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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Dec 27. 2020

[독서모임] 살림 말고 다른 이야기가 절실한 사람

화요일 밤에 랜선으로 모여 책읽는 사람들의 모임

살림 말고 다른 이야기가 절실한 사람들이 네 번째 독서모임을 열었다.  첫 모임의 화제였던 이야기의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모임이 열리는 시간 임박해서 몇 명이 사정이 있어 모임 참석을 못 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 등의 다양한 역할에 우선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해는 하는데 힘이 빠진다. 결석한다는 말에는 다른 사람의 힘이 빠지게 하는 이상한 기운이 있다. 한 사람이 못 올 사정을 단톡방에 올리자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결석하게 되었다는 알림이 연달아 올라온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기도 하지만 이유를 댈 만한 것이 못 되는 이유로 모임에 빠지고 싶은 때가 있기도 하다. 나는 숙제를 못했을 때, 날씨가 궂을 때, 종일 바쁘게 일하느라 진이 빠졌을 때, 빠져도 벌금이 없을 때, 모임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미미할 때,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그러고도 이유는 더 있을 것이다.  


이번에 다룰 책 <책장 속의 티타임>(기타노 사쿠코, 2019)은 동화에서 발원하지만 줄거리는 먹을 것 이야기다. 모임에 먹을 게 있으면 분위기가 너그럽고 여유로워진다. 같이 먹고 마시는 행위가 분명 서로를 더 친밀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모임을 큰 줄기로 하는 소설 <내 인생 최고의 책>(앤 후드, 2017)의 등장인물들은 책 얘기는 물론 그날 모임에 내놓은 음식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길다. 이들이 모여서 나누는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책 모임에 내놓는 음식도 흥미로웠다. 지금은 온라인 모임이라 어렵지만 언젠가 오프에서 책 모임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따라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다. 


저자는 총 11편의 동화를 소개하며 동화 속 배경이 되었던 장소를 찾아 당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돌아보고, 동화 속에 인물들이 먹고 마셨던 음식과 차를 맛보며 느낀 것을 책에 담았다. 한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하려면 그 나라 사람이 쓴 그 나라의 동화를 읽어보라고 한다. 동화는 동화를 쓴 작가의, 작가가 살았던 지역의 풍토가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저자가 영국 유학을 하게 했고 이 책은 그때 보고 듣고 경함 것들의 기록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동화들,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버드나무에 부는 바람>,<비밀의 화원>,<곰돌이 푸>,<피터래빗 이야기>,<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제비호와 아마존호>, <사과밭의 마틴>,<시간여행자, 비밀의 문을 열다>,<내 이름은 패딩턴>,<메리 포핀스>를 읽고 쓴 독서 에세이다. 11편의 동화를 모두 읽은 회원은 없었다. 그러나 동화는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냈다. 기억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살림 말고 다른 이야기를 구했던 이들을 따뜻하게 했다. 각 사람의 삶은 다르지만 책은 사람을 하나로 엮어낸다. 비슷한 시기를 산 사람들끼리 통하는 정서가 있고, 정서가 담긴 이야기로 사람들은 소통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쿠키 좀 구워봤다는 회원이 여럿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시나브로 쿠키를 굽는 냄새가 집안에서 사라졌다면서 이 책이 주방 깊숙이 들여놓은 도구들을 다시 꺼내게 한다고 했다. 어릴 때 읽은 동화의 상당 부분이 유럽의 작품들이어서인지 유럽에 대한 동경이 있다는 이야기에도 여럿이 공감했다. 긴 시간을 쓰면서 이야기한 것은 각 편 말미에 있는 동화 속에서 언급된 먹을 것들의 레시피였다. 머핀, 푸딩, 스콘 등 차보다는 커피와 함께 먹는 디저트들에 특히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등으로 이야기가 옮겨 갔다. 영화 속 <폭풍의 언덕>에 히스 꽃이 끝없이 핀 들판에 바람이 불면 물결치는 히스 꽃이 파도 같았다는 장면을 소환하기도 했다.


책을 읽고 쓰는 글이 늘 온정적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나는 회원들에게 비판하기보다는 장점이 무엇인가를 먼저 찾아 써볼 것을 권했다. 합평을 할 때도 나는 비슷한 말을 한다. 물론 때와 장소에 따라 장점만 말해서는 안되는 일도 있겠지만, 글쓰기 모임, 독서모임에서라면 장점만 이야기해도 단점은 저절로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단점은 단점을 말할 사람이 말할 때에 하면 된다. 그러므로 놀라도 놀란 듯만 하게 써보자고 했다. 물론 나도 많은 글을 발표한 건 아니지만 책에 대한 글을 쓰거나 말을 해야 할 때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야말로 빼놓으면 안 되는 것인 양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되도록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문제가 많다면 하지 않으면 된다.


모임에 필요한 그라운드 룰을 정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꾸 생긴다. 책 읽기가 괴로운 일이 되거나 독서모임이 불편해지는 일이 생기지 안된다는 생각에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했다. 책과 연관된 이야기를 하되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고 흘러가지 않도록 하자. 모임 본질에 느슨해지기 쉽고 모임 시간이 지체될 우려가 있다. 줌으로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만나서 온기가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과 다르다. 대화라는 게 말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어서 자칫 오해를 사는 일도 있을 수 있다.


발언을 독점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했다. 어느 모임에서나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이 있고 청취를 주로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런 사람이 환영받기는 어렵다. 대화의 폭과 깊이를 위해서도 독서모임에서만큼은 대화를 한두 사람이 대화를 독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화의 독점을 막는 일은 리더의 몫이기는 하다.


비밀의 원칙으로 독서모임에서 나온 이야기가 외부로 나가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자는 이야기도 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은 있다. 한편 말하는 이도 주의할 일이기도 하다. 무슨 이야기도 다 허용되는 모임은 없다. 유대감과 책임감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


완독의 부담을 내려놓자는 이야기도 했다. 조각을 모아서 블록을 완성하는 것처럼 이야기들이 모여서 나름의 모양을 가진 블록이 완성되면 된다. 또한 책 전부를 다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욕심이다. 많은 것 중 한 가지만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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