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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Apr 26. 2017

나의 스페인 친구 1호




뛰는놈 위에 나는 놈


독일에서 영어를 제 모국어이듯 말하는 독일인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몇 개월을 이곳에서 살아 보며 독일인 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에서 세 가지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우리 또래의 젊은이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럽은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에서 어학에 대한 수업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고등학교까지 보통의 학교에서 수학을 할 경우에 적어도 두 세 언어가 가능하다. 나도 분명 한국에서 초등학교 6년, 중, 고교 생활의 3년씩. 총 12년의 교육을 통해 모국어인 한국어, 그리고 영어, 제2외국어로 고등학교 때 스리 슬쩍 배우고 넘긴 일본어까지 세 가지 언어를 배웠다. 교육이야 말로 한국이 뒤쳐진 것이 전혀 없는 동일하게 주어진 혜택이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왜, 학교에서 배운 언어를 가지고 외국인과 십 분 이상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일까. 이게 나만의 문제인 건가.

 

독일에 와서 초반 두 달 정도 였을까? 나의 화두는 독일어를 마스터 하는 것이었다. <마스터(Master)>라는 표현이 우습지만 ‘아, 너 독일어 초급이구나.’라는 딱지를 떼고 싶었다. 해외 생활에서 현지 언어에 대한 수준을 높이면 그만큼 구직과 생활에서의 어려움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나는 간절했다. 얼마 다니지 않아 깨끗하게 포기한 독일어를 학습하던 어학원에서 <탄뎀(Tandem)> 친구를 찾는 게시판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던 게 생각이 났다. ‘탄뎀’은 소위 <랭귀지 익스체인지(Language Exchange)>라는 언어교환학습 프로그램으로 독일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언어를 학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학습법이다. 자신들의 연락처와 관심이 있는 언어, 그리고 본인이 배우고 싶은 언어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여 상황이 맞는 친구와 함께 언어 역량을 교환하는 프로그램은 나에게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다가왔다.


독일에서의 인연으로 나의 첫 번째 스페인 친구가 된 가리는 이듬해 서울을 찾았다. @서울, 대한민국 


독일에서 일본어 학습하는 남녀

분명 내가 당장 급하게 필요한 건 독일어였다. 머리 속에서 외쳐대는 말과 가슴이 시키는 말이 다른 적이 있어 본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이해할 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에게는 일본어와 영어가 더욱 급했다. 독학, 그리고 직장에서 또는 취미 생활에서 학습한 일본어와 영어는 내게 모국어가 아닌 이상 꾸준히 반복하지 않으면 잊혀지는 제3 외국어였다. 겉으로는 ‘독일어가 필요해’라고 떠들어댔지만 정작 새롭지 않아도 기존에 할 수 있던 일본어와 영어의 꾸준한 반복 학습이 내게는 구미가 당기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독일판 포털 사이트에서 일본어와 독일어를 교환하는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놀랍게도 이미 공식적으로 정부에서 주관하는 독일어와 일본어의 언어 교류를 지원하는 사이트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이 유럽인들 사이에 높아졌음을 TV나 언론 매체로 접한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공식적인 홈페이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 나아가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유럽인들에게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듯 했다. 침소봉대인가. 


그래도 예전에는 해외에 나가면 만나는 현지 서양인들의 눈과 머리에 ‘한국인’의 존재는 없었다. 한국 사람들을 보고도 옷차림과 생김새를 가지고‘중국인’과 ‘일본인의 이원화 속에 한국인을 가둬버리곤 했다. 내가 브라질에 있을 당시, 이미 십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내가 시간을 들여 예쁜 옷을 갖춰 입고 밖을 나서면 곳곳에 있는 부랑자들이나 어린이들이 일본인이라고 놀려댔다. 반면에 세수도하지 않은 채(종종 세수조차 하기 싫은 날이 있다)집 앞에 있는 마트에 갈 때면 간편한 트레이닝 복에 슬리퍼를 착용했다. 그럴 때는 나를 일본인이라 놀려대던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아니면 그 동안 사람이 아닌 겉모습으로만 동양인을 판단한 건지 몰라도 내게 중국인이라며 손가락질을 하며 놀려댔다. 웃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경험이다.


나의 첫 번째 스페인 친구

탄뎀 홈페이지에 나는 내 개인 정보와 인사말을 남겨두었다.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 포르투갈어로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해 두었고 책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회화를 위주로 어학 연습을 하고 싶다고 했다. 프로필이 남겨져 있는 사람들 중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나 역시 몇 건의 메시지를 받았다. 독일에서 일본인이 될 정도로 일본어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하여 한 명의 친구와 연락을 이어갔고 연말이 지난 어느 저녁에 시내에서 처음 만남을 갖게 됐다. 



스페인 청년은 짬뽕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의 신세계를 처음 경험했다. @프랑크푸르트, 독일

곱슬 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180cm 후반의 키에 호리호리한 청년이 내 앞에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가리(Gari)였다. 대뜸 나를 보자마자 일본어로 대화를 시작한 가리와 나는 처음이라 그런지 이어나갈 대화 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책으로 공부하는 건 싫어.’ ‘나는말하는 연습이 필요해.’ 어찌나 원하는 것도, 필요한 것도 딱딱 맞아 떨어지는지. 괴테대학교에서 인턴십 중인 그는 매주 금요일 저녁의 만남을 원했고 나 역시 나쁘지 않았다. 언어를 공부한다는 생각보다, 만나서 이것저것을 함께 하고 그러면서 소통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어를 하게 됐다. 첫 만남에 일본어는 내가, 영어는 가리가 월등히 훌륭한 수준이었다. 보통의 대화는 일본어로, 또 일본어로 설명이 어렵다 싶을 때는 서로 영어를 사용했다. 독일에서 어느 누구의 모국어를 사용하지도, 그렇다고 독일어를 사용하지도 않고 우린 이렇게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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