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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Jul 09. 2022

나는 영화만 보면 잠을 잔다

나는 영화를 보다가 잠을 잘 잔다.

아내와 연애를 할 때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잠들지 않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어릴 적 나는 아빠의 영향으로 영화를 많이 봤다.

아빠는 특히 액션 영화를 좋아하셨다.


초등학교 6학년, 아빠가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빌려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신 적이 있었다.


비디오 가게 누나가 무슨 영화 빌리러 왔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액션 영화요!라고 대답했고,

누나는 액션 영화들을 하나씩 추천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은 이미 내가 아빠랑 본 영화였고,

나는 내가 영화 좀 봤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했다.


결국 누나는 그래, 너라도 이 영화는 안 봤을걸? 하며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8mm라는 영화를 골라줬고, 

나는 그 비디오를 들고 집에 왔다.


그 영화가 초등학생 아들 둘이 부모님과 

함께 볼만한 영화는 아니라는 건 

그날 저녁 온 가족이 둘러앉아 

비디오를 보면서 알게 됐지만 말이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때

어떤 영화들을 봤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저녁에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때도 나는 영화를 보면서 자주 잠에 들었는데,

그럴 때면 아빠가 나를 안아다가 침대에 눕혀주셨다.

아빠 품에 안겨 침대로 가는 길에 

가끔 잠에서 깰 때도 있었지만

나는 이내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내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미국에서는 엄마도 아빠와 함께 일을 하셨는데,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한인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집에 오는 길 비디오 가게에 들러 

한국 드라마가 녹화된 비디오들을 빌려왔다.


저녁이면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엄마가 준비해주는 과일이나 간식을 먹으면서

다 함께 한국 드라마 비디오를 봤다.

그 시간에 나는 아무 걱정이 없이 편안했다.

그리고 이 기억은 내 미국에서의 기억 중 

가장 행복한 기억 중 하나다.




이민을 온 지 한 1년 후쯤, 아빠가 하시던 일 때문에

혼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시게 되어 

우리는 기러기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함께 드라마를 보던 주말은 사라졌다.


그 후에도 형과 나는 

허준, 대장금, 야인시대 같은 비디오들을 

빌려서 재밌게 봤지만

온 가족이 함께 보던 그 맛은 나지 않았다.




기러기 가족이 된 지 한 10년 후쯤,

아버지가 은퇴를 하시고 미국에 들어오셔서 

우리 가족은 다시 완전체가 됐다.


그리고 나는 아내를 만나고 결혼을 해

또 다른 완전체가 됐다.


이제 우리 가족은 한국 드라마 

비디오를 빌려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아내를 품에 안고 

영화를 보다가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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