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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23. 2017

나 홀로 동독



나홀로 동독


동독에 가 봐야겠어!


교과서에서, 그리고 종종 교양 TV프로그램에서나 들리던 동독과 서독이라는 표현은 독일에 와서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 답할 때도 단지 도시만을 말할 뿐이다. 그래도 암암리에 서로 ‘아 동독이군.’‘아 서독 깍쟁이이군’ 등의 눈치만 챌 정도이다.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완벽한 독일이 된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경제적 빈부차이는 쉽게 수그러지지 않았고 지역주의나 정치적 성향, 문화의 차이는 없다고 하면 삼척동자도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로 눈에 띈다. 부유하고 풍요로운 서독과 빈곤하고 암울한 느낌의 동독이라는 얄팍한 지식은 중요하지 않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그 언저리의 여유 있고 맑은 느낌의 도시들만을 보고 있자니 이게 독일? 이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나도 모르게 베를린으로 향하는 열차를 예매했다. 몇 번 여행을 다녀보니 이제는 독일 국영철도 <DB(도이치반)> 홈페이지에서 열차 티켓을 구매하는 속도가올라 5분이면 충분하다.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누구랑 가지? 언제가지? 며칠을 어느 도시에 머물지? 등의 불필요한 고민과 생각은 고이 접어두고 무작정 가는 티켓과 첫날 도착하여 머무는 호스텔을 예매했다. 어느 도시에서도 몇시간 만에도 돌아올 수 있는 게 독일이라는 생각에 넉넉잡고 닷새에서 일주일을 생각하고 돌아오는 티켓은 구매하지 않았다. 베를린까지 특급철도인 ICE를 타지 않고 보통의 열차로 환승을 하며가는 시간은 약 여섯 시간 남짓.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랑스 파리로 특급철도를 타면 3시간이면 도착하는데.' 이런 생각으로 나는 꽤나 자주 파리를 오고 가곤 했다. 마치 옆 동네 마실 나가듯이. <파리>의 도시 매력에 한 번 홀린 적이 있다면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테다. 교통비가 저렴해지는 기간의 특가 요금을 이용하면 6만원 정도에 독일에서 파리를 떼제베(TGV)를 타고 다녀올 수 있으니 안 갈 이유를 찾는 게 힘들다.

 

알찬 여행을 위해 나는 언제나 이른 시각의 열차를 이용했다. 베를린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휴대폰을 충전하겠다고 생각하고 충전을 해두지 않은 터라 가방에 손을 넣고 뒤적여봤다.


“응?”

“어라?”


없다. 

이런.

충전에 필요한 연결 선을 아무래도 집에 두고 나온 모양이다. 아이폰이 없는 여행을 나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진을 찍고 지도를 찾아보고 급하게 연락이 오는 걸 확인하고 메일을 체크하고. 여행을 떠나긴 해도 일상을 놓지 않는 나는 진정한 욕심쟁이인가 보다. 가는 길에 열차를 환승을 하는 곳은 총 2곳. 그 곳에서 시간적 여유가 있는 곳은 단 한 곳. 운명에 맡겨보기로 했다. 


열차들이 지나치는 곳은 대부분이 도시의 중앙역이기에 역사 근처는 상점가가 발달해 있다. 운이 좋으면 가전마트가 보일테고 뛰어 들어가 충전 <차저(Charger)>를구입하고 무조건 중앙역으로 뜀박질 하기로 마음을 잡아봤다. 운이 좋게도 <카셀역>에 도착하여 역사 밖으로 뛰어 나가보니 바로 눈앞에 ‘떡’하니 <미디어마크트(Media Markt, 독일 가전 마트)> 간판이 보인다. 15유로 남짓 하는 충전용 케이블을 구입해서 안도감과 조급함이 뒤엉킨 채 다음 열차를 타기 위해 멈추지 않고 뜀박질을 해댔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

그리고 세 시간쯤 뒤에야 드디어 도착한 베를린이다. 1991년부터 독일의 수도이자 내가 머물고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다섯 배가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독일 내 단일 규모로는 인구 최대의 도시인 베를린 땅을 밟다니. 세계적인 패션의 도시로 뉴욕과 파리, 런던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 베를린이라는 환상과 설렘도 잠시. 거대한 키와 곱슬머리, 높은 코의 독일인과 패션에 극도로 민감한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했던 나는 ‘이게 베를린이야?’라는 한숨과 함께 안정을 되찾는다. 베를린 역시터키나 중동 지역의 외국인 이민층이 두텁고 인구의 15%이 외국인일 정도이니 내 머릿속의 독일이미지는이곳도 아닌 걸로. 게다가 베를린 중앙역과 관광 명소들에서는 제대로 된 정통 <베를리너(Berliner)>를 만나지 못한 건지 몰라도 패션과는 관계 없어 보이는 사람들뿐이다.

