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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Jul 23. 2022

글 발행 후 2시간 동안은 안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만


무언가를 잘하게 되려면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Repetition 

Significant Emotional Moment


(의역하자면)


반복,

그리고 잊히지 않는 충격적인 기억


뭐 군대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글에는 군대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 와이프도 재미있어한다고 한다.

(사랑해, 여보)




미 육군에는 Battle Drill(배틀 드릴)이라는 게 있다.

영한사전에 찾아보면 "전투훈련"이라고 나오지만

진짜 의미는 조금 다르다.


그냥 전투하는 훈련을 하는 게 아니라

전투에서 자주 벌어지는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지진이 나면 책상 밑에 들어가

책상다리를 꼭 잡고 있으세요."

같은 매뉴얼인데,

현재 미 육군 보병 매뉴얼에는 13개의

배틀 드릴이 명시되어 있다. [1]


그중 9번째 배틀 드릴은

포탄이 떨어졌을 때 대처하는 방법이다.

5가지 순서로 되어 있는데, 쉽게 의역하자면 이렇다:


(1)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 먼저 들은 사람이 

"포탄이다!!!!!"라고 외친다.

* 박격포 포탄(쉽게 말하면 폭탄)은 떨어질 때

빙글빙글 돌면서 휘파람 소리를 낸다.


(2) 눈에 보이는 몸을 숨길 만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바닥에 바짝 엎드린다.


(3) 리더가 대피할 방향과 거리를 지시한다.

예를 들어 "동남쪽으로 500미터!!"


(4) 한바탕 폭발이 끝나고 나면 

모두 리더가 지시한 방향으로 냅다 뛴다.


(5) 지시한 대피장소로 병사들이 모이면

리더가 상부에 상황을 보고 한다.

 



자, 그럼 9번째 배틀 드릴을

완벽하게 마스터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로 반복해서 훈련하는 것이다.

10명이 한 조가 되어 폭탄에 대처하는 훈련을 반복한다.

몇 날 며칠이고 자다가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 때까지

같은 훈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하지만 이런 반복 훈련은 지루하고 긴 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먼저 교관(선생님)이 10명을 숲 속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자, 얘들아, 

너희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걸어갈 거야.

그냥 가다가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배운 대로 대처하면 돼. 알겠지?"


뭐, 이쯤이야!

하고 유유히 숲 속을 거닐다 보면

갑자기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이 휘파람 소리가 휘이익 나다가 펑! 하고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는 그런 물건을 던진 거다.)


이때 몇몇 우등생은 배틀 드릴을 기억하고

곧바로 바닥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몇몇은 당황해서 허둥지둥거린다.


그러면 선생님이 와서 당황했던 조원들에게 와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런, 당황했구나?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뭘."


그리고 또 말씀하신다:

"너희는 폭탄에 죽었으니까 누워서 편히 쉬면 돼."


완벽하게 배틀 드릴을 해낸 조원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동료들이 죽었으니 둘러업고 뛰렴."


당신,

500미터 전력질주를 해보았는가.

30kg 완전 군장을 하고 전력질주를 해보았는가.

완전 군장을 한 동료를 둘러업고 전력질주를 해보았는가.

죽기 직전의 상태로 결승점에 도착했는데 

다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그렇게 하루 종일 전력질주를 해보았는가.


이렇게 하면 자다가도 휘파람 소리만 들리면 

벌떡 일어나 9번째 배틀 드릴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그리고 딱 반나절로 족하다.

이게 바로 잊히지 않는 충격적인 기억이다.




자, 그럼 군대에서 배운 것을 글쓰기에 적용해보자.

글쓰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반복하는 것이다.

좋은 글들을 반복해서 읽고

글쓰기를 반복하고

글 고치기를 반복하면 된다.

기회가 되면 글쓰기 동료들과의 합평도 반복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더디고 지루하다.

이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내 글을 발행하는 거다.

그리고 모든 단톡방에 내 글 링크를 뿌리면 더욱 좋다.


내 글을 공개하고 다시 읽어 보기 시작하는 순간,

휘파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연이어 여기저기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에 오타, 펑!

저기에 띄어쓰기 틀림, 펑!

같은 단어 여러 번 반복, 펑!

이해 안 되는 문장들, 펑펑!!

도대체 네 글의 주제가 뭐야! 펑펑펑!!!


나는 재빨리 수정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죽어버린 내 글을 둘러업고 전력질주를 시작한다.

턱까지 숨이 차게 글을 고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찌어찌 내 글이 결승점에 도착한 거 같으면

다시 발행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내 글을 다시 한번 둘러보면,

아, 또다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때맞춰 독자님이

"이 글의 요점이 뭐죠?"

라는 댓글이라도 남기신다면

그건 정말 잊히지 않는 충격적인 기억이다.




물론 두 번째 방법을 쓴다고 해서

걸음마 아이가 우싸인 볼트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아주 조금 더 일찍

걸음마를 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글을 발행하고 나면

평균 2시간 정도는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


그러니 제가 글을 발행하면

2시간 동안은 안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만···



[1] ATP 3-21.8 Infantry Platoon and Squad (12 April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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