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
최근 읽는 책들에서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 베리 로페즈의 기행 산문 《호라이즌(Horizon)》, 그리고 이욱연의 인문 여행기 《홀로 중국을 걷다》 등이다. 이 책들의 면면을 보면, 겉으로는 산책이나 걷기라는 신체적 행위, 그리고 깊은 관조라는 정신적 행위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 작품들이 단순히 산책에 관한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책과 걷기는 작가들이 세계와 사물에 대한 깊은 사유와 통찰을 얻는 방법론이 되고, 그 과정에서 삶에 대한 질문들이 길어 올려진다.
그중 메리 올리버는 이 사색의 궤적을 더욱 구체적인 이야기의 원천으로 연결한다. 시인은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바로 혹독한 날씨라고 말한다.
(메리 올리버는 시인이다. 휘트먼과 데이빗 소로와 에밀리 디킨슨을 닮았다고 평가받는다. 소설가 김연수의 소개로 나는 알았다.)
평온하고 안락한 상태에서는 이야기가 태어나지 않는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 무언가 해야만 하고,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일 때, 이야기는 바로 이 예기치 않은 절박한 행위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올리버의 생각이다.
올리버는 마조히스트 같지만, 그 역경에서 기쁨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이 기쁨은 생존을 위해 모든 감각이 깨어나고 한계를 넘어설 때 느끼는 근원적인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역경과 고난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닌, 카타르시스를 주고 나아가 깊은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 된다고.
《완벽한 날들》을 비롯한 이 책들이 공통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작가들이 산책을 통해 외부 세계를 걷고 관조하듯이, 삶의 혹독한 날씨와 역경 또한 기꺼이 걸어 통과해야 할 내면의 길이며, 그 길 위에서 가장 진실하고 풍요로운 이야기들이 발견된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날마다 내 풍경 속을 걷는다. 늘 똑같은 들판, 숲, 창백한 해변. 늘 똑같은 푸른빛으로 즐겁게 넘실대는 바닷가에 선다. 늦은 여름 오후, 보이지 않는 바람이 거대하고 단단한 똬리를 틀고, 파도가 흰 깃털을 달고 해변을 향해 달려와 소리 지르며, 고동치며 마지막 상륙을 감행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목격했다. 여름이 물러가고, 다음에 올 것이 오고, 다시 겨울이 되고, 그렇게 계절은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은 우주 안에서 그 뿌리, 그 축, 그 해저로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흔들리고 있으니까. 세상은 재밌고, 친근하고, 건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사랑스럽다. 세상은 정신의 극장이다. 하나의 불가사의에 지극히 충실한 다양함이다.
- 137~138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