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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울라 최 Jan 06. 2022

13살, 나는 머리를 자르고 여성성을 잃었다.

단발머리 불치병

초등학교 6학년, 엄마가 나에게 컷트머리를 제안했다. 요즘이야 여자들이 컷트머리를 많이 하지만 그때는 흔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거절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엄마의 제안에 복종했다.

13살, 난생처음 머리를 짧게 잘랐다.

좋은 게 하나도 없었다.

헤어핀이나 머리띠를 할 수 없었다.

괜히 이유 없이 의기소침해졌다.

그 이후로 머리는 더 짧아지고 짧아져 남자들이 하는 스포츠머리스타일로 머리카락이 짧게 잘라져 나갔다. 한참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였다. 헤어스타일 때문에 여성스러운 옷이 어울리지 않았다. 치마는 입고 싶어도 입을 수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액세서리와 치마를 포기한 채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니 교복을 입게 되었다. 그때 치마교복을 입고 설렌마음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그런데 치마 입고 볼일은 어떻게 봐야 해? "

학교 규정상 머리는 귀밑 1cm 단발을 유지해야 했고 70년대 촌스러운 헤어스타일로 중학교를 마쳤다.


고등학교는 신세계였다.

긴 머리에 예쁘게 화장을 하고 사치도 부리는 친구들과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생인 나는 거지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머리를 묶고 머리 장식을 하는 건 너무 어색하고 창피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일자 앞머리에 단발머리(전화기 머리)를 고수했다. 

고2 여름, 미용실 아줌마 실수로 숏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통곡을 하고 울었다.

나는 언제 긴 머리를 가질 수 있을까. 서글펐다.

머리를 길러도 문제다. 어색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대체 긴 머리를 언제 가져본 적이나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않는다.


드디어 대학생이 된 나는 머리를 길렀다.

긴 머리를 가져보니 치마를 입을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액세서리 하고 높은 힐도 신었다.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루는 굽이 낮은 예쁜 은색 구두를 신고 긴치마를 입고 학교에 가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던 그 날 그 마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날 그렇게 소중한 머리를 싹둑 잘랐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겠다고 다짐했다. 도피였다.


머리카락은 나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몇 주전 긴 머리를 잘랐다. 유행하는 단발머리를 했다. 그리고 나는 또 새로운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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