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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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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주 Jun 05. 2017

프랑크푸르트에 찾아 온 봄



그래도 봄은 온다


해가 길어졌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오후 네 시가 넘어가면 주변이 흐려져서 다섯 시면 깜깜해질 정도였는데 여섯 시에도 이렇게 대낮 같을 수 있다니 새삼 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에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 진다.

분명 며칠 전까지 두터운 패딩 점퍼와 모직 코트에 몸을 구겨 넣은 채 돌아다니던 사람들인데, 어느 새 또 홑겹의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해가 지는 시각이 느지막해졌고 화창한 날씨의 빈도가 늘어나는 건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일이다. 한 해를 시작했던 1월보다 몸 안에서 직접적으로 무언가 피어 오르는 느낌이 되고 나니 왠지 모를 의욕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독일에 머문 지 8개월 지났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꽤나 많은 경험을 했기에 반 년이 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분주함 속에서 느긋함을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해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이슬을 촉촉히 머금은 녹음 사이를 걸었고 집에 돌아와 코 끝이 녹아버리는 향긋한 원두를 내려 진한 커피 한잔을 함께 했다. 냉동된 피자를 오븐에 구워 먹는 한이 있어도 하루에 한 끼는 내 손으로 차려 먹으며 그 순간을 즐겼다. 

유럽 시장에 대한 조사를 하고 생활비를 벌겠다고 이곳에서 시작한 온라인 가게는 그럭저럭 생활비를 충당하는 정도의 수입은 만들었다. 사활을 걸고 적극적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가 해보고자 했던 것들을 경험하고 시도해 보고 싶었다. 죽기 살기로 일에 덤빈다면 나는 또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처럼 세상을 둘러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어딘가 소속된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새로 열어가는 건 회사원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무언가에 몰입하면 한 번도 쉽게 빠져본 적이 없는 나는 내가 제일 잘 알기에 나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컴퓨터 앞에서 있는 시간에 제한을 두었다. 그것이 내가 현실과 이상을 타협하는 사소하지만 커다란 삶의 방식이었다.



혼자 조용히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를 떠다니는 일은 이 곳에 와서 처음 내가 살게 된 도시를 둘러보겠다며 지도한 장을 들고 트램을 타고 이리저리 떠다녔던 이래로 처음이니 벌써 아홉 달은 흘렀나 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낯선 땅에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을 가진 채 시작된 하루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무뎌졌다. 설렘과 두려움이 어땠는지 그 때의 내가 머리 속에 가진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새하얀 도화지에 작은 파편으로라도 남아있지 않음에 처음 이곳에 도착해 한 없이 낯설었던 내 모습에 대한 아련함이 느껴졌다.


여행은 계속 되었다

혼자서,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종종 여행을 오는 지인들과함께 할 때면 동선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이미 내가 가본 곳에서 도시 하나 정도를 새롭게 시도해 보는것이 전부였다.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와 파리는 필수 코스였고 사람들의 취향이나 비행 일정에 따라 뮌헨이나 프라하를 추가로 들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의 오지랖은 산이 되었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맞춰 이쪽저쪽을 다니고 이것저것을 보여주었다. 기껏 해야 함께 있는 시간이 일주일 남짓인데 내가 몇 개월 동안 방앗간을 드나들 듯 다니면서 모은 경험들을 남김 없이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애당초 무리였음을 시간이 꽤나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예전 회사의 직속 상사였던 혜진언니가 왔을 때는 무리하는 여행의 정점을 찍었다. 마지막 목적지인 뮌헨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한 두 시간 정도를 쉬고 시내 구경을 나가자고 하곤 언니와 나는 모두 이튿날 아침에서야 눈을 뜨고 말았다. 무릎 아래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나. 덕분에 꽤나 느긋하게 뮌헨을 맞이했지만.


봄 나들이: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도 찾았지만 매 번 새롭다. 그게 여행의 매력이다. @하이델베르크/독일



 어딘가로 여행을 가면 꽤나 많은 사진을 찍는다.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의아한 눈빛을 보낼 때도 종종 있을 정도로 사소한 것도 사진을 찍는다. 언제부터 쌓여온 건지 모를 이끼가 낀 하이델베르크의 돌계단, 신호등이 없이도 빼곡한 차들이 사고 없이 돌아 나가는파리의 개선문 앞 교차로, 매일 아침마다 다른 꽃을 테라스의 테이블마다 꽃아 두는 프랑크푸르트 시내의한 식당, 매주 토요일마다 차량을 통제하고 꽤나 길게 뻗어있는 마인강 옆에서 커다랗게 열리는 벼룩시장의모습까지. 매일 봐도 새롭고 신기하기만 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에 담았다. 반년이 넘는 시간을 머물면서 나름 나는 이 곳에 사는 일에 적응을 마쳤다고 생각했음에도, 발길이 닿는 곳마다 계속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는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잠시 머무르는 여행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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