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주 Apr 24. 2017

옥상일기. 키우는 즐거움

텃밭 가꾸기




지금 나의 초미의 관심사는 단연 <텃밭>이다.

 

하얗고 네모난 간이 텃밭을 온라인으로 구입했고, 조립하여 씨를뿌렸다.

내 손을 씨를 뿌려서 싹을 틔우고 생명을 길러낸다는 건 이십 년도 훌쩍 지난 아주 옛날, 해본 기억이 어렴풋할 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목화 씨를 나눠주었다. 집에서 직접 목화를 심고 재배하여 학교에 가져가 병충해 없이 튼튼하고 실하게 목화를 기른 학생에게는 <목화경진대회>라는 명목으로 상장을 수여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 게, 그때는 왜 그리 <입선>이라도 상장을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각 학년의 선생님들이 학생의 이름을 가린 채 채점을 하고 상을 받는 화분에는 리본을 달아 두었다. 심사가 끝났다고 선생님이 알려주면, 그제서야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뛰어 나가 화단에 있는 자신들의 화분을 찾아 두리번댔다. 리본이 걸려있기를 항상 바래왔고 단 한번, 기어코 나는 3학년 때 입선을 했다. 그 상장은 어디 있는지 종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상을 받았다는 기쁨의 기억은 또렷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내가 다시 식물을 기르기로 한 건 여러 이유가 뒤따른다.

앞 마당이라고 해야 할까? 혼자 지내기에는 충분히 넓은 마당은 어떻게해서든 활용해 보고 싶다는 욕구를 샘솟게 했다. 여백의 미와는 인연이 없는 나이기에 그러했다.


이어 따스한 햇살이 내가 이곳에 텃밭을 만든 두 번째 이유이다. 옥탑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은 원 없이 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도 자주 하늘을 올려다 보는습관이 있지만, 눈 앞에 무언가 막힌 것이 없이 먼 곳까지 수평으로 뻗어나간 하늘을 볼 수 있어 마음에답답함이 사라지는 기분은 말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없다. 탁 트인 하늘에서 맑은 날이면 온 집안에 볕이 들어 따사로운 온기가 감돈다.


게다가 3월부터 모종을 구입해서 기르기 시작한 허브들이 신경 써서 물을 주고 바람이 통하게 해주니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주니 마음의 여유와 위안을 느끼게 되었다. 식물이주는 온기와 위로에 매료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의식적으로 야채를 챙겨 먹기로 했기에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것들을 기르기로 했다. 한 번은 스페인 친구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볕이 좋은 어느오후에 정원에서 친구네 가족과 함께 내가 먹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해 주신 빠에야를 먹게 되었는데, 라임이 부족하자 친구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정원을 걸어 한 켠에 있는 라임 나무에서 라임을 따서 가지고 오셨다. 신선하고 건강한 밥상, 또 가족을 위해 식물을 기르고 집안 곳곳을 손 때 묻혀가며 가꾸는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나는 <이보다더 행복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은 4월 24일, 텃밭을 만들고 씨를 뿌린지 6일이 지났다. 닷새만인 어제 텃밭이 초록빛으로 물들어진 아리송한 꿈을 꾸고 일어나 마당에 나가보니 드디어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깨알 같은 싹들이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냈다. 설렘과 환호, 혹시나 싹이 트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마음까지 동시에 교차되며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 일어나자마자 물을 끓이고 커피 원두를 갈아 핸드 드립을한 커피를 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 하늘을 보며 커피를 마시던 나의 아침이 바뀌었다. 일어나자마자 텃밭에새싹들을 보러 달려나갔다. 하루하루 잎이 자라고 키가 크는 모습을 보는 걸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아이를 키우고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것과 같은 마음이겠지? 가족도 반려동물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내게, 항상 보살피고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를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나의모습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D+6 여린 몸으로 강한 흙더미의 무게를 이기고 세상 빛을 본 새싹이 대견하고 예쁘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시작하며. 옥상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