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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패티 Jan 06. 2021

[독서모임]요새 소설, 화법이 낯설어요

화요일 밤에 랜선으로 모여 책읽는 사람들의 모임

생계 걱정은 없어도 비어 있는 곳간이 있다.  그 부분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삶이 생계만 있는 게 아니어서다.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이 우리 삶에 깃들기를 바라는 사람들, 그들이 5번째 모였다. 

"요새 소설은 화법이 낯설어요."

이번에 읽은 책은 <옥상으로 와요>다.  소설 읽는 사람들은 잘 아는 젊은 작가 정세랑의 단편 소설집이다.  드라마

<보건 교사 안은영>의 원작자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소설보다는 일을 하기 위한 책 읽기에도 빠듯한 시간을 사는 사람들, 몇몇은 이 책을 계기로 다른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고 했다. 한편 소설의 화법이 낯설다는 의견도 있었다. 20,30대 여성의 언어라서 그렇다, 읽을 사람을 젊은 여성으로 미리 정하고 쓴 소설이어서 그럴 것이라고,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소설을 안 읽었다는 뜻이라고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맞다 맞아, 손뼉 치며 모두를 웃게 한 것은 "유행이 몇 바퀴 돌아 다시 통바지, 스키니, 일자바지가 고루 유행인데 그중에도 끼지 못하는 판탈롱을 입고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이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소설 읽기는 관심사 바깥의 일일 수도 있고, 소설 읽는 호사를 누릴 처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웨딩드레스 44’ 읽고 난 다음 ‘효진’을 읽을 때 효진이 웨딩드레스의 44명 중 하나인가 보다 하고 읽었어요.  그러다  ‘알다시피, 은열’을 읽을 때는 아, 단편 모음이지,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가도, 다시 누군가의 전생인가 하며 읽다가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을 때는 거기 나오는  세 명의 여자를  ‘웨딩드레스 44’의 각각의   케이스에 넣었다가---.  ‘보늬’는 다른 단편과 섞이지 않고  따로 잘 읽혔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웨딩드레스의 여자들이 '돌연사. net’'에 정보를 제공한 장본인들 같았어요.  ‘영원히 77 사이즈’를 읽을 때는 더 이상 힘드니 누가 이 이야기를 나에게 정리해서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줄거리 정리를 포기하려는데  ‘이혼 세일’에 와서 아, 이렇게 이야기가 종결되는구나 '했어요." 

소설 화법이 낯설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KJ는 이렇게 길게 설명했다.  

KJ의 말을 나는 '제발 누가 나에게 이런 소설을 읽어야 할 의미를 부여해 주세요'라고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 세대의 사람들이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공포나 스릴도 아니었다. 그 이유가 뭘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안의 원인이 정리된 것 같았다. KJ가 느꼈던 혼란스러움, 낯선 소설 화법, 그리고 젊은이들의 불안한 삶으로 인한 느낌이 내게로 전이되어서라고.            

