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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26. 2017

에펠탑에서 새해를




에펠탑과새해를
에펠탑 앞에서 커다란 불꽃놀이가 있다


시발점이 어디였는지도 모르는 유언비어로 인하여, 독일에 오자마자 온라인 카페 모임을 통해 알게 된 한국인 여섯 명은 한 해의 마지막을 파리에서 지새우기로 했다. 일행 중에 한 명이 회사 차를 빌려 직접 운전을 해서 가기로 하니 1인당 50유로(6만2천원)의 회비를 걷었고 새까만 하늘에 은은하게 빛나는 에펠탑과 그 주위를 수 놓을 찬란하고 화려한 불꽃들을 상상하며 모두가 머리 속에 각자의 낭만을 그려봤다. 혹시 알아? 낭만적인 순간에 내 인생의 반쪽을 찾을지.


밀레니엄 시대가 오고 역시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모르는 소문이 젊은 여성들에 귀에 안착한 적이 있다. 한 해가 시작될 때 동양 여성과 키스를 하면 그 1년이 잘 풀린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프랑스 남성들에게 퍼졌고 나 역시 그 동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 프랑스로 떠나자며 친구들과 우스개 소리를 꺼낸 적이 엊그제 같은데 내가 정말 그 순간에 프랑스에 있을 거라니. 시사이자 다큐멘터리만 같던 내 삶이 해피앤딩만 존재한다는 동화로 변할 수 있을까 하는 반문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컸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을 받지 않고 기본적인 시속이 120km/h는 되는 독일의 고속도로를 아침부터 달려 두 번의 휴게소를 들렸고 한국인 남자 셋과 여자 셋을 태운 차량은 프랑스에 진입했다.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톨게이트는 프랑스의 인상을 돈만 밝히는 늙은 노인처럼 만들었고 독일 번호판을 단 차량에 야박하게 고함을 지르고 클랙션을 울려대는 프랑스 차들은 불과 다섯 시간 전까지만 해도 ‘로맨틱 파리’를 상상하며 핑크 빛 미소를 짓던 내게 이 곳도 그저 현실임을 깨워주기 바빴다.

안녕, 나의 파리

­우리가 파리에 도착한 건 점심 시간이 살짝 지난 오후였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통에 <유로마켓(1유로의 저렴한 제품들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싸구려 우산을 사야 하나를 잠시나마 고민하게 만들었다. 에펠탑이 보이는 한 켠에 주차장을 몇 번을 돌아 운이 좋게 차 안에서도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밤 중까지열 시간 정도가 남았다. 파리에서 상상 속의 로맨스를 기약하며 나와 다른 여자 둘은 한국 남자 셋을 버려두다시피 뒤로 한 채 세느강으로 발길을 향했다.


파리에 있는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추억의 쌀국수를 맛보고, 에펠탑 앞에서 불꽃을 감상하며 로맨틱하게 한 해를 시작하려던 이번 여행의 세 가지는 애석하게도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여름 회사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찾았던 파리에서 만났던 동갑내기 한국인 요리사와의 만남을 기대했다. 무심하고 같이 있으면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이 조용한 통에 끊임 없이 말을 쏟아내게 하는 인연임에도 그 여름날 나만이 느꼈을 파리에서의 특별한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기에, 나의 낭만의 한 장면에 들어오도록 초대했다. 그 때와 같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는 친구는 가게가 끝나는 대로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고 했지만 믿을 수 없게도 프랑스에 도착해서부터 나의 휴대폰은 먹통이다. 



분명 이곳에 오기 전에 무언가 나쁜 조짐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저분하게 추적대는 얄궂은 비와 먹통인 휴대폰이라니. 혹시 모른다며 한국에서 가져온 유심에 데이터 로밍까지 했지만 작동이 되지 않는다. 파리에서 유일하게 무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내가 알고 있는 맥도널드 매장에 들어가 연락을 시도 해보지만 한창 일을 하고 있을 시간에 연락이 닿는 건 바랄 수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이나 타운의 끄트머리에 있는 베트남 쌀국수집 <포14(Pho14)>은 마침 내부 수리 중이어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진국의 쌀국수를 맛볼 수 없었고 옆 가게인 <포13(Pho13)>에서 비슷한 맛을 내는 쌀국수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자정까지는 시간이 아직 여유롭다며 파리의 야경을 느낄 수 있는 불빛들을 따라 거닐었다. 박물관이 문을 닫고 어둠이 내리면 은은한 불빛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는 루브르 박물관과 샹제리제 거리, 세느강변을 따라 차갑지만 개운한 밤 공기를 마시며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즐겼다. 작년 이맘 때 쯤에는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 한 해를 마감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상상이나 했을까. 시원한 공기와 야경에도 만족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내는 내 모습이 지금은 익숙하지만 예전의 나로서는 좀처럼 그려지지가 않는다.











불꽃의 전말

오후 열 시가 넘어가니 하나 둘 불꽃이 수 놓이기 시작했으나 정식으로 성대하게 피어나는 모습이라기에 초라하다. 열 한시가 되고 열 한시 반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불꽃의 화려함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펠탑 근처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독일에서부터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6시간을 차를 타고 건너온 우리들과 함께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누군가는 형형색색의 불꽃을 기다리고 또 누군가는 한 해의 카운트 다운을 기다릴 테다. 올 해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며 이야기를 쏟아내면서도 내심 피어 오르지 않는 불꽃이 마음에 걸리더니 결국 “십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해피 뉴이어”라는 탄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불꽃에 그만 "뭐야"라고 탄식을 뱉어냈다. 

주변을 가만히 살피니 대부분이 가족과 연인으로 보이는 무리들이어서 이 곳에서 한 때 작게나마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없음을 빠르게 깨달았다. 화려한 불꽃도, 또 낭만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에펠탑 아래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고 나니 배고픔이 밀려왔다. 배가 고픈 건지 마음이 허한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근처에 자정이 넘게 영업을 하고 있는 단 하나의 식당, 중국 식당에서 포장해 온 메뉴에 저렴한 와인 한 병을 일회용 컵에 따라 나눠 마시니 오늘의 아쉬움이 금세 사라졌다. 사그라지지 않는 에펠탑의 노란 불 빛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는 차 안에서 누가 먼저라 할 거 없이잠이 들었다.



다섯 시간이 조금 더 걸려 독일로 돌아왔다. 언제부터 였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여행에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는 것 만으로도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함이 느껴진다. 이곳에 머문지 삼개월이 흘렀고 그러면서 나도 나의 생활도 프랑크푸르트란 도시에 자연스레 스며들기 시작한 느낌이다. 무박2일로 파리에 다녀온 일행들과 함께 증권거래소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짧지만 너무나 피곤했던 여정을 마무리 했다.


독일에 돌아 오니 이제야 살아난 내 휴대폰에는 파리에서 인연이 닿지 않았던 친구의 메시지가 빼곡하다. 애초부터 불꽃놀이는 존재하지 않았고 프랑스 사람들은 연말에 집에서 나오지를 않는 게 보통인데, 내가 불꽃을 보러 파리에 간다는 연락을 했던 것이 꽤나 의아했다고. 친구는 덧붙였다. 어쩐지, 그렇게 북적이던 사람들 속에 동양인과 중동 사람들만 있는 느낌을 받았던 게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니. 늦게라도 알았으니 다음 번에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읊조린다. 


그런데,

다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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