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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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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12. 2017

무임승차의 말로




빈곤해도정직해야 한다

 독일에서 머무르면서 생활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월세와 교통비이다. 도시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머물렀던 프랑프푸르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충전해서 사용하는 교통카드 따위는 없다. 필요할 때마다 매번 티켓을 구입하든가 기간을 정하여 하루, 일주일, 한 달 등의 정기권을 구입하여 지하철과 버스, 트램 등을 이용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곳은 개찰구도 없다. 버스나 지하철에 티켓을 넣거나 확인하는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교통티켓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돈이 우스운 사람이 아니라면 매우 달콤한 악마의 유혹이 생기는 게 보통이다. ‘교통비를 지불하지 않고 무임승차를 해도 괜찮지 않아?’

뢰머광장 뒷 골목 @프랑크푸르트



독일에 오기 전까지는 내가 굉장히 보수적이고 정직하고 공중도덕과 법규에 순종하는 사람이라고확신하곤 했다.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고 길에서 고성방가를 하거나 대중교통에서 큰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고 소리 내어 질겅질겅 껌을 씹어대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눈이 찢어져라 째려보기도 한다. 그런 나도 어쩔수 없나 보다 싶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교통카드에 금액을 충전해서 다녔기에 교통비에 상당히 철저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후불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라는 녀석을 만나면서 ‘띡’하고 쉽게 빠져 나가는 몇 천원의 존재에 무뎌져 버렸나 보다. 그러다가 막상 독일에서 일일이 교통티켓을 구입하려 하니 불편함과 귀찮음, 게다가 ‘아까움’이라는 감정까지 복받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울까.


‘전철이 왔는데 티켓을 사다가 놓칠 거 같아.’
‘잔돈이 없어서 자판기에서 구매할 수 없어.’
‘오늘은 티켓이 없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나의 안일한 생각은 점점 대담해졌다.

죄책감도 없고 걱정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몹쓸 행동에 익숙해져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게 어떤 잘못이 있는지에 대해 무던해지는 상황은 곧 종지부를 찍었다. 어느날 플랏 매이트인 홍차 공주와 함께 쇼핑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디어. 그날따라 왜인지 모르게 편도 티켓도 아니요, 한 달짜리 정기권을 구입하자는 얘기를 둘이 나누고는 발권기 앞으로 갔다. 유독 우리가 기다렸던 기계에서 신용카드 결제도 되지 않았고, 가지고 있는 지폐를 결제하려 수십 번을 집어 넣어도 기계에서는 인식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가 지났을까.주말이라 지하철(S-Bahn)이 한 시간에 한 번 정도인데 마침 우리가 타야 하는 지하철이 역에 도착했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안되겠다’ ‘티켓은 내일 사자’라고 홍차 공주와 눈빛으로 말한 뒤 얼른 뛰어 내려가 우리는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잠시 후 열차가 출발한다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철컥’


짧은 정적과 함께 목 뒤부터 등으로 무언가 ‘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고 나는 ‘철렁’했다. 티켓을 검사하는 지하철 보안관들 4명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아닌가. 티켓을 보여달라는 의미의 <파-카르테(Fahr Karte)>를 외치고는 승객들의 티켓들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 뒤의 내용은 더 이상 나열하지 않아도 훤히 보이는 이야기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행동의 대가는 벌금 40유로였다. 적발이 된 그 곳에서 바로 벌금을 지불하고 가고 있는 목적지까지의 편도 티켓을 즉석에서 발급 받았다. 현금이 없다면 현금을 인출하러 가는 길까지 보안관들이 동행한다. 투박하고 섬세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의 중년의 보안관들, 그들의 눈빛이 매섭고 행동이 잽싸다는 건 눈 앞에서 나와 홍차 공주의 현금 80유로를 고스란히 챙겨 간 뒤에야 파악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 <무임승차>는 <SCHWARZ(슈바르츠)>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대중 교통을 무임승차하는 게 적발될 경우의 벌금은 40~60유로이다. (※2016년 3월 기준 60유로) 게다가 외국인의 경우 양심에 대한 기회는 오로지 삼 세 번 주어진다. 양심 없는 무임승차가 세 번이면, 외국인의 경우 독일에서 추방된다. 세 번째로 적발된 순간부터 경찰관을 대동하여 숙소로 가서 짐을 싸고, 24시간 이내에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외국인의 최후를 겪고 싶지 않다면 양심을 믿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규율에 더욱 철저한 나라가 독일이다. 규칙이나 질서가 없는 분야는 존재하지도 않고 막상 정해진 틀이 없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건 독일인에게 혼란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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