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14

적지않은 분량의 글을 매일 쓰지만

by 김패티

내가 마음속으로 부러워하기도 하고 존경하기도 하는 사람,
글쓰기 강의 분야에서 늘 앞자리에 위치한 사람,
이름만 대면 이 분야에서는 다 알 만한 사람,
P 선생, 언젠가 그가 말했다.
김 선생님, 모든 걸 다 갖춘 것 같아요!
무슨 소린가?
지난해 초겨울이니 벌써 1년이 다 돼가는,
형들과 서울 근교로 나들이 갔을 때 찍은 사진을 보다가 한 말이었다.
서울과 일산에 흩어져 살면서, 멀지도 않은데
1년에 서너 번 만나는 게 고작인 형들.
만나면 밥 먹고 차 마시고 사진 찍고
싱겁게 놀다 헤어져서는, 잘 들어갔느냐 카톡하는 게 고작인데
뭘 갖추었다는 건지.

오랜만에 신변잡기나 써볼까 싶어 블로그를 열었다가
P 선생이 생각난 것은
혹, P 선생이 지금 내 상태 같은 거였나, 싶어서다.

언젠가 한 번은 P 선생이랑 밥을 먹다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즈음 나는 많은 글을 쓰지는 않았으나 껄렁껄렁하면서, 감상적이고
감상적이면서 시니컬한, 한 마디로 내 맘대로 신변잡기를 쓸 때였다.
글을 써야 한다는 어떤 스트레스도 없이 그저 쓰고 싶은 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었다.
영양가 없는 이야기라 들어줄 사람도 없을 테고 하여,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들려주듯 글을 쓰고 있었다.
밥 먹는 이야기며, 일 얘기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며---.
맥락 없이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글쓰기 하고 있었다.
더러는 내놓고 말하기는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
그러나 어딘가에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나면
생각이 정리됐고, 덜 부끄럽고, 덜 외로운
그런 글들을 쓰고 있을 때였다.

"이제 7년 남았어요."

P 선생은 예순 살까지만 강의를 하고 그 후론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쌀농사짓고, 채소 가꾸며 살고 싶다고 했다.
p 선생이 쓰고 싶어 하는 글은 불교 철학을 담은 동화,
그리고 평소 마음속에서 키워오는 불교 철학일 것이다.
p 선생은 시로 고교시절 이미 등단한 이력도 있다.
그런 그가 날마다 쓰고 말하는 글은 일을 하기 위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한담을 쓰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길 한담은 일상이 돌아가게 하는 관절 같은 것이라 했는데.

요즘 나는 날마다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쓴다.
내 깜냥은, 내 적성은 한담 쓰기인데,
서본결을 따지고 그에 합당한 근거를 대기 위해 논문을 읽고 쓰자니,
도무지 힘에 부친다.

이러다간 가을도 잃어버리겠다 싶다.
봄여름을 잃었는데, 가을마저 잃을 순 없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의 유혹을 뿌리치는 건 바보다.
나가자.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형들과 찍은 사진 속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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