일인들도 입가에 미소가 생기고 거리를 거니는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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