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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이해의 한계와 연민

올리브 키터리지

by 김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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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오후를 사는 이들이 읽기 좋은 책

<올리브 키터리지>는 13편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연작 소설이다. 각 단편은 독립적이지만, 모든 이야기는 미국 메인주의 작은 해안 마을인 크로스비(Crosby)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을의 중학교 수학교사였던 올리브 키터리지가 주요 인물이거나, 혹은 그녀의 시선이나 주변 인물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겉으로는 좀 무뚝뚝하고, 때로는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보이는 인물이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을 가지고 있는 복잡하고 현실적인 캐릭터. 마을에 찾아드는 변화에 대해 한탄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소설은 올리브의 가족(남편 헨리, 아들 크리스토퍼)과 마을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들, 즉 사랑, 상실, 외로움, 고통,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희망 등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아주 섬세하고 통찰력 있게 그려낸다.


올리브 키터리지뿐만 아니라 마을의 다양한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져서 마치 내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인간 본연의 고독함, 이기심, 그리고 동시에 사랑과 연대감을 탁월하게 포착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첫 번째 이야기 "약국"은 올리브의 남편인 헨리 키터리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헨리는 수십 년간 약국을 운영해 온 친절하고 온화한 인물이지만, 속으로는 외로움을 느끼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그는 오래 함께 일했던 직원 보니가 세상을 떠나자 상실감을 크게 느끼고, 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직원 데니즈 티보도를 고용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젊고 순진하며 불운한 데니즈를 보며, 헨리는 연민을 넘어선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데니즈를 친절하게 대하며 그녀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동정심을 느끼는데, 이는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자신이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그의 욕구와 맞닿아 있다. 헨리는 데니즈를 보호하고 돌봐주고 싶어 하지만, 이는 결국 그의 내면에 있는 공허함을 채우려는 행동에 가깝다.

한편 올리브는 헨리의 감정적인 태도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올리브는 헨리가 데니즈에게 품는 감정을 '사랑'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나약한 사람을 돌보고 싶어 하는 그의 지나친 연민이자 일종의 자기만족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무력하지 않아"라는 올리브의 말은, 헨리의 순수한 마음 이면에 있는 이기적인 감정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로 인해 헨리는 잠시 올리브를 향한 혐오와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데니즈가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나면서 헨리의 짧은 감정적 동요는 막을 내린다.

사람들은 제각기 크고 작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순간들은 있으며, 이는 고독 속에서도 인간적인 연결도 가능하다.

"약국"은 이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제시하는 중요한 서막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이야기 "밀물"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살로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케빈이 삶을 포기하려다 우연히 옛 은사 올리브를 만난다. 올리브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발견한 케빈은 한 친구를 구하면서 다시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게 된다.

"피아노 연주자", "여행 바구니", "굶주림" 등에서는 각자 자신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다. 옛사랑에 대한 후회를 느끼는 앤절라,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바구니를 보며 슬퍼하는 말린, 아내와의 관계에 지쳐가는 하먼 등,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이 책의 중심인물, 올리브 역시 행복만을 누리지는 못한다. 아들 크리스토퍼와의 관계는 끝까지 삐걱거리고, 헨리와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헨리가 세상을 떠난 후, 올리브는 아들을 만나러 뉴욕에 가지만 아들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여전히 외로움과 상실감에 시달린다.

인간관계는 한 가지 감정으로 정의될 수 없다. 소설 설속 올리브와 헨리의 관계는 사랑과 애증, 이해와 오해가 뒤섞여 있고, 올리브와 아들 크리스토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타인과 맺는 모든 관계에는 사랑, 연민, 책임감, 때로는 이기심과 분노가 함께 존재함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것.

인간에게 외로움은 삶의 본질적 부분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외로움을 느낀다. 헨리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 속에서, 올리브는 특유의 냉소적인 성격 때문에, 케빈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외로워한다. 외로움은 몇몇 특정 인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렇다고 이 외로움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외롭기 때문에 서로 기대어 위안을 얻고 삶의 의지를 되찾기도 한다. 외로워서 인간다운 건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는 극적인 사건보다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우리네 삶이 대개 그러하듯 소설도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작고 사소한 감정의 변화와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큰 의미 없어 보이는 삶의 순간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특히 이 소설은 타인에 대한 이해의 한계와 연민을 잘 표현했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무력하지 않아" 라는 올리브의 말은 헨리의 감정을 꿰뚫는 통찰이지만, 동시에 그녀 역시 완벽하게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완벽한 이해가 아닌, 불완전한 상태에서일지언정 이웃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인간적인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덧/

미국 메인주의 작은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25년간의 삶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담고 있는 이 소설과 구성이 닮아서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피프티 피플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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