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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Dec 17. 2020

[독서모임]책에 대한 책을 읽다

화요일 밤에 랜선으로  모여 책읽는 모임


겨울밤 9시는 해가 지고도 4시간 가까이 지난 시간이다. 한밤중이다. 세 번째  독서모임을 열었다.   첫날 정한 <화랜모>의 그라운드 룰, 10분 전에 줌 입장하기, 종료할 때까지 함께 하기, 비디오로 참여하기, 결석하면 미리 고지하기 등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어서 일까, 모두들 제 시간에 착착 입장을 완료했다. 




자신이 맡은 챕터를 읽고 인상적인 구절 옮기기, 단상 쓰기, 질문 만들기를 해서 모두 화랜모 카페에 실어놓았다. 이만하면 세 번째 독서모임 준비는 된 것 같다.     




 모임에서 함께 읽을 첫 번째 책은  <정신과 의사의 서재>(하지현, 2020.12, 인플루엔셜)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책에 대한 책이다.  두번째 모임에서 우선  골라 놓은 책 목록은 다음과 같다. 그림책에서 소설, 에세이, 철학서, 과학서 등 모임 구성원의 성향 만큼이나 다양하다.





<정신과 의사의 서재>를 쓴 하지현 교수는 정신과 의사이며 다독가이면서 서평가라는 책 날개에 실린 작가 소개보다도 다른 이유로 한참을 이야기 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영화 감독 하길종이며 작은 아버지는 영화배우 하명중, 어머니는 전채린, 이모가 전혜린이다. 불꽃처럼 살다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전혜린의 조카라는 것. 이 책과 전혜린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만 아무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음에는 틀림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모임 시간을 다 메울 기세였으니까.



저자는 ‘옥수동 독서일기’란 블로그에 책 리뷰 쓰기를 시작으로 독서와 관련된 컬럼을 오랫동안 썼고, 현재까지 전공과 관련한 심리학 서적도 여러 권 출간하였다. 책은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읽을 때는 순서에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된다.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구성이 산만하다고 한다. 평소에 책 좀 읽는 것으로 알려진 회원 두 사람은 저자가 여성작가인줄로 알고 읽다가 뒤늦게 남성이라는 것을 알고 책 읽는 재미가 급작히 식었다는 말을 했다. 단지 읽기 싫어진 핑계 아니냐고 놀렸지만 진심이라고 정색을 하니, 더는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독서의 세계로 이끈 독서 경험이 이후의 독서 인생에 영향을 준다. 교실 안 존재감 없는 아이였던 저자가 독서로 인해 주목받는 아이로 변하게 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내게도 독서 인생으로 이끈 그런 멋진 스토리가 있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없다.




이런 기억은 있다. 어느날 더운 여름 저녁무렵이었다. 대문 앞에 나무걸상을 내어놓고 앉아서 형들이 읽었을 <차일드 해롤드의 순례>를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국민학생이었다. 정확한 학년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1,2학년정도. 여름 해가 지면서 남긴 긴 저녁놀과 함께 부엌에서 칼국수 끓는 냄새가 안마당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책 읽다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저만큼 아버지가 점점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오시고 있었다. 나는 더 큰 목소리로 글자를 읽었다. '차일도 해롤드의 순례도 읽을 줄 아는구나!' 내가 읽던 책표지를 들춰보시며 기특해 하신 아버지 음성이 지금도 칼국수 냄새와 습습한 저녁노을과 함께 현실처럼 되살아나곤 한다. 책 이름은 그래서 기억한다. 책 내용은 물론 알지 못했으니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장면 만큼은 동영상처럼 끝없이 리뷰되고는 한다.




공부를 숭상하던 부모님, 공부하는 자식을 더 기특하게 여기신다는 걸 아는 나는 그 후로도 종종 부모님 들으시라고 큰 소리로 글자를 읽고는 했다. 읽을거리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닥치는대로 읽어서 집안에 굴러다니는 신문조가리도 읽었고, 뜻도 모르면서 연애소설도 읽었다. 읽던 연애소설을 빼앗기기도 했으나, 그건 연애가 뭔지 아는 어른들의 쓸데없는 걱정이었을 뿐 나는 글자를 읽는 어린 아이였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읽은 글들이 나를 구성하는 성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균형잡힌 독서, 몸을 키우는 데 균형잡힌 영양소가 필요한 것처럼 정신을 키우는 데는 균형잡힌 독서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맞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이미 모든 독서기를 지난 이제 늙을 일밖에 안 남은 나에게 독서란 책 선정에 우선 고려되는 요소는 '필요'다. 일과 관련한 책, 그리고 취미 독서. 전문가의 독서 몫으로 여겼던 과학책 읽기에 대한 인식이 최근 달라지면서 대중과학서도 많이 나왔고, 읽는이도 많아졌다. 누가 과학책 이야기하면 영 모르쇠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몇 권 사 읽고는 있지만 페이지가 안 넘어간다. 책으로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저 즐거우면 됐지, 만화책으로 바꾸니 좀 읽을 만 하다.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김도윤, 2020) 같은 것들. 클럽장씩이나 되었지만 함께 읽자고 고른 책 중에는 벌써부터 재미없는 책들도 있엉 살짝 걱정스럽기는 하다. 뭐 어쩌겠나.




책을 고르는 안목은 독서량만큼 저절로 생긴다. 책에 대한 책을 읽기, 평소 책 좀 읽는 이의 SNS에서 정보 얻기, 책속에서 책 만나기 등이 내가 책에 대한 정보를 얻는 통로다. 고른 책이 흡족할 때도 있지만 실패도 적지 않게 한다. 나는 책 읽는 스타일이 산만하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간다. 그렇게 읽을 수 있는 건 고맙게도 머릿속에서 엉키기 않아서다. 나이를 먹으면서 기억을 하지 못할 망정 이책 저책이 섞이지는 않는다.



라이너스의 담요같은 책이 있는가. 저자는 <슬램덩크>가 라이너스의 담뇨같은 책이라고 한다. 나는 없다. 아니다. 시기별로 다른 책이 있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책 보다는 책을 읽었던 장소가 더 기억에 남는다. 끊임없이 그런 분위기를 찾기도 하고, 만들고자 애를 쓰는 편이다.




라이너의 담요같은 책으로 판타지를 꼽은 회원이 있었다. 영문과에 진학하게 이끈 책이 <해리포터>영문판이었다고 한다. 한글책을 먼저 읽고 원서로 읽고 싶어서 영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그는 판타지를 읽으며 현실에서 없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한 판타지를 읽으며 암울한 중고생 시기를 넘겼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침체 되었을 때 판타지를 꺼내 읽고 싶지만 어린 아기를 기르는 엄마의 한계라며 속상해 했다.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코로나로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2020년을 보내며 읽기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회원에게 우울할 때 읽으면 좋을 책으로 하지현 교수가 추천한 책을 읽어보라거나, 심리학 전문 출판사의 책 <야생의 위로>를 소개했더니, '저는 우울하지 않아요!'해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웃고 떠들다보니 자정이 넘었다. 다음 번엔 11시에 마치도록 노력하자는 말로 줌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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