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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24. 2017

독일로봇과 댄스 댄스



독일로봇과 댄스 댄스

오랜만에 한국 청년들끼리 모임이 있는 날. 독일에 처음 와서 닷새 만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 중에 여덟 명 정도가 불타는 밤을 보내 보기로 갑작스러운 모임에 동참했다. 어김 없이 우리의 접선 장소는 하우프트바헤(Hauptwache)역 앞에 있는 갤러리아 백화점 정문이다. 오늘의 모임을 주선한 한국 청년은 이미 독일에서 꽤 많은 클럽을 다니며 밤 문화를 열정적으로 즐기고 있다고 귀띔한다. 클럽이라……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특히 1학년과 2학년 때에 학교와 클럽, 그리고 집을 삼각지대로 설정하고 스물 네 시간을 정말 바쁘게 보냈던 나로서는 이제는 어색한 모습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세상에 힙합부터 테크노, 하우스, 셔플 등의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클럽 트랜드를 십여 년을 함께 해오니 유흥에 소비할 체력은 이미 바닥이다. 그래도 독일에서 클럽이라니. 정말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것 같아 보이는 이 독일인들의 클럽 문화는 대체 어떨지 궁금하긴 꽤나 궁금했다.


12시가 넘어야 문을 여는 클럽에 가기 위해 사람들은 집이나 펍에서 미리 술을 마시며 모여 있다. @작센하우젠, 프랑크푸르트



먼저 펍에서 <라들러: Radler(레모네이드나 소다수를 라거 맥주에 섞은 음료)>와 맥주를 한 잔 씩 하면서 그 동안의 각자의 에피소드를 너나 할 거 없이 펼쳐 놓는다. 회사 상사가 어쨌다, 남자친구가 어쨌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어쨌다 등등의 너무나도 흔한 우리의 일상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어디서 흘러와 들린 이야기인지 모르는 뜬구름 잡는 얘기에 엉덩이를 들썩이며 다음 만남의 약속을 잡았다. 12월의 마지막 날,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새해를 여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거대한 불꽃 축제가 진행될 거라나.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고 머리 위로 조용히 빨갛고 노란 불꽃들이 수 놓인다. 일정을 서로 맞춰보고 여섯 명이 차량 한대를 렌트하여 파리로 연말 카운트다운을 하러 가기로 깔끔하게 약속을 잡았다. 기다려라 에펠탑아.


열한 시가 조금 지나 였을까. 이제는 우리가 움직일 때 인가. 이미 독일. 그것도 프랑크푸르트에서 클러빙을 즐긴다는 청년의 언급으로는 가볼 만한 곳은 대략 세 곳 정도로 간추려진단다. 그리고 그 중 연령대와 옷차림, 흘러 나오는 노래, 분위기 등을 고려했단다. 그러나 하나 재미난 건 클럽은 자정부터 입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새벽 다섯 시면 클럽은 문을 닫을 준비를 한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하냐고 물으니 보통은 펍이나 집에서 맥주를 즐기거나 아예 강한 술을 마신단다. 또는 아예 누군가의 집에서 한차례 흠뻑 취할 정도로놀고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클럽을 찾는다나 뭐래나.

 

클러버 청년의 인도 하에 새카만 양복을 차려 입은 거구의 아저씨 두 분이 버티고 있는 클럽 입구로 가서 신분증이라고 여권을 내 보이고 들어온다. 아차, 여권이 필요한 줄 몰랐다고 말하는 일행 중 한 명은 결국 자정까지 모든 트램과 버스가 종료 되기만을 기다렸다가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돌아갔다는 에피소드를 또 하나 만들었다. 클럽은 대부분이 10유로의 입장료를 내면 무료 음료가 하나 제공된다. 한국과 유사하게도 가방과 옷을 맡기는 데 1유로를 지불하고 한층 몸을 가볍게 한 뒤 뿔뿔이 흩어졌다. 





어디 한 번 놀아볼까?


두 층으로 나뉘어진 곳에 커다란 스테이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다들 가장자리에 서서 쭈뼛쭈뼛 하고 있다. 음악을 즐기는 건지, 클럽에서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밀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얼마의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독일인들의 모습이 ‘역시 독일’이라는 생각만 들게 한다. 심지어 세 곡 정도의 노래가 흘러 나온것 같은데 도대체 이런 선곡은 누가 하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왠걸. 디제잉을 하는 디제이가 있다. 없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 층마다 있는 주크박스에는 각각 두 명씩의 디제이가 자리를 꿰차고 있다. 꽤나 음악에 심취한 듯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드는 모양이 아무래도 눈을 감고 있어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선곡의 실망감에 홀로 물 흐르듯 클럽 안을 돌아다니는 중에 빛나와 눈이 마주쳤다. 독일로 어학연수를 온 대학생이자 깡 있고 잘 웃는 모습이 쾌활한 부산 여성인 빛나도 몸이 근질근질 한 모습이다.


“우리끼리라도 어디 놀아 볼까?”

“음악이 왜 이래? 너무해”

“음악 따위는 무시해”


동양인 여자 둘이 쭈뼛한 독일 나무들 사이를 헤집기 시작했다. 힙합이고 테크노고 그런 건 없다. 단지 한국스타일이다. 격정적인 몸부림으로 신나게 몸을 흔들다 보니 그 동안의 근심이나 시름이 나름 온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엔도르핀이 돌기 시작하니 우리는 더욱 과감해졌다. 무대 위로 올라 디제이 옆에서 보란 듯이 더욱 신나게 몸을 흔든다. 노래도 박자도 무시한 채 두어 달 미뤄둔 전신 운동을 해 댄다. 어느새 수많은 시선이 느껴진다. ‘어떻게 저렇게 박자를 무시하고 춤을 출 수 있지?’ ‘아니 저게 춤이야?’ 등의 느낌일 수도 있으나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즐거우면 되는 거니까.


한참을 즐기고 보니 드디어 독일나무 숲에 바람이 분다. 슬슬 제동이 거는 독일인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 친구들 그런데, 같은 댄스학원에서 의무감으로 춤을 배운 걸까. 하나같이 춤추는 모양새가 로봇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게 독일인의 춤사위인 건지 지금의 트렌드가 로봇느낌인 건지 알수 없으나 내가 같이 춤을 춘 독일인들은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의 댄싱 로봇뿐이다.


다섯 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클럽을 나왔다. 새벽 공기가 매서운 건 한국이나 매한가지다. 독일 클럽은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만 즐기는 것으로 오늘의 클러빙을 함께 한 일행들끼리 입을 모았다. 역시 이곳에서도 클러버들의 새벽을 함께 하는, 24시간 영업의 성지 맥도널드에는 클럽을 나와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야밤에는 버스와 트램 등의 대중교통은 모두 운행이 종료되고 첫차는 보통 새벽 여섯 시쯤부터 이용이 가능하다. 따끈한 어묵 국물이나 새빨갛게 매콤한 떡볶이가 오랜만에 사무치게 간절해 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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