 "소설을 읽으면서 이혼도 무서운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MK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혼도 무서운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혼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기혼 여성이 있을까. 모니터의  n 분의 1 창에서 사람들 절반은 고개를 끄덕였고 절반은 K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물론 제가 이혼을 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고,  MK가 웃는 얼굴로 정색을 했다. 말하는 이보다 듣는 사람이 과잉으로 반응을 한 것 같았다. "이혼 세일"을 읽으며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사정에 맞는 상상을 했고, 이혼에 대해 제각각의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회원들 여럿이 밑줄을 그어온 소설은 '웨딩드레스 44'였다. 평범한 한 벌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한 여성 44명의 이야기다.  "44명의 여성 중 나는 6번, 17번여자 같더라구요. 요새 같아선 25번째 여자처럼 말하고 싶 어요." JK가 말했다. 코로나시대, 엄마와 여자들은 더 고단하다. 재택근무하는 가족, 학교도 학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는 아이들, 식사와 놀이와 공부까지 도와야하기 때문이다. JK의 말은 저녁 메뉴가 뭐냐고 묻는 남편을 향해 25번 여자처럼 "야!"하고 소리 먼저 지르고 뭐라고든 하고 싶다는 거였다.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기 전에는 드라마 <미생>을 생각했다고 KJ가 말을 이었다. 드라마 미생에서 옥상은 문제 해결 장소였다. 담배를 피우면서 든,  식은 커피를 마시면서 든, 석양에 잠기는 도시를 보면서 든, 혼자서든 혹은 여럿이 모여서이든, 옥상은 미생들의 문제 해결 장소였다. 그러나 소설 속 여자에게 옥상은 현실의 고통이 힘겨워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옥상은 누군가에게는 쉼이나 위로의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는 삶을 끝내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옥상에서 만나요>는  회사 생활에 지친 나머지 결혼으로 돌파구를 찾고 싶은 여성의 이야기다. 정작 결혼할 남자가 없는 그녀에게 회사 언니들이 남편감을 불러오는 오컬트 의식을 가르쳐 준다. 그러게 불러온 남자는 인간의 절망을 빨아먹고 산다.  절망을 먹어야 하는 남자, 그녀는 그를 위해 세상에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데려다준다. 이를테면 '뇌종양 수술 후 후각을 잃은 요리사, 험악한 이웃과 마찰을 겪은 캣맘, 감정노동자 텔레마케터,  20년 넘게 키운 앵무새가 죽은 사람, 극우 국회의원의 딸 등. 그렇게 해서 여자는 편안함을 얻는다. 그러나 주인공 여자는 환상 속에서만 편안하다.  

왜 환상이어야 했을까? 

그렇게 오랫동안 불편부당한 처지로 지냈던 사람의 처지가 하루아침에 뒤집어지긴 힘들다. 적어도 소외당한 채로 지낸 시간만큼의 시간이 걸려 조금씩 개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다리는 건 지루하고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어떤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전능한 신 같은 존재가 와서 해결해 주지 않으면 하세월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소설이라면 그게 가능하지 않은가. 그렇게라도 여성들은 위로를 받고 싶은 거다.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은 거다.   

힘없는 사람들이 살아갈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보늬는 밤이나 도토리 따위의 속껍질을 뜻한다. '보늬'는 밤의 속껍질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여자 보늬가 주인공이다. 똑똑하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 어느 날 돌연사한다. 돌연사라니 믿을 수 없지만 보늬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슬퍼만 하지만 않고 '돌연사. net'를 만들어 수많은 알 수 없는 죽음들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종이박스 공장서 혹사당하다 죽은 외국인 노동자, 회사 체육대회서 쓰러진 사람, 실험실에서 쓰러진 대학생, 과로, 스트레스, 인격모독, 경쟁, 착취, 질병---.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죽음이 '돌연사. net'에 모인다.


대리기사로 근무하는 애환을 담은 책 <대리 사회>(김민섭)에는 책 속에 일기장 같은 글이 몇 편 실려 있다. 어느 날 대리운전을 해서 중계동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특별한 문자를 받는다. ‘중계동에 계시면---’으로 시작하는 이 문자는 괜찮으면 집으로 오겠느냐는 초대 문자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근처 편의점에서 만나 차를 한잔하기로 한다. 문자를 보낸 이는 대학원 박사과정생이고 결혼을 앞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염치없는 새벽이었다고 김민섭은 말한다.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찾은 예가 하필 남자의 예여서 아쉽기는 하다.

<옥상에서 만나요>에는 다양한 처지에 놓여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소설에서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결론은 “연대해야 한다"라는 것이라고 읽었다. 연대란 거창한 사회적 시스템을 가진 말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서로 힘을 합친다는 뜻이다, ‘돌연사. net’도 연대다. <대리 사회>의 저자 김민섭과 한밤에 초대를 했던 사람도 잠시이기는 하지만 연대를 한 셈이다.


뭔가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약자들에게는 연대만이 가혹한 현실을 감당할 만해진다 나의 힘겨움을 나의 것으로만 두거나 남 탓만 하지 않고, 다음에 오는 이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독서 모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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