 

상상과 다른 현실에 마주치며 실망도 즐거움도 설렘도 느끼는 게 여행이 주는 엄청난 가치가 아닐까. 얕은 식견과 내가 만들어 놓은 상상은 보란 듯이 여행을 하면서 더욱 단단하고 커진다. 12월의 중순이라 아직도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리고 있는 건 행운이다. 동독의 크리스마스마켓들도 둘러볼 수 있다니. 스타벅스의 시티 머그 수집가로서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 머그수집가로 도약한 나에게는 이런 기회도 어찌나 반가운지. 급하게 결정한 혼자 여행에서 며칠을 혼자 돌아다니고 마시고 즐기기도 좋지만 혼자 여행을 즐기는 나에게 결정적인 약점은 혼자 먹기의 서투름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국인 유럽 여행객들의 커뮤니티인 네이버 카페 <유랑>에서 베를린에 있는 사람들을 검색했다. 역시나 있다. 같이 저녁을 먹자는 사람들의 글에 댓글을 달고 얼마 안되어 어떤 이와 연락이 닿았고 나는 그렇게 네 명의 사람들을 만나 함께 포츠담 광장으로 향했다. 모두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처음 만난 사이여서 그런지 서먹할 수도있지만 여행길에 서로의 여행이야기와 유용한 정보들을 공유하며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진다.

 



서울 시청 앞에 눈썰매와 스노우보드를 위한 인조 슬라이딩을 설치해두는 것과 흡사한 설비가 설치되어 있고, 역시 하얀 천막의 거대한 크리스마스마켓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일행 중 한 친구가 한국에서 인턴십을 하며 알게 되었다는 독일 친구를 함께 만나자며 베를린의 어느 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티나(Tina)라는 스무 살이 조금 넘은 독일친구는 이화여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며 스스럼없이 구사했다. 독일 여대생도 하물며 “어, 나도 인정해. 독일 남자들은 정말 옷을 못 입어.”라고 하니 한층 더 가까워진다. 베를린 사람들이 주로 먹는다는 메뉴를 추천하고 베를린 지역의 맥주를 주문하고. 그녀라는 존재 덕분에 우리는조금이나마 독일이 아닌, 베를린에 다가갈 수 있었다.



     

사흘간을 베를린에 머물며 나는 지도 한 장을 들고 골목 골목을 거닐었다. 파리에서도 들러보지 않은 라빠예뜨 백화점도 들렀고 훈내 풍기는 대학생들을 기대하였으나 기대에 반도 미치지 못한 훔볼트(HUMBOLDT)대학교에도 기웃거려 보았다. 사흘 내내 맑은 날씨는 만날 수 없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 흩뿌리거나 온갖 우울함은 모두 챙기고 있다는 듯한 퉁명스러운 날씨가 계속 되며 나에게 베를린은 고약한 독일 할아버지 느낌이다. 

 


숨은 매력, 라이프치히

왕년의 동독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인 라이프치히(Leipzig)로향한다. 열차를 타고 두 시간도 채 가지 않아 라이프치히 중앙역에 도착하니 그 화려함과 웅장함은 분명 왕년의 풍족함을 간직한 듯 하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독일의 홍길동 같은 괴테의 존재는 라이프치히에서도여실히 느껴진다. 파우스트라는 대작을 완성한 이 곳에는 괴테가 자주 들렀던 식당과 까페들이 즐비하고, 매들러 파사주 안에는 파우스트의 한 장면이 동상으로 전시되어 있어 이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현자가 되기 위해 파우스트 동상의 발을 문질러 댄다. 그 덕에 오직 그의 구두만 반질반질하다.


베를린에서 부족했던 훈내 나는 젊은 대학생들의 눈요기는 라이프치히에서 매워졌다. 거대한 캠퍼스 주변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넘쳐나니 좋지 않은 날씨에도 도시의 일기예보는 항상 맑음이다. 오죽하면 학생이 절반이라는 이 도시의 세수는 항상 부족하지만, 그만큼 대학교의 학구열과 교육의 질은 충분히 높다. 독일의 대학교는 대부분이 등록금이 없고 대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국가 차원의 혜택이 많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지방정부에게는 적지 않는 비용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알 수 없는 투자이다. 젊은 자원을 갈고 닦아서 활용하는 독일의 교육 모습이야 말로 사화생활도 하기 전에 갚지 못한 등록금 대출로 인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취업을 위해 연애고 대인관계고 포기한다는 ‘오포세대’라는 우리의 청춘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나는 물론 이곳에서도 크리스마스마켓을 원 없이 즐겨봤다. 당일치기로 반나절만 있어보려던 이 라이프치히라는 도시의 매력. 뭔지 몰라도 나를 이틀이나 더 머물게 만들었다. 급하게 하룻밤을 묶을 호스텔을 예약하고 그 곳에서 만난 일본인 배낭 여행객과 금새 마음이 통해 함께 크리스마스마켓을 즐겼다. 또 근처에 살고 있는 나의 지인을 동반하여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동안 떨어졌던 지인들을 오래간 만에 마주하는 것도 내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여행은 인생과 같다. 애초에 계획과 달리 단 두 도시에 머물렀고 처음의 상상과 기대와 전혀 다른 독일을 맛본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함과 상상은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에 분명하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영수증을 정리한다. 안 쓴다 안 쓴다 하고도 영수증은 이상하게도 매번 작은 책자 만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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